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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성북동(서울) 팔정사(八正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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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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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동학사 강원에 들어가서 당시 6년제인 강원을 3년 만에 졸업한 연호(蓮湖) 스님은 곧 지금의 서울 팔정사로 오게 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31세였다. 1960년 4·19혁명 때쯤에 팔정사를 다시 지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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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동학사 강원에 들어가서 당시 6년제인 강원을 3년 만에 졸업한 [[연호스님(蓮湖, 1930生, 비구니)|연호스님(蓮湖)은 곧 지금의 서울 팔정사로 오게 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31세였다. 1960년 4·19혁명 때쯤에 팔정사를 다시 지었다. </br>
 
본래 팔정사의 창건주가 스님이 아닌 재가불자라 조계종으로 사찰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다. </br>
 
본래 팔정사의 창건주가 스님이 아닌 재가불자라 조계종으로 사찰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다. </br>
 
1960년 팔정사 주지로 취임한 연호스님은 1995년 건강문제로 상좌 4명을 불러 회의를 한 결과 현재의 진우스님에게 주지를 인계하였다. </br>
 
1960년 팔정사 주지로 취임한 연호스님은 1995년 건강문제로 상좌 4명을 불러 회의를 한 결과 현재의 진우스님에게 주지를 인계하였다. </br>

2024년 5월 9일 (목) 22:17 판

  • 사찰명 : 성북동(서울) 팔정사(八正寺)
  •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42

1958년 동학사 강원에 들어가서 당시 6년제인 강원을 3년 만에 졸업한 [[연호스님(蓮湖, 1930生, 비구니)|연호스님(蓮湖)은 곧 지금의 서울 팔정사로 오게 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31세였다. 1960년 4·19혁명 때쯤에 팔정사를 다시 지었다.
본래 팔정사의 창건주가 스님이 아닌 재가불자라 조계종으로 사찰등록하기가 쉽지 않았다.
1960년 팔정사 주지로 취임한 연호스님은 1995년 건강문제로 상좌 4명을 불러 회의를 한 결과 현재의 진우스님에게 주지를 인계하였다.
팔정사의 송풍나월 선원은 1964년 스님이 35세 때부터 30년간 운영해 오다가 1994년 중단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된 팔정사 목조 보살좌상(八正寺 木造 菩薩坐像)은 아미타불의 우협시인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2004년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그 명칭이 ‘팔정사 목보살좌상(대세지보살)’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보살좌상의 명칭을 정확히 알 수 없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정사 목조보살좌상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 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