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비구니 스님이 단일화된 모습으로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8년 2월24일 대한불교비구니우담바라회 창립부터다.
| |
| | | |
− | 오늘날 전국비구니회 전신(前身)인 ‘우담바라회’는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조직이며
| |
− |
| |
− | 이를 계기로 수행 교육 포교 가람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비구니스님들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게 됐다.
| |
− |
| |
− |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종단이 만들어졌던 1955년이 지나,
| |
− |
| |
− | 정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비구니 스님들이 전국의 사찰에 산재하며 가람을 일구고 후학 양성을 위해 강원을 열었다.
| |
− |
| |
− | 1956년 동학사 강원, 1958년 문을 연 운문사 승가대학청암사 승가대학이 대표적이다.
| |
− |
| |
− | 또 우담바라회 창립을 주도한 명성스님은 종비생 이전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재학하며 불교와 신학문을 배우는 등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교육에 매진했다.
| |
− |
| |
− | 이처럼 비구니 스님들은 역량을 강화하다가 1968년 우담바라회 조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
− |
| |
− | 우담바라회 창립을 다룬 당시 불교신문 기사를 보면,
| |
− |
| |
− | "불교현대화를 위한 인재 양성과 시대가 요구하는 포교의 근대화를 위해 전국에 산재한 5000여 비구니들이 단합했다.
| |
− |
| |
− | 이 모임은 지금까지 희박한 역사의식에서 오는 안일한 제사종교를 벗어나, 생활의 도량인 가정으로부터 불법(佛法)을 일으키자는 발원을 세우고
| |
− |
| |
− | 지난 2월24일 오전11시 보문사에서 비구니 100여명이 모여 ‘대한불교비구니우담바라회’를 발족했다.
| |
− |
| |
− | 이 회는 1967년 11월 초순 서울과 지방의 뜻있는 비구니 스님들이 발기해,
| |
− |
| |
− | 지금은 상당수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시내 동대문구 숭인동 청룡사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 |
− |
| |
− | 앞으로 우담바라회는 전국비구니 사암의 실태 파악과, 획일적인 교육 과정 그리고 포교 내용을 통일하는 교화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 |
− |
| |
− | 현재 우담바라회에서 구상하고 있는 사업 목표를 보면 총림의 설치와 전국비구니에 대한 실태조사 착수, 그리고 중앙수도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불교신문 239호 1968년 3월17일자)
| |
− |
| |
− | 당시 우담바라회는 ▲(비구니)총림의 건설 ▲포교의 합리화 ▲복지사회건설이라는 삼대강령을 제창했다.
| |
− |
| |
− | 또한 각 문중별 계보를 정리함으로써 비구니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계기도 되었다.
| |
− |
| |
− |
| |
− | ♦출처<br/>
| |
− |
| |
− |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618
| |
− |
| |
− |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751
| |
− |
| |
− |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77
| |
− |
| |
− | ♦참조<br/>
| |
− |
| |
− | https://www.youtube.com/watch?v=Iarc-QbmAI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