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법준스님(法俊, 1924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릴레이션 데이터)
(생애)
50번째 줄: 50번째 줄:
 
|문중|| [[긍탄(亘坦)문중]]
 
|문중|| [[긍탄(亘坦)문중]]
 
|-
 
|-
|수계제자 || 덕현·지성·청민·선하·덕호·경선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덕현·지성·청민·선하·덕호·경선
 
|}
 
|}
  

2024년 9월 14일 (토) 20:39 판


정의

법준스님은 대한불교 보문종의 기틀을 다진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4 경북 청도 출생
1937 보문사에서 은영(恩榮)스님을 은사로 성북구 보문사에서 출가
1939 개운사에서 벽봉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47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47년 전후 보문사 보문강원 입학
1956 보문사 보문강원 대교과 졸업
1981~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 이사
1982 보문사 주지
1984 재단법인 대한불교 보문원 상무이사
1986 우담바라회 창립발기인
2005 대한불교 보문종 원로회의 의장
2006 2006.5.6.(음력 4.9) 입적 (세수 82세, 법납 69세)
문중 긍탄(亘坦)문중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덕현·지성·청민·선하·덕호·경선

활동 및 공헌

출가

법준스님은 1924년 10월 2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 자락에서 불심이 돈독한 창원 황(黃)씨 거사를 부친으로, 예양 천(千)씨 보살을 모친으로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스님의 속명이나 법명 모두 ‘법준(法俊)’이며 법호는 ‘정각(正覺)’이다. 스님이 태어난 호거산 자락에는 천년고찰 운문사와 사리암, 북대암 등 기도터로 유명한 암자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이다. 어린 시절부터 불심이 돈독한 부모님을 따라 운문사와 인연이 있는 탑골승방 보문사를 오고가면서 마음 한 곳에서는 불종자의 씨앗을 키워가고 있었다. 스님은 13세 되던 무렵에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보문사를 찾았는데, 당시 보문사의 주지였던 은영스님을 만나 대화를 하던 중에 감화를 받고 출가수행자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상좌들에게 말씀하시곤 했다. 1937년에 은영스님을 은사로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에서 출가하여 불문에 들었으며, 1939년 삼각산 개운사에서 벽봉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이어 1947년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하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교육과 수행

스님은 은사 은영스님이 후학 양성을 위해 설립한 보문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내전(內典)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당대 최고의 석학 권상로 박사와 김대은스님으로부터 출가수행자의 자세와 경전을 보는 혜안을 익혔으며, 사집과에서는 청성산 내원사를 중창한 수옥스님을 모시고 수학했다. 사교과에 진학해서는 지암 종욱스님으로부터 내전과 범패를 수학하고 1956년에 보문사강원의 대교과를 졸업했다.

대한불교 보문종과 보문사 발전을 위해 헌신

강원 졸업 후에는 은사 은영스님을 모시고 대한불교 보문종과 보문사 발전 및 보문사 중창을 위한 많은 불사에 헌신했다. 1981년에는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 이사로 취임하여 은사 은영스님의 유지를 받들고 비구니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보문종 스님들의 대학 진학 장려와 장학금 재원을 마련했다. 또한 비구니스님의 위상과 역할을 위해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1982년 보문사 주지 소임을 맡은 이래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엄격한 계율과 수행으로 승풍 진작을 도모하면서 대중들을 이끌어 나가면서도 항상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따뜻함으로 대중과 신도를 대하였다. 스님은 포교와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세웠고, 양로원 운영을 통한 복지사업에 열성을 쏟았다. 또 문서포교의 중요성을 인식 월간지 『보문』을 발간하고, 직접 『금강경』을 강설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전했다. 주지 재임 중 창단한 합창단을 통해서 많은 봉사활동과 포료활도에 주력하여 보문종과 보문사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진력하였다.

우담바라회 창립 발기 멤버

법준스님은 은사 은영스님과 함께 비구니스님들의 위상과 권익을 위하여 1986년 ‘우담바라회’의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그 후로도 비구니스님의 교육과 위상을 위해 소임을 맡아 비구니회관 건립에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우담바라회’는 명칭이 몇 차례 개칭되었고 현재는 조계종 한국비구니회라는 이름으로 대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 보문종 원로회 의장

법준스님은 1984년 재단법인 대한불교 보문원 상무이사에 취임하였고, 2005년 12월부터 대한불교 보문종 원로회의 의장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에 원력을 기울였다.

엄할 때는 엄하지만 한없이 따뜻했던 스님

법준스님은 평소에 계율을 지키고 사찰을 경영하는 데에는 매우 엄했다. 당시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일부 불손한 남자들이 비구니 처소를 만만하게 보고 느닷없이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스님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고 배짱있게 대처하여 인근 남성들이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법준스님은 사람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법준스님의 손상좌 자문스님에 따르면 본인이 새벽 3시에 도량석을 해야할 때면 노스님이었던 법준스님이 조용히 손주상좌 자문스님의 도량석을 대신해 주곤 했다고 한다. 몸이 약한 손주상좌가 학교 다니랴 아침 도량석 하고 신중기도 하랴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 했던 것이다. 스님은 또 환속한 보살이 삶이 힘들어 절에 와서 푸념을 할 때면 항상 이들을 따뜻하게 다독여주었다고 한다.

입적

스님은 2006년 음력 4월 9일 보문사에서 세연을 다하여 입적하시니 세수 82세, 법랍 69세였다. 상좌로는 덕현·지성·청민·선하·덕호·경선이 있고, 손상좌로는 진우·진상·진아·진전·진호·진일·진환·진양·정원·성원·자문·송묵·진홍·진언이 있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법준(法俊)스님 본항목 법준스님(法俊, 1924~2006) 法俊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법준스님(法俊,_1924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법준스님(法俊) 긍탄문중(亘坦) ~의 일원이다
법준스님(法俊) 은영스님(恩榮) ~의 수계제자이다
법준스님(法俊) 보문동 보문사 ~에서 출가하다
법준스님(法俊) 벽봉스님(碧峰)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법준스님(法俊) 동산스님(東山) ~(으)로부터 계를 받다 비구니계
법준스님(法俊) 보문사 강원(승가대학) ~에서 수학하다
법준스님(法俊) 보문동 보문사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주지
법준스님(法俊) 대한불교보문원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상무이사
법준스님(法俊) 대한불교 비구니우담바라회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창립 발기인
법준스님(法俊) 대한불교보문종 원로회의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의장

한국 비구니 인명사전 데이터 아카이브로 가기

지도



※ 이상의 내용은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가 대한불교 보문종 보문사로부터 2023년 2월 23일에 제공 받은 자료에 의거하여 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