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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금) 21:42 기준 최신판
- 명칭 : 사육신 사건
사육신(死六臣)은 대한민국의 조선왕조 전기인 제6대 왕인 단종(재위기간: 1452~1455)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6명의 관리로서,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이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문관과 무관 신하은 단종의 복위를 결의했다. 세조의 측근 관료들을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던 거사가 드러나자 박팽년은 옥에서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는 처형됐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처형된 사람은 더 있지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이 「육신전(六臣傳)」에서 여섯 사람의 이름을 밝힘에 따라 사육신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육신은 숙종 17년(1691년) 12월에 정식으로 국가의 공인을 받고 복권되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육신
- 위키백과 사육신
- 국사편찬위원회 단종 복위 운동- 사육신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