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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사찰명 : 팔공산(八公山) 부인사(符印寺), 팔공산(八公山) 부인사(夫人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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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주소 : 대구 동구 신무동 3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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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일컬어진다. 부인사지(符仁寺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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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예로부터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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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가 흥왕하였던 신라와 고려 때에는 약 2,000명의 승려가 수도하였다고 하며,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완성했던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지고, 현재 일본 경도(京都)의 남례사(南禮寺)에 1,715판이 전해지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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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기에는 39개의 부속 암자를 관장하였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승려들만의 승시장(僧市場)이 섰다는 구전이 전하여지지만, 몽고의 침입 이후 중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중창 및 중수의 역사가 전래되지 않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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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에 위치한 암자 터에다 1930년대 초에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중창한 것이다. 1991년 선덕묘를 선덕여왕숭모전으로 좀 더 크게 옮겨 지었고, 선덕여왕 진영을 새로 조성하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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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우로는 석가모니불상과 아미타불상 및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대웅전, 선덕여왕의 영정을 모신 선덕여왕숭모전과 종각·누각, 그리고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선덕여왕숭모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 남았던 것을 1930년대 초에 중건한 것이며, 음력 3월 보름에는 이곳에서 동네 유지들과 승려가 함께 모여 선덕제(善德祭)를 지내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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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쌍탑(雙塔)을 비롯하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석등과 당간지주·석등대석(石燈臺石)·배례석(拜禮石)·마애여래좌상 등이 있다. 최근까지 무너져 있었던 쌍탑 중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서탑은 1966년에 복원하였으며, 신라 말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보이고 있다. 이 석탑 옆에는 50㎝ 가량의 머리 없는 석불이 있는데, 1978년까지는 여러 기가 있었으나 1979년에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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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웅전 앞에는 2기의 석등이 있는데 1기는 가운데가 금이 갔으나 완전한 형태이고, 이보다 작은 석등은 밑받침만 남아 있다. 이 석등 앞에는 돌 사면에 높이 약 70㎝의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옆에 배례석이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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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 부근의 포도밭 속에는 신라 때의 작품인 당간지주가 있어 전성기의 절 영역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바위에 감실을 파고 조각한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마애불이다. 이밖에도 초석과 축대에 남아 있는 화려한 장대석(長臺石)이 산재해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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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451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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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지도 ''' : [https://map.kakao.com/?q=동구_신무동_356-1 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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