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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호·법명 : ''' 경하재영(景霞載英, 1869~1957)
 
* ''' 법호·법명 : ''' 경하재영(景霞載英, 1869~1957)
* ''' 생애·행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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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애·업적 '''
 
벽암당(碧巖堂) 현판 위에 걸린 또하나의 현판은 '경하방장(景霞方丈)'이다. 이는 해인사 주지를 역임한 경하 재영(景霞 載英,1869~1957)스님이 1942년에 국일암을 중수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br>
 
벽암당(碧巖堂) 현판 위에 걸린 또하나의 현판은 '경하방장(景霞方丈)'이다. 이는 해인사 주지를 역임한 경하 재영(景霞 載英,1869~1957)스님이 1942년에 국일암을 중수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br>
 
1780년에서 1814년 사이에 생존한 대은(大隱)이 경상남도 하동 칠불암(七佛庵)에서 은사 금담(錦潭)과 함께 기도하여 서광을 얻고 계맥을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해인사에서는 초의(草衣)-범해(梵海)-선곡(禪谷)-용성(龍城)-경하(景霞)-자운(慈雲) 등의 순으로 전해지고 있다. </br>
 
1780년에서 1814년 사이에 생존한 대은(大隱)이 경상남도 하동 칠불암(七佛庵)에서 은사 금담(錦潭)과 함께 기도하여 서광을 얻고 계맥을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해인사에서는 초의(草衣)-범해(梵海)-선곡(禪谷)-용성(龍城)-경하(景霞)-자운(慈雲) 등의 순으로 전해지고 있다. </br>

2023년 7월 21일 (금) 11:32 판

  • 법호·법명 : 경하재영(景霞載英, 1869~1957)
  • 생애·업적

벽암당(碧巖堂) 현판 위에 걸린 또하나의 현판은 '경하방장(景霞方丈)'이다. 이는 해인사 주지를 역임한 경하 재영(景霞 載英,1869~1957)스님이 1942년에 국일암을 중수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1780년에서 1814년 사이에 생존한 대은(大隱)이 경상남도 하동 칠불암(七佛庵)에서 은사 금담(錦潭)과 함께 기도하여 서광을 얻고 계맥을 잇게 하였다. 그리하여 해인사에서는 초의(草衣)-범해(梵海)-선곡(禪谷)-용성(龍城)-경하(景霞)-자운(慈雲) 등의 순으로 전해지고 있다.
※ 출처 : 쓸쓸히 채워져 있고 따뜻이 비워진 숲(다음블로그), 산꽃처럼 소박하고 그윽한 국일암(國一庵)

일제강점기에 해인사에 계셨던 우련스님은 상좌가 없어서 관세음보살님께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기도 회향일에 새까맣고 꼴불견인 아이가 찾아와 하는 수 없이 상좌로 맞아들였다. 우련스님은 그와 같은 상좌에 대해 불만이 없지 않아 평소에 자주 말씀하셨다.
"쯧쯧, 백일기도 회향일에 들어왔기에 할 수 없이 상좌로 삼았어. 어찌 관세음보살님께서 저런 걸 보냈을꼬?"
하지만 그 상좌가 자라 뒷날 백용성 스님의 율맥(律脈)을 이은 경하(景霞)스님이 되었다.
※ 출처 : 자성불(카카오스토리)

경하스님은 비구니 성림(成林)(청도 옥련암), 장일(長一)(대구 동화사 내원암) 등에게 비구니계를 수계했다.
※ 출처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267, p.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