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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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 || (정조 3년) 서울 동소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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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 충남 당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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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 || 청룡사 각성스님을 은사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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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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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 || 청룡사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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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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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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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 || (순조 14년) 청룡사 법당, 요사채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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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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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사 주지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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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유치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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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 || 순원왕후의 환후 쾌차 기도 삼칠일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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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세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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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 || (헌종 4년) 세수 60세, 법랍 54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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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8일 (목) 08:48 판



정의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1 충남 당진 출생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세심사 주지 취임

룸비니유치원 운영

2004 세심사 주지

활동 및 공헌

출가와 수행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세심사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

 

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지행(智行)스님 법연(法蓮) ~의 제자이다
지행(智行)스님 아산 세심사 ~에서 출가하다
지행(智行)스님 아산 세심사 ~의 주지를 역임하다
지행(智行)스님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지행(智行)스님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지행(智行)스님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를 성만하다
지행(智行)스님 룸비니 유치원 ~을 개원하다
지행(智行)스님 아산불교회관 ~을 설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