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혜종스님(慧宗, 1930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8월 31일 (수) 07:1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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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혜종(慧宗)스님은 1953년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을 복원하고, 북방 최초의 비구니 기린선원 개원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0 강원 명주 출생
1953 월정사 지장암에서 성진(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4 월정사에서 탄허(吞虛)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5 탄허스님으로부터 『초발심자경문』과 사집 수학
1960 월정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63~1967 지장암 법당과 삼성각 완공
1972~1973 육화료 중창 완공
1975 한국전쟁 이후 인법당을 개설하여 북방 최초 비구니 기린선원 개원
1994 선원 1, 2층(250평 규모) 증축
1995 1995.9.2(음8.8) 지장암에서 입적(세수 66세, 법랍 43세)
문 중 봉래(蓬萊)문중
수행지침 지장의 원력, 마음·눈·귀로 중생을 섭수하리라.
검소한 생활로 일관된 수행자의 삶
생활신조 시주물 아끼기
상훈 탄허스님에게 중창 불사 공로 표창(1964)
특기 수집(폐품을 모아 두었다가 적절한 곳에 이용)
취미 그림 감상
수계제자 정안(淨岸)·준민(俊旼)

활동 및 공헌

출생

무상(無常) 혜종(慧宗)스님은 1930년 8월 22일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퇴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며, 이름은 권혁숙이다.

출가

스님은 뜻한 바 있어 1953년 월정사 지장암에서 성진(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1954년 탄허(吞虛)스님께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그리고 1960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그림입니다.혜종스님 진영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p279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 개원

혜종스님이 출가할 당시 오대산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원사를 제외한 각 사·암이 국군의 작전상 방화로 소실되어 잿더미로 변하고 토막집 에서 겨우 색신을 의탁하여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정도였다.

상황이 어려웠던 지장암에 출가하여 한 번도 지장암을 벗어나지 않았던 혜종스님은 은사 성진스님과 인성스님으로부터 깨우침을 받으며, 북방 최초의 선원인 지장암을 복원하여 운수납자들이 정진의 꽃을 피울 것을 발원하였다. 이는 1960년 서울 혜화동에서 큰 여관을 하던 대광명(大光明) 보살과 함께 지장암 법당 복원이 하루 속히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발원이었다.

성진스님, 인성스님, 혜종스님과 대광명보살, 혜안보살 등과 함께 법당 불사를 시작한 때는 정화 시절이었다. 그래서 법당 기둥감 나무 하나라도 자르면 고발과 투서가 들어가기 일쑤였고, 혜종스님도 벌목죄로 잡혀 평창경찰서에서 며칠씩 감금당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1963년 8월 24일에 마침내 상량식을 하였고, 1964년 법당과 삼성각 불사를 마무리하였다. 혜종스님은 그해 10월 15일에 탄허스님에게 지장암 불사 공덕을 인정받아 표창장을 받았다. 개인 재산을 정리하여 지장암 법당 불사에 시주한 대광명보살은 지장암이 복원되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보살의 신분으로 수행 정진하다가 1974년 1월 16일 생을 마감하였다.

혜종스님은 선원이 개원되기를 줄곧 발원하며 노천에 있던 물을 비 맞지 않고도 먹을 수 있게 수각채를 지었고, 목욕탕(철로 만들어진 둥근 욕조)을 만들어 사찰 내에서 목욕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이어 육화료가 중창되자 성진스님과 인성스님은 육화료로 거처를 옮기고 한국전쟁 이후 2칸으로 지었던 토막집을 헐었다. 이렇게 혜종스님이 중심이 되어 지장암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은사 성진스님과 석남사 인성스님이 사찰 내에서 불사 뒷바라지를 모두 해주었고, 아버지 권오선(權五善) 처사가 공사 현장에서 감독을 맡아 보살펴주었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 혜종스님은 복원 불사에만 전념 할 수 있었다. 지장암 복원의 실질적인 주인공 은사 성진스님은 1983년 음력 2월 12일 입적하셨고, 인성스님은 1974년 제자 현묵스님이 있는 석남사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림입니다.성진스님, 혜종스님, 대시주 대광명보살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p280 그림입니다. 불사에 대한 공로로 탄성스님께 수여받은 표창장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p281

1975년 하안거 결제 때는 현묵스님을 비롯하여 40여 명의 스님들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지장암에서 안거를 성만하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인법당을 이용하여 하안거에 정진을 하는 스님들이 늘어나자 점점 공간이 협소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방부를 받지 못하였고, 혜종스님은 1992년 선원이 신축되기를 발원하였다. 이에 석남사 인홍스님의 시주가 초석이 되어 서울 이동주 처사 등 많은 신도들의 동참으로 3년에 걸쳐 법당 우측에 지층을 겸한 190평 규모의 선방을 신축하였다. 스님은 완공한 뒤에 이런 말씀으로 생활 선을 강조하였다.

신심소멸습기(信心消滅習氣) 참회훈수죄업(參會勳修罪業) 염불정화육문(念佛淨化六門) 자연방광자성(自然放光自性)

신심으로 습기를 소멸하며 참회로 죄업을 닦고 염불로 육문을 정화하면 자연히 스스로의 성품이 드러나서 부처를 실천하게 된다. 그림입니다.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p282

그러나 1995년 음력 8월 8일 후학을 깨우치던 가르침을 뒤로 하고 세수 66세, 법랍 42세로 홀연히 입적하였다. 혜종스님의 입적으로 상좌 정안스님이 감원을 맡아 1년 소임을 살았는데,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에 무상을 느껴 3년 기한으로 참선 수행을 떠났다.

이후 대전 법륜사 길상스님이 감원을 살면서 선원 큰방과 다락에 벽장을 만들고 선원 현판을 걸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서 1997년 하안거를 시작으로 3년 연속 하안거를 열었다. 그 사이 정안스님은 몇 년간의 수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본사 회주이신 현해스님께서 오대산 성지의 비구니 선원에 하안거만 개설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거기에 제방의 바람이 더해져 회주스님의 원력과 정안스님의 신심으로 1999년 10월 14일 동안거를 개원하였다. 이렇게 하여 열악한 조건이지만 동·하안거를 겸비한 선원으로서의 진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644516b.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43pixel, 세로 493pixel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ksb115205/221639244507

'오대산국립공원 비구니 스님의 참선도량 오대산 지장암’

오늘날 지장암이 운수납자들의 도량이 되기까지 성진, 인성, 혜종스님과 대시주 대광명보살, 동참 화주자 혜안보살, 강릉 지묘행보살 등의 원력과 많은 노고가 온 도량 곳곳에 스며있다.

현재 지장암은 부족하나마 한국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또 지옥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이 서린 성지로 많은 불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혜종스님의 수계제자인 정안(淨岸)·준민(俊旼)스님과 손상좌 지훈(地熏)·지용(地湧)·지륜(地輪)·지광(地光)·지현(地賢)·해만(海曼)·지욱(地煜)·지우(地雨)·지중(地重)·지도(地導)·지경(地經)·지범(地凡)·지성(地成)스님, 증손상좌 혜등(慧燈)·제홍(濟弘)스님 등이 스님의 유지를 이어 선풍을 드날리고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혜종(慧宗)스님 본항목 혜종스님(慧宗, 1930~1995) 慧宗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혜종스님(慧宗,_193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혜종(慧宗)스님 봉래(蓬萊)문중 ~의 일원이다
혜종(慧宗)스님 성진(性眞)스님 ~의 제자이다
혜종(慧宗)스님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 ~에서 출가하다
혜종(慧宗)스님 탄허(吞虛)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혜종(慧宗)스님 자운(慈雲)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혜종(慧宗)스님 오대산 월정사 지장암 ~을 중창하다
혜종(慧宗)스님 오대산 지장암 기린선원 ~을 개원하다

지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