보각스님(寶覺, 1938生, 비구니)
보각(寶覺)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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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보각(寶覺) |
법호 | 휴봉(休峯) |
속명 | 유영숙 |
출생 | 1938.07.15. |
출가 | 1954년 |
입적 | |
사찰 | 석림사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147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정안(淨岸)스님은 오대산 지장암의 주지를 맡아 사찰 면모를 일신하고 한국 북방지역의 비구니 선 수행 문화를 이끈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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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 서울 출생 |
1954 | 범어사에서 상인(相仁)스님을 은사로 출가 |
효봉(曉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
1958 | 동학사 강원 졸업 |
1964 |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해인사 약수암 하안거 성만, 범어사 대성암 동안거 성만 | |
1973 | 제25교구 봉선사 말사 석림사 주지 취임 |
1979 | 석림사 요사채 적묵당 신축 |
1981 | 경국사 법보연구원 대교과 졸업 |
1984 | 국제불교도협의회 지도법사 |
1985 |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섭외부장 |
1986 |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경기북부지회장 |
1993~2004 | 의정부 석림사 부설 봉연유치원 개원 및 원장 |
1996~1998 | 대웅전 중창 불사 완공 및 노천 지장단 신축 불사 완공 |
1999~2004 | 천일 지장기도 봉행 |
2000~2004 | 대한불교 조계종 자비장학회 이사 |
2004 |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경기북부지역 지회장 |
재단법인 자비장학회 제2대 이사장 취임 의정부 비구니자비회 제2대 회장 취임 |
문중 | 청해(靑海)문중 |
수행지침 | 게으른 마음을 다스리며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
상훈 |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손경산 표창패(1975) 외 다수 |
특기 | 염불, 사찰 전통요리 |
저서 | 『스님 바랑 속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효림, 2005 |
수계제자 | 능인(能仁)·법인(法仁)·흥인(興仁)·성인(聖仁)·혜인(慧仁) |
활동 및 공헌
출가
휴봉(休峯) 보각(寶覺)스님은 1938년 음력 7월 15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아버지 유삼남과 어머니 변순이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기계이며, 이름은 유영숙이다.
선학원(당시 비구니 사찰) 근처에 살면서 스님들의 생활을 동경하게 된 것이 출가의 계기가 되어 1954년 스님이 17세 되던 해에 부산 동래 범어사로 출가하여 상인스님을 은사로, 효봉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 사진출처(비구니계 수계 기념):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307
수학
스님은 행자 때 매일 100켤레의 흰 고무신을 닦고, 몇 번이고 조리질을 해도 쌀에 돌이 섞여 무척이나 애를 먹었지만 힘든 줄 모르고 오히려 신심을 돈독히 다져나갔다. 스님은 강원 시절에 안 눕고 안 자며 수행하기로 유명했고 부지런함 또한 자타가 인정하였다. 어찌나 부지런하였는지 때로는 대중스님을 불편하게 했을 정도였다.
한번은 대중공양을 하기 위해 약초를 나물인 줄 알고 뜯어 와 솥에 넣고 푹 삶아 맛있게 무쳐 상에 올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중스님들이 그것을 먹고 배탈과 설사를 하여 고생을 많이 했는데, 보각 스님은 자신의 지나친 부지런함 때문이라며 자책했다고 한다.
또한 조금이라도 신세를 진 신도님에게는 밤을 주워 선물하는 등 꼭 고마움을 표현했으며, 도량을 다닐 때에는 늘 땅을 보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다 보니 어느새 양쪽 주머니는 늘 쓰레기로 불룩했다고 한다.
- 사진출처(은사 상인(相仁)스님과 함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305
석림사에 오다
21세 되던 1958년 스님은 동학사 강원을 졸업한 뒤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자 하였으나 은사스님께서 폐사지나 다름이 없는 석림사 주지로 가시게 되어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석림사 생활은 너무 궁핍하여 끼니조차도 해결하기 힘들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밤하늘에 별들이 보일 정도였다니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한번은 탁발을 하려고 은사스님과 함께 신도 집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신도가 스님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동네 아낙네들과 계속 화투만 치는 것이었다. 하릴없이 기다리며 온종일 화투 치는 것만 구경하다가 돌아오면서 앞으로 두 번 다시 탁발하러 밖으로 다니지 않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불사를 이루겠다는 발원을 했다고 한다.
이후 김동익 박사(당시 서울대병원 내과원장)가 부인의 패물을 팔아서 동참을 하고 사회복지 단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던 미군 와이트 대장을 비롯하여 주위 군인들의 도움으로 기와 불사를 하는 등 황무지나 다름이 없던 석림사 도량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석림사는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7번지에 있다. 이 절은 신라시대의 옛 절터로 주춧돌만이 남아있던 곳에 1671년(현종 12년) 석현화상과 치흠이 석림암으로 창건하였다. 그리고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6·25전쟁으로 완전히 퇴락한 것을 1956년에 비구니 상인스님이 복원하였다.
석림사 중수나 역사가 있을 때마다 박세당의 후손들이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후원하였다고 한다. 현재 옛 건물로는 산령각, 천태각 등이 남아 있고 법당과 부속 건물은 근래에 재건한 것이다.
27세 때인 1964년 자운(慈雲)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보각스님은 석림사 불사를 어느 정도 이룬 후 참선에 정진하고자 해인사 약수암에서 하안거를 성만하고, 부산 범어사 대성암에서 동안거를 성만하는 등 제방 선원에서 수선 안거를 하며 여일정진(如一精進) 하였다. 그러나 은사스님의 병으로 다시 석림사에 온 후 많은 역경 속에서도 기도로써 불사에 전념하였다.
- 사진출처(석림사 입구 다리 준공식):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306
석림사 불사
1973년 은사 상인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석림사에 주지로 취임한 뒤에는 불사로 바쁜 중에도 여전히 군인 포교에 적극성을 보이며 매주 목요일 공양물을 준비해서 부대를 방문하여 법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석림사 주변 지역은 그린벨트와 군사 작전지역 등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불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스님은 불사에 전념하던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기도로 일관하니 엉킨 실타래가 풀어지듯이 되더라.‘며 마치 남의 얘기 하듯 담담하게 말한다.
적묵당 불사를 할 때에는 공사를 이미 시작하였으나 허가를 받지 못해 애를 태우며 기도에 매달리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석림사에 들어오는 꿈을 꾼 후 비로소 허가가 떨어졌다.
또 법당 불사 허가문제로 5년 동안 난항을 거듭하며 기도를 하던 중에는 꿈에 전두환 대통령을 죽이려는 자가 석림사에 들어와서 전대통령을 찾는데 스님이 살생하면 안 된다고 타일러 돌려보내는 꿈을 꾼 후 법당 불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79년 적묵당 완공, 1986년 일주문과 종각 완공, 1996년 대웅전 중창 불사를 완공하였고, 1998년 법당 요사채 완공, 뒤이어 1998년에는 노천 지장단 불사를 완공하였다. 또한 49세 되던 1984년 국제 불교도협의회 지도법사를 역임하였고, 포교의 중요성과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3년 봉연유치원을 개원하여 원장으로 재임하였다.
스님은 그동안 천일 관음기도를 3번 회향하였으며 대중과 함께 9년 넘게 지장기도 사분 정근을 하고 있다. 정신 질환을 앓던 모기업 사장을 부처님 법으로 인도하여 몇 개월 후에 정상적으로 치유가 되자 온 가족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스님은 2004년 석림사 주지로 있으며, 1975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패와 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 공로패 등 많은 상을 받았다.
- 사진출처(큰법당 상량식(1996)):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308
- 사진출처(노천지장단 앞에서(1999)):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309
수계제자
수계제자로는 능인(能仁)· 법인(法仁)· 흥인(興仁)· 성인(聖仁)·혜인(慧仁)스님 등이 있다
석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조선 중기에 박태보(朴泰輔)가 김시습(金時習)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796년(정조 20)에는 유담(裕淡)스님이 화주가 되어 삼소각(三笑閣)을 중수하였다. 1950년 6·25로 인하여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으며, 그 뒤 1956년에 비구니 상인(相仁)스님이 와서 대방(大房) 등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대방을 중심으로 하여 요사채 2동과 칠성각·독성각 등이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대방이 법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신중탱화 등을 봉안하고 있다. 대방 앞에는 1969년에 상인스님이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여 건립한 탑이 있으며, 그밖에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전하고 있지 않다.
- 내용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석림사(石林寺))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407
- 사진출처(석림사 전경) :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6747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304~309.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1.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0. 332
- 불교신문, 소외계층 학생에 10년간 장학금 ‘귀감’ (2009년)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713&replyAll=&reply_sc_order_by=C
- 네이버블로그(동국대학교일산병원), 석림사 보각 스님,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발전기금으로 1천만 원 쾌척(2015년)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idumc&logNo=220329035572
- 법보신문, 1. 의정부 석림사 회주 보각 스님 (2017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6747
- 불교신문, 도솔천 내원궁 미륵불이 지키고 약사여래 보호하는 名山 (2020년)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32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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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寶覺)스님 | 본항목 | 보각스님(寶覺, 1938~) | 寶覺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보각스님(寶覺,_1938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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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寶覺)스님 | 청해(靑海)문중 | ~의 일원이다 |
보각(寶覺)스님 | 상인(相仁)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보각(寶覺)스님 | 범어사 | ~에서 출가하다 |
보각(寶覺)스님 | 효봉(曉峰)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보각(寶覺)스님 | 자운(慈雲)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보각(寶覺)스님 | 석림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 |
보각(寶覺)스님 | 석림사 봉연유치원 | ~을 설립하다 |
지도
- 석림사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산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