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릴레이션 데이터)
65번째 줄: 65번째 줄:
 
! style="width:120px" | 항목1 || style="width:240px" | 항목2 || style="width:180px" | 관계
 
! style="width:120px" | 항목1 || style="width:240px" | 항목2 || style="width:180px" | 관계
 
|-
 
|-
| [[정안(淨岸)스님]] || [[혜종(慧宗)스님]] || ~의 제자이다
+
| [[지행(智行)스님]] || [[혜종(慧宗)스님]] || ~의 제자이다
 
|-
 
|-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
+
| [[지행(智行)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
 
|-
 
|-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
+
| [[지행(智行)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
 
|-
 
|-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정비하다
+
| [[지행(智行)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정비하다
 
|-
 
|-
| [[정안(淨岸)스님]] || [[만화(萬化) 희찬(喜燦)스님|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 [[지행(智行)스님]] || [[만화(萬化) 희찬(喜燦)스님|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
| [[정안(淨岸)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 [[지행(智行)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
+
| [[지행(智行)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
 
|-
 
|-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
+
| [[지행(智行)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
 
|}
 
|}
 
 
  
 
==참고문헌==  
 
==참고문헌==  

2022년 6월 29일 (수) 23:04 판



정의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1941 충남 당진 출생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
1963 석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세심사 주지 취임 
     룸비니유치원 운영 
 2004 현재 세심사 주지 
  • 문 중 : 청해(靑海)
  •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
  •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


활동 및 공헌

출가와 수행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섬네일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파일473-02 File

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지행(智行)스님 혜종(慧宗)스님 ~의 제자이다
지행(智行)스님 오대산 남대 지장암 ~에서 출가하다
지행(智行)스님 오대산 남대 지장암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
지행(智行)스님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을 정비하다
지행(智行)스님 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지행(智行)스님 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지행(智行)스님 백양사 천진암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
지행(智行)스님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을 설립하다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473~477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