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훤스님(敬昍, 1946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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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승복을 입고 씨름을 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왠지 석연치가 않았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또다시 가방을 들고 교복을 입고 깊은 산중에 다다르니 큰 집 한 채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아무래도 그냥 넘겨버리기엔 예삿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이 승려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비구스님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부유한 환경에서 고이 자란 네가 어찌 이 힘든 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또 어느 날에 “중노릇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이상의 삶이다.” 하고 말씀하면서도 정작 출가하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깊게 맺어진 불연이 끊어질 리 만무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승복을 입고 씨름을 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왠지 석연치가 않았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또다시 가방을 들고 교복을 입고 깊은 산중에 다다르니 큰 집 한 채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아무래도 그냥 넘겨버리기엔 예삿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이 승려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비구스님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부유한 환경에서 고이 자란 네가 어찌 이 힘든 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또 어느 날에 “중노릇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이상의 삶이다.” 하고 말씀하면서도 정작 출가하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깊게 맺어진 불연이 끊어질 리 만무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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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을 입거나 절에 가는 꿈을 자주 꾸던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3월 6일 공주 갑사 대원암의 혜진(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갑사에서의 행자 생활은 그야말로 실수투성이였다. 그동안 일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터라 스님은 모든 일이 서툴러서 매일 어른스님들의 걱정을 듣다시피 하면서 수행자로서의 삶을 익혀나갔다. | 승복을 입거나 절에 가는 꿈을 자주 꾸던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3월 6일 공주 갑사 대원암의 혜진(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갑사에서의 행자 생활은 그야말로 실수투성이였다. 그동안 일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터라 스님은 모든 일이 서툴러서 매일 어른스님들의 걱정을 듣다시피 하면서 수행자로서의 삶을 익혀나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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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항상 천일기도를 하는 등 수행 정진에 열심이었으며 따로 불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또 수도 정진에 열정을 불사르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면 자각심이 절로 우러났다. 어쨌든 많은 납자들이 수행하는 청정도량 승련선원을 보면 스님 한 분의 원력이 얼마나 장대하며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스님은 항상 천일기도를 하는 등 수행 정진에 열심이었으며 따로 불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또 수도 정진에 열정을 불사르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면 자각심이 절로 우러났다. 어쨌든 많은 납자들이 수행하는 청정도량 승련선원을 보면 스님 한 분의 원력이 얼마나 장대하며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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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경훤스님은 승련사의 주지로서 선방외호에 여념이 없다. | 2010년 현재 경훤스님은 승련사의 주지로서 선방외호에 여념이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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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련사는 비구니스님들의 선방답게 매우 고요한 사찰이다. 이것은 공부하고 있는 많은 비구니 스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누구나 소리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산새도 지저귀는 소리를 낮추고 사찰에 사는 강아지도 큰소리를 내지 않으며, 다만 소리 내지 않는 이름모를 꽃들만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다투며 열심히 피었다 지었다 할 뿐이다. 따라서 승련사를 찾아 가더라도 스님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 승련사는 비구니스님들의 선방답게 매우 고요한 사찰이다. 이것은 공부하고 있는 많은 비구니 스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누구나 소리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산새도 지저귀는 소리를 낮추고 사찰에 사는 강아지도 큰소리를 내지 않으며, 다만 소리 내지 않는 이름모를 꽃들만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다투며 열심히 피었다 지었다 할 뿐이다. 따라서 승련사를 찾아 가더라도 스님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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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련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독특한 유물이 남아 있다. 이것은 승련사 오른편에 앉아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금강삼매 수행도’이다. 이 수행도는 유가심인 (또는 불정심인)인을 하고 있으며,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과 경북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수행도와 일치한다. | 승련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독특한 유물이 남아 있다. 이것은 승련사 오른편에 앉아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금강삼매 수행도’이다. 이 수행도는 유가심인 (또는 불정심인)인을 하고 있으며,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과 경북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수행도와 일치한다. |
2022년 6월 29일 (수) 08:54 판
경훤(敬昍)스님 | |
---|---|
법명 | 경훤(敬昍) |
법호 | |
속명 | 유옥순(庾玉順) |
출생 | 1946년 11월 23일(비구니) |
출가 | 1966년 |
입적 | |
사찰 |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경훤(敬昍)스님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승련사 터를 찾아 현재의 모습을 중창하였으며, 비구니 스님의 청정한 수행도량으로 만드신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경력
연도 | 내용 |
---|---|
1946 | 전북 군산 출생 |
1966 | 갑사 대원암에서 혜진(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9 | 정은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74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75 | 동학사 강원 졸업, 전주 감천사 주지 |
1977~1980 | 세등선원, 미타사, 견성암 등에서 안거 성만 |
1985 | 남원 심경암 주지 |
1988~1998 | 가람수호 및 중창 불사(선방, 목욕탕, 화장실, 후원과 요사채 건물 신축, 선방을 개원하여 동안거 결재 시작) |
2010~ | 승련사 주지(현) |
인적사항
문중 | 삼현(三賢) |
특기 | 제다(製茶) |
수계제자 | 일찬(一讚)·일승(一乘)·일공(一空)·일상(一相)·일오(一悟)·일관(一觀)·일원(一源)·일문(一文) |
활동 및 공헌
출가의 계기
경훤(敬昍)스님은 1946년 11월 23일 전북 군산시 임피면 미원리 미산 586번지에서 아버지 유상철과 어머니 김복진 사이의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곳집이며, 이름은 유옥순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스님 어머니의 연세는 이미 환갑이었다. 어머니가 환갑을 맞자 효심이 유독 깊었던 스님은 불공을 하면 부모님이 무병장수 한다는 말을 듣고 이리의 어느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게 되었다. 이 일은 나중에 스님이 출가를 하는 일대사 중요한 인연이 되었다.
절에 가서 스님을 보고 마치 천상에 있는 사람을 대한 듯 상서로운 느낌이 들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설레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서 불공을 드린 이후 그 절에 자주 왕래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승복을 입고 씨름을 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왠지 석연치가 않았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또다시 가방을 들고 교복을 입고 깊은 산중에 다다르니 큰 집 한 채가 나타나는 꿈을 꾸었다. 아무래도 그냥 넘겨버리기엔 예삿일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자신이 승려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비구스님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부유한 환경에서 고이 자란 네가 어찌 이 힘든 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또 어느 날에 “중노릇하는 것은 그 모든 것 이상의 삶이다.” 하고 말씀하면서도 정작 출가하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깊게 맺어진 불연이 끊어질 리 만무했다.
승복을 입거나 절에 가는 꿈을 자주 꾸던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3월 6일 공주 갑사 대원암의 혜진(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갑사에서의 행자 생활은 그야말로 실수투성이였다. 그동안 일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터라 스님은 모든 일이 서툴러서 매일 어른스님들의 걱정을 듣다시피 하면서 수행자로서의 삶을 익혀나갔다.
1969년 음력 10월 15일 마곡사에서 정은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한 스님은 다음해 정월 동학사 강원에 입학하였고, 강원에 재학 중이던 1974년 10월 15일에 법주사에서 석암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승련사 중창
스님은 나이 30세가 되던 해에 동학사 대교를 마치고는 전주 감천사에 가게 되었다. 당시 감천사에는 강사로 유명한 노스님이 주석하셨는데, 노스님 밑에서 경을 더 보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다가 노스님의 권유로 바로 감천사 주지를 맡았다.
1977년 대전의 세등선원에 첫 방부를 들인 후 2년 동안 하안거와 동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1980년에는 음성 미타사에서 하안거와 동안거 결재 이후 수덕사 견성암에서 안거를 성만하였다.
스님은 40세 되던 해인 1985년 남원 심경암의 주지로 취임하였다. 스님이 심경암에 있을 때 ‘절을 짓기가 원인데 터를 좀 보아 달라.’는 보살들의 요청을 받았는데, 인연이 있던 비구 노스님께 말씀을 드리니 명당자리가 있을 테니 잘 알아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신도들과 여러 면장들에게 부탁해서 수소문한 결과 과거의 승련사 터를 찾을 수 있었다.
옛날에 훌륭한 스님 한 분이 그 터에서 사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스님은 1987년 부지를 마련하는 불사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인 1988년 1월, 31평의 대웅전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그해 겨울에 완공하였고 1989년에는 점안식을 올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 현재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당시의 선방 52평을 1990년에 짓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993년에 25평의 목욕탕을, 그 이듬해에 15평의 화장실을 신축하였다.
또한 현재 후원과 요사채로 쓰고 있는 건물은 1995년에 신축하였다.
장장 9년여에 걸친 대역사를 이룬 결과 그해 동안거부터 승련사 선원에서 결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동안 스님의 노고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선방은 1998년에 완공하여 선객들의 방부를 받고 있다.
스님은 항상 천일기도를 하는 등 수행 정진에 열심이었으며 따로 불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또 수도 정진에 열정을 불사르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면 자각심이 절로 우러났다. 어쨌든 많은 납자들이 수행하는 청정도량 승련선원을 보면 스님 한 분의 원력이 얼마나 장대하며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2010년 현재 경훤스님은 승련사의 주지로서 선방외호에 여념이 없다.
수계제자로는 일찬(一讚)·일승(一乘)·일공(一空)·일상(一相)·일오(一悟)·일관(一觀)·일원(一源)·일문(一文)스님이 있다.
승련사
춘향의 고장 남원시내에서 차로 30분정도 장수방향으로 달리면 왼쪽으로 작은 승련사 표지판이 보인다. 좁은 오르막길을 따라 700m 정도 올라가면 돌축대위로 만행산자락에 자리하고 백두대간과 마주한 승련사를 만날 수 있다. 승련사를 오르는 길에는 스님들이 심어놓은 각종 농작물과 연꽃을 바라보며 오르는것도 색다른 맛을 전해준다.
승련사는 전북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 221번지 선학원 소속의 사찰로 현재는 비구니스님들의 기초선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승련사가 위치한 만행산은 불자(佛子)가 열심히 수행하고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이타적인 보살행(菩薩行)을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마을 이름인 식련리는 마을 사람들이 승련사에서 연꽃을 가져다가 심었다고 해서 식련리라 부른다고 한다.
승련사의 창건연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목은집』 ‘승련사기’에는 승련사의 중창과 관련된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목은집에 따르면, 승련사의 옛 이름은 금강사로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 중의 한 분인 정혜국사(淨慧國師)와 제자인 졸암(拙庵)선사가 주석했는데, 졸암선사가 ‘36년간의 중창불사’를 마치고 금강사를 승련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승련사기’는 “당시(고려시대)에 불전, 승무, 선당, 선실, 객실, 곳간, 공양간 등 칸수를 계산하면 모두 1백 11칸이나 되었고, 무량수불을 조성해 스님들의 정진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도량”이라고 전하고 있다.
승련사는 많은 수행승들이 수도하면서 불법에 용맹정진하고 있는 사찰이다. 승련사는 걸출한 여러 스님들과 인연이 닿아 있다. 이곳에 주석하였던 졸암선사, 각운선사를 비롯하여, 태고 보우선사, 환암 혼수선사, 홍혜국사 등이 그들이다.
승련사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채 조선조에 이르러 폐사했다.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인 1799년(정조 23년) 편찬된 『범우고』에만 “승련사가 폐사됐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의 승련사는 경훤 스님이 1986년 논으로 되어 있는 부지 2천여 평을 매입, 대웅전, 대중처소, 선방 등 주요 전각을 지어 사격을 이룬 것으로, 현재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부처님 후불탱화는 영상회상도이며 닫집은 용을 새긴 보궁형으로, 그 장엄함이 뛰어나다. 이밖에도 산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좌우(左右)측 벽면에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 앉은 대웅전 외견(外見)의 장엄함이 그대로 대웅전 안으로 옮겨진 셈이다.
이러한 유명한 승려들의 이름을 뛰어넘고자 그곳에는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밤낮도, 침식도 잊은채로 진리를 찾아 공부하고 있다. 절을 찾아가 구불구불 한참을 가는 길에서는 사색에 잠겨 산보하는 여러 스님들 곁을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맑은 얼굴에 깊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승련사는 비구니스님들의 선방답게 매우 고요한 사찰이다. 이것은 공부하고 있는 많은 비구니 스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누구나 소리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산새도 지저귀는 소리를 낮추고 사찰에 사는 강아지도 큰소리를 내지 않으며, 다만 소리 내지 않는 이름모를 꽃들만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다투며 열심히 피었다 지었다 할 뿐이다. 따라서 승련사를 찾아 가더라도 스님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승련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독특한 유물이 남아 있다. 이것은 승련사 오른편에 앉아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금강삼매 수행도’이다. 이 수행도는 유가심인 (또는 불정심인)인을 하고 있으며,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과 경북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수행도와 일치한다.
스님에 따르면 전통사찰로 지정될 당시 문화재 전문가들이 “금강삼매 수행도는 여느 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수행도로서, 특히 승련사 금강삼매 수행도에는 ‘옴마니반메홈’이라는 진언이 새겨져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이는 승련사에 깃든 수행 풍토가 더욱 깊고 넓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18~319.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2.
- 불교타임즈 ( https://bud1080.tistory.com/1301 )
-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다음카페, https://cafe.daum.net/moonhawje/MqRL/581?q=%EC%8A%B9%EB%A0%A8%EC%82%AC )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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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훤(敬昍)스님 | 본항목 | 경훤스님(敬昍, 1946~ ) | 敬昍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경훤(敬昍)스님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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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훤(敬昍)스님 | 혜진(慧眞)스님 | ~의 제자이다 |
경훤(敬昍)스님 | 갑사 대원암 | ~에서 출가하다 |
경훤(敬昍)스님 | 마곡사 정은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경훤(敬昍)스님 | 법주사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경훤(敬昍)스님 | 동학사 강원 | ~을 졸업하다 |
경훤(敬昍)스님 | 감천사 | ~에서 주지를 살다 |
경훤(敬昍)스님 | 세등선원, 미타사, 견성암 | ~에서 안거를 승만하다 |
경훤(敬昍)스님 | 남원 심경암 | ~에서 주지를 살다 |
경훤(敬昍)스님 | 가람수호 | ~를 위해 불사하다 |
경훤(敬昍)스님 | 승련사 | ~에서 주지를 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