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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들은 2017년 스님 열반 5주기에 탑·비를 세웠다.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비 옆에 터를 잡아 세운 전불심등(傳佛心燈) 부종수교(扶宗樹敎) 삼장원통(三藏圓通) 정혜원명(定慧圓明) 가산당(伽山堂) 지관대종사(智冠大宗師) 비(碑)의 글은 시인 고은이 짓고 서예가 송천 정하건이 썼다. </br>
 
문도들은 2017년 스님 열반 5주기에 탑·비를 세웠다.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비 옆에 터를 잡아 세운 전불심등(傳佛心燈) 부종수교(扶宗樹敎) 삼장원통(三藏圓通) 정혜원명(定慧圓明) 가산당(伽山堂) 지관대종사(智冠大宗師) 비(碑)의 글은 시인 고은이 짓고 서예가 송천 정하건이 썼다. </br>
 
※ 출처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178 불교신문(2018-03-30 14:31)] 이진두의 고승전 <26> 가산당 지관대종사
 
※ 출처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178 불교신문(2018-03-30 14:31)] 이진두의 고승전 <26> 가산당 지관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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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비구스님]]

2024년 2월 22일 (목) 08:13 판

  • 법호·법명 : 가산지관(伽山智冠, 1932~2012)
  • 생애·업적

지관대종사는 1932년 음력 5월11일 경북 영일군 청하면 유계리(柳溪里) 678번지에서 경주 이씨 규백(圭白)옹과 김녕 김씨 선이(先伊)여사의 3남3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해분(海分)이다. 지관은 법명이고 가산은 법호이다. 1937년 고향 인근 법성사에서 ‘옴 마니 반메 훔’기도로 아픈 몸을 치유하는 가피를 입었다. 1947년 16세 때 해인사로 입산 출가하여 자운대율사를 은사로 사미계를 받아 지녔다. 1949년 스승을 따라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고 1950년 19세 때 울릉도 성인봉 토굴에서 수행정진 후 보경사 용화선원에서 정진했다.
1953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아 지니고 스승인 자운스님에게 율학을 배웠다. 1957년 해인사 강원에서 정화 이후 초대 강주인 운허스님 문하에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59년 통도사 강원에서 운허스님 지도로 수의과(隨意科)를 졸업한 이후 10여년 교학을 연찬했다. 이해 표충사 강사로 취임. 1960년 동화사·해인사 강주를 맡아 숱한 이력종장(履歷宗匠)들을 길러냈다. 1963년 해인대학(현 경남대)을 졸업했다. 1965년 34세에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68년 동국학원 이사 조계종 종전(宗典)편찬위원에 위촉됐다. 1969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해인사 주지에 취임, 대적광전을 중수하고 사적비를 일주문 근처에 있는 해인사 3층 길상탑 옆에 건립했다. 같은 해 동국학원 감사, 종단 교육위원·역경위원에 선출됐다.
1972년 41세 때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종회부의장, 동국학원 이사에 선출됐다. 1975년 동국대 불교대 승가학과(현 선학과) 교수로 취임, 1976년 동국대에서 ‘남북전육부 율장비교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동국대 정각원장, 경국사 주지, 1980년 동국대 불교대학장, 1982년 ‘가산불교대사림’ 발간 발원기도 후 편찬 작업에 착수했다. 1984년 동국대 교육대학원장을 거쳐 1986년 동국대 제11대 총장으로 추대됐다. 총장 재직 시 재향군인회관 대지를 매입하고 경주캠퍼스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설립, 포항 기독교병원을 매입했다. 1987년 문화재위원, 1989년 동국대(경주) 정각원을 창건. 1991년(60세) 사단법인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 사전편찬을 법인의 주요사업으로 추진, 소장 연구자 육성을 위해 가산상(伽山賞)을 제정하고 학술전문지 <가산학보(伽山學報)>를 창간했다. 1993년 해인사 주지 재임, 1998년 자운대율사 부도탑과 비를 세웠다. 해인총림 서당(西堂)에 취임하고 해인사 전계대화상으로 추대됐다.
2001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으며 2003년 대각회 이사장·동국역경후원회 이사장에 선출됐다. 2004년 대종사 법계를 받고 2005년 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해 국제선센터, 조계사 시민선원, 조계사 일주문, 전법회관·템플스테이회관을 건립했으며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해인총림 전계사로 추대됐으며 2007년에는 단절된 교단의 결계(結界)와 포살 제도를 복원하여 계율준수를 수행과 포교의 근간으로 삼았다.
2008년 서울시청 광장에서 범불교도대회를 개최. 중국 남창 우민사에 도의국사 입당구법(入唐求法) 기념비를 건립하여 조계종단 종조(宗祖)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확실하게 정립했다. 2009년 조계종총본산 조계사에 10층 사리탑과 사적비를 건립하여 총본산의 역사적 의미를 재정비했다. 2011년 가산불교연구원 연구진에게 대사림 완간을 위해 합심하여 정진하라는 간곡한 유촉을 글로 남겼다.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한국불교전통사상총서>를 발간 원력을 세워 2011년 한글역 13권, 2018년 영역 13권을 펴냈다. 2012년 1월2일 서울 경국사에서 법랍 66년 세수 만80세로 원적에 들었다.
스님은 입적 전 2011년 9월 이승을 떠날 때를 예견한 듯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시를 남겼다.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
無常肉身 開蓮花於娑婆 (무상육신 개연화어사바)
幻化空身 顯法身於寂滅 (환화공신 현법신어적멸)
八十年前 渠是我 (팔십년전 거시아)
八十年後 我是渠 (팔십년후 아시거)


문도들은 2017년 스님 열반 5주기에 탑·비를 세웠다.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비 옆에 터를 잡아 세운 전불심등(傳佛心燈) 부종수교(扶宗樹敎) 삼장원통(三藏圓通) 정혜원명(定慧圓明) 가산당(伽山堂) 지관대종사(智冠大宗師) 비(碑)의 글은 시인 고은이 짓고 서예가 송천 정하건이 썼다.
※ 출처 : 불교신문(2018-03-30 14:31) 이진두의 고승전 <26> 가산당 지관대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