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대현스님(大玄, 1957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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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2일 (화) 06:14 기준 최신판



정의

대현(大玄)스님은 호관(好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동학사 강원 중강을 역임하고 칠곡 정암사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7 경북 의성 출생
1976 도봉산 금강암에서 호관(好觀)스님을 은사로 출가
1977 탄허(呑虛)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82 동학사 강원 졸업
1985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9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1992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학과 석사과정 졸업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취득
1996 동학사 강원 중강[1]
2001 일연 강주스님으로부터 전강 받음
2002 홍은사 주지 및 동학사 강원 학감
2004 칠곡 정암사 창건 주지
2015 전국비구니회 11대 집행부 교무부장
2018 제17대 중앙종회 비구니 대표로 선출
2021 칠곡 정암사 주석
문중 법기문중(法起)
수행지침 자기반조(自己返照)
생활신조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행
저서 및 작품 불교 노인복지 실천을 위한 보은사상에 관한 연구〉(석사논문)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진묘(眞妙)·진일(眞一)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정자(淨慈, 8)→원심(圓心, 9)→성안(成安, 10)→호관(好觀, 11)→대현(大玄, 12)

활동 및 공헌

출가

[도봉산 금강암]
사진출처: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536
[대현(사진 왼쪽) 스님과 은사 호관(가운데) 스님이 함께한 2011년 인도 성지순례. 오른쪽 진응 스님은 사형 대우 스님의 상좌다.]
사진출처 :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4870
[정암사 큰법당]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ksj673232/222115567969

정과(淨果) 대현(大玄)스님은 1957년 5월 20일 경북 의성군 춘산면 신흥동 878번지에서 아버지 김영필과 어머니 이순기의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이름은 김정자이다. 스님이 17세 되던 해였다. 전생에 어떤 인연의 소치가 있었는지 어느 날 ‘3년 뒤에는 내가 갈 길로 가야겠구나!’하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3년 후인 1976년에 김성공 스님의 『금강경』 테이프 독경 소리를 듣고 출가를 결심한 다음 내원사로 향했다.

은사이신 호관스님

스님은 1976년 3월 15일 서울 도봉산 금강암에서 호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행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은사스님은 17세에 출가하여 사찰을 맡고 계시면서 항상 본분을 저버리지 않는 수좌의 면모를 지키려고 애쓰시는 분이었다. 또한 남다른 교육열로 상좌들을 가르쳐서 맏상좌 대우스님은 봉녕사에서 강사로 재직했고 대현스님 역시 동학사에서 후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였다.

청정한 수행자의 사상이 온몸에 배인 은사스님은 스님에게 생활 전반에 걸쳐 검소한 생활과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지침을 그 누구보다도 투철하고 엄격하게 가르치셨다. 그처럼 은사스님의 각별한 애정과 지도를 받으며 스님은 3년간의 행자 생활을 마쳤고, 오대산 월정사 한암 큰스님의 기제 날인 1977년 10월 20일 탄허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스님은 행자 생활을 하는 동안 육신을 초월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지병인 관절염의 통증도 참아가며 매일 천배씩 절을 하며 신심을 다져나갔다. 공양주와 채공을 살면서 다진 출가자로서의 생활 신념이 그대로 몸에 배어 하루하루가 즐거운 수행의 길이었다.

동학사 강원과 동국대에서 수학

23세 되던 해에 스님은 유식의 대가이신 호경(好鏡) 조실 노스님이 계시는 동학사에 입학하여 1982년 6월 7일 대교과[2]를 졸업하였다. 이어서 1985년 8월 20일 자운화상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그런 다음 현시대에 알맞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신 은사스님의 권유에 따라 29세 때 동국대학교 선학과에 입학하였다. 1989년 2월 24일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스님은 여태껏 지식 놀음으로 보낸 4년간의 세월을 돌아보고 진면목의 선방 생활을 부러워하다가 석남사, 내원사 등에서 안거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는 환희심이 저절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선방에 다니던 스님은 승려인 자신이 남을 위한 봉사와 사회적인 현실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지 않았는가 자성하고 35세 때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1992년 2월 25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회학과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3월 15일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자신의 공부가 참답거나 성숙하지 못함을 자각하고 경전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도심지에서 교양대학과 그 밖의 강좌를 3년 동안 지도하는 가운데서도 진리에 대한 갈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동학사 승가대학 중강과 강주스님으로부터 전강

그러던 중에 1996년 3월 19일 동학사 일연 강주스님의 인도로 동학사 승가대학 중강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후 2001년 일연 강주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아 학감의 소임을 맡으면서 후학 지도에 전력을 기울였다. 스님에게 강원이라는 곳은 살아 있는 부처와 중생이 숨쉬는 곳이며, 진리는 별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이치를 절실하게 깨우쳐준 곳이었다.

칠곡 정암사 창건

동학사에서 7년 동안 후학을 지도한 대현스님은 2004년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 정암사를 창건한 뒤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진묘(眞妙)·진일(眞一)스님 등이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대현(大玄)스님 본항목 대현스님(大玄, 1957~) 大玄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대현스님(大玄,_1957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대현스님(大玄) 법기문중(法起) ~의 일원이다
대현스님(大玄) 호관스님(好觀) ~의 수계제자이다
대현스님(大玄) 서울 금강암 ~에서 출가하다
대현스님(大玄) 탄허스님(呑虛)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대현스님(大玄)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대현스님(大玄) 칠곡 정암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감원)
대현스님(大玄) 칠곡 정암사 ~을(를) 창건하다
대현스님(大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중앙종회의원

지도

  • 정암사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가천리 346-1



다른 비구니 스님

지식관계망




주석

  1. 강주를 보좌하는 소임
  2. 강원에서 〈화엄경〉과 선에 대한 주요문헌을 공부하는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