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삼선암반야선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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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해인사(海印寺) 삼선암(三仙庵) 반야선원(般若禪院) ''' | * ''' 사찰명 : 해인사(海印寺) 삼선암(三仙庵) 반야선원(般若禪院) ''' | ||
* ''' 주소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38 ''' | * ''' 주소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38 ''' | ||
− | 삼선암 반야선원(般若禪院)은 1945년 정성문(鄭性文) 스님이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 + | 삼선암 반야선원(般若禪院)은 1945년 정성문(鄭性文) 스님이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br> |
− | 성문 스님은 삼선암에 선원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뒷방에 달마상을 걸어 놓고 몇 명이 모여서 안으로는 입·방선의 죽비를 쳐서 인(因)을 쌓았고 밖으로는 지장계를 결성, 화주를 하여 사중에 들여 놓는 연(緣)을 맺어 지금의 삼선암이 어엿한 선원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 + | 성문 스님은 삼선암에 선원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뒷방에 달마상을 걸어 놓고 몇 명이 모여서 안으로는 입·방선의 죽비를 쳐서 인(因)을 쌓았고 밖으로는 지장계를 결성, 화주를 하여 사중에 들여 놓는 연(緣)을 맺어 지금의 삼선암이 어엿한 선원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br> |
− | 1960년 비구니계 최초로 전계사가 된 정행(淨行)스님이 오면서 선원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평생 수행과 자비 원력으로 살아온 정행 스님의 회상에서 공부하기 위해 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반야선원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 + | 1960년 비구니계 최초로 전계사가 된 정행(淨行)스님이 오면서 선원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평생 수행과 자비 원력으로 살아온 정행 스님의 회상에서 공부하기 위해 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반야선원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br> |
− | 1981년 도감 혜안(慧眼)스님과 정행 스님의 상좌 혜운(慧雲) 스님이 선원을 15평에서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의 42평으로 증축하여 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정진할 수 있는 수행 공간을 마련하였다. 1982년 동안거부터 3년결사에 들어가 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용맹정진하였고, 이후 한 차례 더 3년결사에 들어갔다. 이러한 정진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매 철마다 50명 이상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선 안거하였다. | + | 1981년 도감 혜안(慧眼)스님과 정행 스님의 상좌 혜운(慧雲) 스님이 선원을 15평에서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의 42평으로 증축하여 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정진할 수 있는 수행 공간을 마련하였다. </br> |
+ | 1982년 동안거부터 3년결사에 들어가 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용맹정진하였고, 이후 한 차례 더 3년결사에 들어갔다. 이러한 정진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매 철마다 50명 이상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선 안거하였다. </br></br> | ||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766. |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7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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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일 (월) 16:48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해인사(海印寺) 삼선암(三仙庵) 반야선원(般若禪院)
- 주소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38
삼선암 반야선원(般若禪院)은 1945년 정성문(鄭性文) 스님이 개원하였으며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많은 비구니 스님이 이 선방에서 참선에 들었다고 한다.
성문 스님은 삼선암에 선원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뒷방에 달마상을 걸어 놓고 몇 명이 모여서 안으로는 입·방선의 죽비를 쳐서 인(因)을 쌓았고 밖으로는 지장계를 결성, 화주를 하여 사중에 들여 놓는 연(緣)을 맺어 지금의 삼선암이 어엿한 선원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960년 비구니계 최초로 전계사가 된 정행(淨行)스님이 오면서 선원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평생 수행과 자비 원력으로 살아온 정행 스님의 회상에서 공부하기 위해 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반야선원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1981년 도감 혜안(慧眼)스님과 정행 스님의 상좌 혜운(慧雲) 스님이 선원을 15평에서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의 42평으로 증축하여 많은 비구니 납자들이 정진할 수 있는 수행 공간을 마련하였다.
1982년 동안거부터 3년결사에 들어가 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용맹정진하였고, 이후 한 차례 더 3년결사에 들어갔다. 이러한 정진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매 철마다 50명 이상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선 안거하였다.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766.
- 지도 : 삼선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