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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4일 (토) 19:48 판
지향(智向)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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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지향(智向) |
법호 | |
속명 | 김규임 |
출생 | 1941.10.04. |
출가 | 1959년 |
입적 | |
사찰 | 백운사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8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지향(智向)스님은 혜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백운사 주지를 역임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41 | 전북 완주 출생 |
1959 | 전주 정혜사에서 혜명(慧明)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0 | 전주 정혜사에서 대은(大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60~1965 | 정혜사 강원 졸업 |
1965 | 정혜사에서 묵담(默潭)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70 | 백운사 주지 취임 |
1973 | 백운사 요사채 신축 |
1978 | 삼성각 신축 |
1979 | 세등선원 하안거 성만 |
1981 | 내원사 하안거 성만 |
1981~1990 | 흥천사 반야선원 동안거 10회 성만 |
1983 | 윤필암 하안거 성만 |
1849 | 삼선암 하안거 성만 |
1992 | 대웅전 30평 신축 완공 |
1993 | 시민선방, 요사채, 식당 신축 완공 |
1994 | 시민선방 재가자 선(禪)지도, 금련선원 하안거 성만 |
1995 | 견성암 하안거 성만, 금련선원 동안거 성만 |
2004 | 백운사 주석 |
문중 | 계민(戒珉)문중 |
수행지침 | 진실을 바탕으로 공부해야 한다. |
상훈 | 보문종 총무원장 공로패 수상(1993) 외 다수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법수(法修)·법공(法空)· 법연(法蓮)·법등(法燈)·법밀(法密) |
활동 및 공헌
출가
지향(智向)스님은 1941년 10월 4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686번지에서 아버지 김성묵과 어머니 임인순(청정성 보살) 사이의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김규임이다. 천상에서 하얀 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싸서 주시기에 어머니가 소중하게 받는 꿈을 꾼 뒤에 스님을 얻게 되었다.
스님의 나이 8세, 아직 어린 나이에 뜻하지 않은 수해로 살고 있는 집이 무너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시 스님은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집은 무너졌지만 한 군데도 다치지 않고 무사해서 집안 어른들이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 후 불심이 깊은 어머니와 여러 보살님들의 간절한 원력으로 백운사가 창건되었고 신도들이 모여들자 정혜사 명주 노스님께서 여러 명의 스님들을 교대로 보내시어 법회를 보게 하셨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스님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을 받들어 지향스님을 절에 데려다주었다. 지향스님이 명(命)이 짧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많았던 어머니의 적극적인 권유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였다.
지향스님은 1959년 6월 24일 전주 정혜사에서 혜명(慧明)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이듬해 6월24일 전주 정혜사에서 김대은 선사를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출가하여 신심이 더욱 깊어진 스님은 수행을 열심히 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하였다.
수학
이후 스님은 1965년에 전주 정혜사에서 묵담선사를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그해 10월 20일 대교를 졸업하여 수행자로서의 여법한 면목을 두루 갖추었다.
백운사 주지로 취임
스님은 나이 30세인 1970년 현재의 백운사에 주지로 취임하여 들어오게 되었다. 초창기의 백운사 살림은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읍내에서 절까지 먼 산길을 걸어서 다녀야 했고,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도 손수 들고 와서 심어야 했다. 또 시주물을 아끼는 마음에 헛되이 쓰지 않고 멀리까지 다니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도량 정리와 가람 수호를 해왔다.
아이들을 돌보다
그렇게 노고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1973년에는 요사채를 신축하였고 1978년에는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한편 스님은 자신이 키우는 아이들을 친부모 못지않게 살뜰히 보살펴 고산국민학교의 모범 학부모상을 받기도 하였다. 1980년에는 고산중학교로부터 학부모 공로패를 수상하였으며, 1993년에는 보문종 총무원장 공로패를 수상하였다.
수행
아이들을 돌보고 불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스님은 1979년 세등선원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고, 1981년 내원사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다. 1983년 윤필암과 군산의 흥천사 반야선원, 1984년 삼선암에서 하안거, 1994년 금련선원에서 하안거를 성만한 후 윤필암에서 동안거를 성만하였다. 지향스님이 세등선원에서 하안거를 날 때의 일이다. 평소 복숭아를 무척 좋아하던 스님이 결제 중 복숭아가 너무나 먹고 싶어 모시 두루마기를 해 입으려고 모아 두었던 10만원으로 복숭아를 몽땅 구입해 대중 스님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때의 일은 지금도 선객 스님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시민선방을 열다
불사 틈틈이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한 스님은 1994년부터 백운사에 시민선방을 열어 인근 마을의 재가자들과 같이 해마다 여름이면 수행 정진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골에서 일만 하는 재가자들이 조금이라도 공부하는 흉내라도 내자는 뜻에서 시작하였고, 20명 정도가 스님과 뜻을 같이하고 있다. 오전 8시에 시작하여 한 시간 정도 앉으며, 사시에는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오후에는 각자의 일터로 가서 농사일을 한다.
불사
스님은 백운사 대웅전이 비좁아 바깥에 서서 법회에 참석하는 신도들이 안타까워 1992년에 30평 규모의 법당을 신축하여 완공하였다. 뒤이어 1993에는 시민선방과 요사채, 식당을 신축하고 생전 예수재와 낙성식을 겸하는 행사를 가졌다.
스님은 평생을 선방에서 수행 정진에 전념했고 해제 후에는 기도 도량으로 다니기를 20여 년 넘게 해오고 있다. 결제가 아니면 기도를, 기도가 아니면 결제를 하면서 수행에만 전념한 스님은 지금도 눈매가 매서운 납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포교
스님은 또한 어린이법회를 시작으로 정기법회와 가족법회, 군인법회를 지속하고 있으며 불우 학생과 독거노인들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스님은 칼날 같은 철저한 수행 정신으로 근면 검소함을 실천하고 있으며 후학과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정신적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인생관을 가지고 수행하는 지향스님은 출가한 복으로 일대사 인연의 화두를 타파하는 것을 원으로 삼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 원은 핵가족화로 인해 소외된 노인들을 위하여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양로원을 설립하는 일이다.
지향스님은 백운사에 주석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다. 수계제자로는 법수(法修)·법공(法空)· 법연(法蓮)·법등(法燈)·법밀(法密)스님 등이 있다.
완주 백운사
전북 완주군 동산면 대아리에 유서 깊은 천년고찰 운문사가 있었다. 6·25전쟁으로 사찰 전체가 소실되자 허전함을 금치 못하던 대인 주지스님께서 1952년 고산 읍내로 피신해 계시는 동안 보살님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던 중 이곳에 절을 세워야겠다는 원을 세우게 되었다.
중창 불사 기성회를 조직하고 여러 차례 터를 물색하던 차에 현재 백운사 위치인 당메산 8번지가 모든 면에 적합하여 터를 닦고 절을 지었다.
도량이 아늑한 백운사 샘물은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 약수로서 이 물을 계속해서 마시면 수명장수한다고 전해지며 고을 원님이 새로 부임하면 이곳에서 꼭 당제를 모셨다고 한다. 정확한 연대는 모르지만 한때 서장자라는 큰 부자가 살았으며 외손, 친손 발복지로 전해진다.
운문사의 운(雲)자를 넣어 고운사(高雲寺)라고 했던 것을 후에 정혜사 명주 노스님께서 백운사(白雲) 누라 개칭하여 지금까지 내려온다. 백운사로 개칭된 후의 창건주는 자득스님의 모친인 청정성 보살이었다. 보살님은 19세에 결혼하여 27세에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불법에 의지하여 살아가던 중 운문사 대인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사의 원력을 세워 절을 짓기 위해 여러 군데를 다니며 기도를 많이 하셨다.
꿈에 선몽을 받기도 하셨는데, 시부모님 꿈에 손녀딸(지향스님)이 출가 전인데도 바랑을 지고 지금의 백운사 터인 당산으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으며, 세심정 다리에서 일산을 받고 부처님과 갑옷을 입은 장군들이 행렬을 지어 백운사 쪽을 향해 모두 합장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는 필시 운문사에 계시던 부처님과 신장님들이 옮겨 오신 것이라 여겼다.
이 밖에도 보살님은 꿈속에서 거북이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겼다고 하며, 안수사에서 솟구친 서기가 백운사까지 비치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고 한다. 1955년 구 대웅전을 상량하고 신축하여 낙성식을 지냈다. 또한 주불인 아미타불과 후불탱화를 모셨고, 신중단을 불사하였다. 이후 지장, 삼성 탱화까지 봉안하였다.
1956년 같이 절을 지으신 대인스님이 떠나시자 절이 텅 비게 되었다. 이에 세간 살림과 전답을 부처님께 바치며 이 도량은 앞으로 내가 지키리라는 서원을 세우고 들어오니 이때 보살님의 나이 35세였다.
청정성 보살은 전답 8마지기 (1600평)를 가지고 들어왔으나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청정성 보살은 '내가 도량을 지켜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빚을 갚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법당은 지어놓고 기와를 올리지 못했던 터라 전답 8마지기를 담보로 하여 급한 대로 기와를 먼저 올렸다.
그 후 3년 동안 지은 농사는 고스란히 빚을 갚는 데 쓰였고, 무밥 일 년, 보리밥 일 년, 찹쌀 두 말로 일 년을 사셨다. 방에는 불을 지필 나무가 없어 코와 귀가 빨갛게 얼었다. 그러나 보살님은 이 절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운주 호암사와 충청도 학림사 등으로 기도를 다녔다. 그렇게 일념으로 기도한 덕분에 가피를 입어서 백운사 불사를 원만하게 회향할 수 있었다.
청정성 보살님은 백운사에서 반세기 넘게 살았지만 한 번도 절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고, 부처님의 사시마지는 언제나 나무로 불을 때서 직접 지어 올렸다. 이렇게 생활 자체가 기도인 노보살님의 신심은 지금도 여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641~646.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4.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9, 348
- 전북도민일보, 완주 고산면 백운사, 30만원 성금 후원 (2020년)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3296&sc_section_code=S1N1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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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智向)스님 | 본항목 | 지향스님(智向, 1941~) | 智向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지향스님(智向,_1941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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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스님(智向) | 계민문중(戒珉) | ~의 일원이다 | |
지향스님(智向) | 혜명스님(慧明) | ~의 수계제자이다 | |
지향스님(智向) | 전주 정혜사 | ~에서 출가하다 | |
지향스님(智向) | 대은스님(大隱)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지향스님(智向) | 묵담스님(黙潭)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지향스님(智向) | 완주 백운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지향스님(智向) | 완주 백운사 | ~을(를) 중창하다 | |
지향스님(智向)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대전 세등선원(탄방동), 양산 내원사, 군산 흥천사 반야선원, 문경 대승사 윤필암, 합천 해인사 삼선암, 경주 금련선원, 예산 수덕사 견성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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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백운사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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