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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탄허 대종사(1913~1983) 1913년 1월 15일 전북 김제 만경에서 김홍규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금택, 법명은 택성이며 법호가 탄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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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1월 15일 전북 김제 만경에서 김홍규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913년 1월 15일 전북 김제 만경에서 김홍규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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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명은 금택, 법명은 택성이며 법호가 탄허이다. 어려서부터 한문학 전 과정을 마치고 열다섯이 되던 해에 충남 보령에서 기호학파의 거유 최면암의 후학인 이극종 선생에게서 유학 및 도교학을 수료하였으나, 학문의 한계를 느껴 진리를 말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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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명은 금택, 법명은 택성이며 법호가 탄허이다.1983년 6월 5일 오후 향년 71세로 입적하실 때까지 오대산 방산굴에 계셨다. 입적 뒤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국가가 추서하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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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방한암 스님의 명성을 듣고 19살에 처음으로 한암스님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무려 삼 여 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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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이 되던 해 탄허스님은 정든 속세, 부모 형제를 두고 방한암 스님을 찾아 오대산 상원사로 입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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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승려 교육에 많은 힘을 쏟은 탄허스님은 불교학의 최고 학설인 화엄경 120권을 번역, 출간한 것을 비롯하여 화엄론 40권, 육조단경, 보조법어, 사교, 사집 등 많은 불전을 번역하였다. 승려 교육의 공로로 생전에 인촌 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스님의 사상은 한국불교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으며 1983년 6월 5일 오후 향년 71세로 입적하실 때까지 오대산 방산굴에 계셨다. 입적 뒤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국가가 추서하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출처 : 오대산 월정사 수행의 향기 (수행신행) 참조
 
출처 : 오대산 월정사 수행의 향기 (수행신행) 참조

2024년 2월 20일 (화) 05:34 판

탄허 대종사(1913~1983) 1913년 1월 15일 전북 김제 만경에서 김홍규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금택, 법명은 택성이며 법호가 탄허이다.1983년 6월 5일 오후 향년 71세로 입적하실 때까지 오대산 방산굴에 계셨다. 입적 뒤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국가가 추서하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출처 : 오대산 월정사 수행의 향기 (수행신행)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