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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운문중은 초조 윤함스님이 제2대 선유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선유스님이 제3대 정엽스님을 법제자로 삼아 법맥을 전수하면서 문중의 기틀을 세웠다. 정엽스님은 부성(冨盛)⋅정인(正仁)스님을 통해 계맥을 계승해가도록 부촉했는바, 이들 제4대손으로부터 부성계통과 정인계통으로 나뉜다. | 보운문중은 초조 윤함스님이 제2대 선유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선유스님이 제3대 정엽스님을 법제자로 삼아 법맥을 전수하면서 문중의 기틀을 세웠다. 정엽스님은 부성(冨盛)⋅정인(正仁)스님을 통해 계맥을 계승해가도록 부촉했는바, 이들 제4대손으로부터 부성계통과 정인계통으로 나뉜다. | ||
(이상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245~245 참조) | (이상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245~245 참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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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7일 (일) 08:13 판
보운문중의 문중 이름은 금강산 신계사의 보운암에서 유래한다. 보운문중의 초조인 보운당(普雲堂) 윤함(允咸), 2대손인 금강당(金剛堂) 선유(善有), 3대손인 심월당(心月堂) 정엽(靜燁) 스님 등이 보운암에서 주석하며 수행한 행적을 기리는 의미가 담겨있다.
신계사 보운암은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본절인 신계사를 창건한 보운조사(普雲祖師)가 건립했다.
보운문중이 탄생한 배경은 1984년 9월 27일(음력 9월 3일) 당시 문도를 대표하던 문중 제6대손인 성월당(性月堂) 수인(守仁, 1899~1997)스님의 생일에 문도들이 모여 매년 음력 2월 20일을 정례 회동일자로 정하고 모일 때마다 권속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적어오기로 약속하는 등 문보작성의 기초를 닦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그 이듬해인 1985년 음력 2월 20일(양력 4월 9일) 진주 미륵암에서 제1차 문중회의를 개최한데 이어 수인스님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고 의심나는 점은 역사 자료를 찾아 계보작성에 들어가기로 결의한 지 1년 6개월여 만인 1986년 8월 마침내 보운문중계보 발간작업에 착수하면서 문중의 태동을 공식화했다.
보운문중은 근⋅현대기 대표적 비구니고승 중의 한 분인 수인스님을 기준으로 삼아 세간의 직⋅방계와 존⋅비속관계에 해당하는 사자간(師資間)과 사형사제간의 문도들이 결집하면서 탄생된 문중이다.
수인스님의 상노스님이 되는 제3대손 정엽(靜燁, 1839~1913)스님은 1839년 함안 조(趙)씨 집안에서 출생했다. 출가년도는 확실치 않으나 출가 이후 신계사 보운암에 오랫동안 주석하며 수행정진했으며, 1913년 4월 18일 사시에 경남 밀양 표충사 대원암에서 세수 75세로 입적했다. 이때 수인스님의 세수 15세였으며, 축발득도한 지 5년 후의 일이다.
밀양 표충사 대원암은 정엽스님이 개축한 이래 오늘날까지 비구니선방으로 내려오고 있는 산내암자로서, 소장하고 있는 조왕탱과 칠성탱이 각각 경남 문화재자료 제430호,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운문중은 초조 윤함스님이 제2대 선유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선유스님이 제3대 정엽스님을 법제자로 삼아 법맥을 전수하면서 문중의 기틀을 세웠다. 정엽스님은 부성(冨盛)⋅정인(正仁)스님을 통해 계맥을 계승해가도록 부촉했는바, 이들 제4대손으로부터 부성계통과 정인계통으로 나뉜다. (이상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245~24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