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정화스님(淨華, 1922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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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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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및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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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의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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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의 동기===
은공(恩空) 정안(淨岸)스님은 1951년 강릉 연곡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진경희이다. 전국에 콜레라가 창궐하던 1970년, 스님도 콜레라에 걸려 심하게 앓던 중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내 갈 길이 따로 있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헤매고 있을까?’ 하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트여 이듬해인 1971년 2월 1일 오대산 지장암(강원 평창)에서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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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내금강) 장흥리에서 출생한 정화스님은 부모님과 은사스님 세 분은 친분이 매우 두터웠으며 불심 또한 깊었다. 정화스님은 재 있는 날이면 법문을 들으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금강산 표훈사에 따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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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법당에서 졸다가 스님을 따라가서 방에서 잠들었다. 깨어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는 낮선 장소이고 목침을 베고 잔 탓에 목이 아파 큰소리로 울자 스님이 밤11시에 집에 데려다 주었다. 어린 꼬마를 데려다 준 스님은 나중에 정화스님의 은사스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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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산에 갈매수녀원이 있었는데, 건강이 악화된 수녀님 1분이 스님 댁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린 정화스님은 수녀님을 가까이에서 보고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나타내자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던 어머니가 절에 정화스님을 남겨두고 집으로 갔다.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절에 남긴 이 결정이 곧장 스님의 출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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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강원도 회양군 표훈사 돈도암에서 원각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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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3일 (수) 03:34 판



정의

정화(淨華)스님은 비구니 최고 법계 명사 품수 받았으며 개심사 비구니스님 강원 주지등 후학 양성과 한평생 청정수행자로 수덕사 견성암 선원장등을 지낸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1970~1994 || 서울 광진구 화양동 광림선원 창건 1973~1994 || 20여년이 넘도록 화양동 광림선원에서 안거 1986 || 비구니 이부승 존중아사리에 추대 11994~1996 || 수덕사 견성암 안거 단일구족계단 비구니 증사(별소계단 6회 존증아사리)
연도 내용
1922 강원도 회양 출생
1933 [ 강원도 고성군 표훈사 돈도암 ]에서 원각스님을 은사로 출가
1934 일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39~1944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 여여원에서 효봉스님을 모시고 사미니과 수료
1944 대원암 안거
1944 선학원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50~1951 수덕사 견성암 안거
1952 부산 범어사 대성암 안거
1954 대성암에서 운허 스님 문하에서 능엄경을 수료
1950년대 말 종단정화운동 동참
1961~1962 개심사 비구니 강원 총무
1962~1970 개심사 비구니스님 강원 주지[ 개심사 도감(주지)
1970년대 초 수덕사 극락암에서 안거를 보내고
1996~1999 견성암 제일선원 선원장
2007 조계종 비구니 최고 법계인 명사법계를 품수
2016.4.29. 수덕사에서 입적 세수 95세 법납84세

기타사항

문중 법기法起
수행지침 청정수행
수계제자 진우眞宇・진성眞性・진오眞悟

활동 및 공헌

출가의 동기

금강산(내금강) 장흥리에서 출생한 정화스님은 부모님과 은사스님 세 분은 친분이 매우 두터웠으며 불심 또한 깊었다. 정화스님은 재 있는 날이면 법문을 들으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금강산 표훈사에 따라 다녔다.

하루는 법당에서 졸다가 스님을 따라가서 방에서 잠들었다. 깨어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는 낮선 장소이고 목침을 베고 잔 탓에 목이 아파 큰소리로 울자 스님이 밤11시에 집에 데려다 주었다. 어린 꼬마를 데려다 준 스님은 나중에 정화스님의 은사스님이 되었다.

당시 원산에 갈매수녀원이 있었는데, 건강이 악화된 수녀님 1분이 스님 댁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린 정화스님은 수녀님을 가까이에서 보고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나타내자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던 어머니가 절에 정화스님을 남겨두고 집으로 갔다.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절에 남긴 이 결정이 곧장 스님의 출가로 이어졌다.

1933년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강원도 회양군 표훈사 돈도암에서 원각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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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불사

출가 후 스님은 운문사 강원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대산 지장암으로 돌아와 재무 소임을 맡았다. 그러던 중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을 지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스님은 중국 유학과 천일지장기도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 운문사 강원과 중앙승가대학교의 많은 대중스님들이 발우를 펴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스님에게 누군가가 스님 자리라면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닌가. ‘꿈에 스님을 만나면 부처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많은 스님들이 법석을 여는 꿈을 꾸다니….’

스님은 꿈이 천진암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직감하고 천진암을 제2의 고향으로 삼기로 작정, 천진암으로 내려가 불사에 혼신을 다하였다. 천진암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었으나 당시에는 낡은 법당과 허물어져가는 요사채만으로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천일지장기도를 하면서 건물을 보수하고 부족한 생활용수를 보충하기 위해 지하수를 개발했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이용했던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었으며, 천진암 입구의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한 후 법당과 삼성각과 요사채를 보수하여 천진암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또한 호남에 비구니 선원이 거의 없는 사실이 안타까워 파도처럼 밀려오던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1996년 10월 15일 삼천일 지장기도 불사 회향을 하면서 호남에 첫 비구니 선원인 천진암 백암선원(白岩禪院)을 개원하고 그 해 첫 동안거를 열었다.

은사와 상좌의 입적

1995년 가을, 갑작스럽게 존경하던 은사스님이 입적했고 다음해인 1996년에는 꽃다운 나이의 제자를 떠나보냈다. 이에 정안스님은 생사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스님은 3년만 열심히 정진하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람 수호와 포교 의무를 일단 접어둔 채 천진암은 제자에게 일임하고, 지장암은 권속에게 부탁한 후 오로지 참선 수행에만 몰입하였다.

오대산 지장암 면모 일신

지장암의 모습

스님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와 일상생활이 둘이 아니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처처가 다 배움터요, 행하는 모든 일이 공부 아님이 없다는 자각이 분명해졌다. 이에 스님은 지장암으로 돌아왔고 5년간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화두와 직면하게 되었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화두, 곧 육신을 죽일 것인가, 설자리를 버릴 것인가, 마음을 죽일 것인가 등등이 꼬리를 물고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님은 공동체 삶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에피스드를 수행의 재료로 삼아 어려움을 통해 겸손을, 가난한 살림살이를 통해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또한 북방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라는 명성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도록 지장암 내 기린선원을 정비하여 많은 대중이 살 수 있게끔 조건을 갖추는데 공헌했다.

사찰

  • 보덕사(☎ 041-353-9306):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삼화리 207-36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정안(淨岸)스님 본항목 정안스님(淨岸, 1951~2014) 淨岸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정안(淨岸)스님 봉래(蓬萊)문중 ~의 일원이다
정안(淨岸)스님 혜종(慧宗)스님 ~의 수계제자이다
정안(淨岸)스님 오대산 남대 지장암 ~에서 출가하다
정안(淨岸)스님 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정안(淨岸)스님 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정안(淨岸)스님 오대산 남대 지장암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정안(淨岸)스님 백양사 천진암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
정안(淨岸)스님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을 중창하다
정안(淨岸)스님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을 설립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