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불필스님(不必, 1937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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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에서]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38]]
 
[[File:6.불필스님3.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35]]
 
[[File:6.불필스님4.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36]]
 
[[File:6.불필스님5.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39]]
 
[[File:6.불필스님6.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37]]
 
  
 
[https://ko.wikipedia.org/wiki/성철 성철스님]은 출가하고 얼마 후 세속에 떨치고 온 부인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따님이 바로 불필(不必)스님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성철 성철스님]은 출가하고 얼마 후 세속에 떨치고 온 부인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따님이 바로 불필(不必)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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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 제자로 도륭(道隆)・도현(道炫)・도명(道明)・명조(明照)・대안(大安)・대일(大日)・대원(大圓)・대주(大珠)・원욱(元旭)・진종(眞宗)・일구(一句)・일태(一太)・일경(一慶)・일옥(一玉)・천경(千鏡)・선조(禪虎)・영근(瑛瑾)・천광(千光)・지광(智光)・육청(六淸)・중안(中安)・중정(中定)・만봉(萬峰)스님 등이 있다.
 
수계 제자로 도륭(道隆)・도현(道炫)・도명(道明)・명조(明照)・대안(大安)・대일(大日)・대원(大圓)・대주(大珠)・원욱(元旭)・진종(眞宗)・일구(一句)・일태(一太)・일경(一慶)・일옥(一玉)・천경(千鏡)・선조(禪虎)・영근(瑛瑾)・천광(千光)・지광(智光)・육청(六淸)・중안(中安)・중정(中定)・만봉(萬峰)스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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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6.불필스님6.jpg|섬네일|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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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oknamsa.or.kr/www/index.php 석남사]==
 
==[http://www.seoknamsa.or.kr/www/index.php 석남사]==
 
[[File:6.불필스님7석남사.jpg|섬네일|[석남사 대웅전] </br>사진 출처: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brd/board/242/L/CATEGORY/337/menu/246?brdType=R&thisPage=83&bbIdx=7697&searchField=&searchText=]]
 
[[File:6.불필스님7석남사.jpg|섬네일|[석남사 대웅전] </br>사진 출처: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brd/board/242/L/CATEGORY/337/menu/246?brdType=R&thisPage=83&bbIdx=7697&searchField=&searchText=]]

2024년 10월 6일 (일) 17:49 기준 최신판



정의

불필(不必)스님은 성철큰스님의 딸로 태어나 인홍스님은 은사로 석남사에서 출가하여 오로지 참선 수행으로 한 생을 지내고 있으며 해인사 금강굴을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37 경남 산청 출생
1956 진주 사범학교 졸업, 석남사에서 인홍(仁弘)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7 석남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1 통도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5 해인사 금강굴 창건
1988 [금강굴 금강보전 문수원을 불사
1995 대원사, 해인사 국일암, 보현암, 청량사, 태백산 홍제사, 사불산 윤필암, 묘적암 안거 성만
2002 석남사 심검당에서 정진
2004 석남사 주석(선덕)
2019 명사법계 품수
2024 해인사 금강굴 주석
문중 법기문중(法起)
생활신조 오로지 참선 수행
저서 불필, 『영원에서 영원으로』, 김영사, 2012 (회고록)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도륭(道隆)・도현(道炫)・도명(道明)・명조(明照)・대안(大安)・대일(大日)・대원(大圓)・대주(大珠)・원욱(元旭)・진종(眞宗)・일구(一句)・일태(一太)・일경(一慶)・일옥(一玉)・천경(千鏡)・선조(禪虎)・영근(瑛瑾)・천광(千光)・지광(智光)・육청(六淸)・중안(中安)・중정(中定)・만봉(萬峰) 외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부영(扶榮, 6)→심공(心空, 7)→정자(淨慈, 8)→인홍(仁弘, 9)불필(不必, 10)→도륭(道隆, 11), 도현(道炫, 11), 도명(道明, 11), 명조(明照, 11), 대안(大安, 11), 대일(大日, 11), 대원(大圓, 11), 대주(大珠, 11), 원욱(元旭, 11), 진종(眞宗, 11), 일구(一句, 11), 일태(一太, 11), 일경(一慶, 11), 일옥(一玉, 11), 천경(千鏡, 11), 선호(禪虎, 11), 영근(瑛瑾, 11), 천광(千光, 11), 지광(智光, 11), 육청(六淸, 11), 중안(中安, 11), 중정(中定, 11), 만봉(萬峰, 11), 선정(禪定, 11), 무념(無念, 11), 삼봉(三峰, 11)

활동 및 공헌

출생

성철스님은 출가하고 얼마 후 세속에 떨치고 온 부인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따님이 바로 불필(不必)스님이다. 불필스님은 1937년 7월 2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216번지에서 아버지 이영주와 어머니 이덕명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합천이며, 이름은 이수경이다.

스님이 태어날 때 다른 아기들과 달리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났으며, 특별한 태몽도 없어 할아버지는 목숨 수(壽)에 벼슬 경(卿)를 붙여 수경이라고 이름 지었다. 남의 땅을 밟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집안이었기에 일제 치하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어린 시절은 남부럽지 않았다.

언니의 죽음

스님이 아홉살 되던 해, 일신학교(현재의 진주여고) 입학을 앞둔 추석 무렵이었다. 스님에게 석순이란 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밖에 놀러 나갔다가 들어와 자리에 누우면서 자기 손을 쳐다보더니 “엄마 나를 믿지 마.”하였다고 한다. 그러더니 3일 후에 죽고 말았다. 온 집안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언니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스님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며 사람을 연구하는 발명가가 되겠다고 작정했다. 이때 스님은 에디슨을 존경하였다고 한다. 스님에게 우상이나 다름없던 언니의 죽음으로 진주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낸다.’는 옛말을 들어 할아버지를 졸라 국민학교 4학년 때 지리산 자락의 산청 묵곡에서 서울 혜화국민학교로 전학하였다.

성철 큰스님을 처음으로 뵙다

스님이 아버지인 성철 스님을 처음 뵌 것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큰스님께서 경남 월래 묘관음사에 계시니 찾아뵙도록 하자.”며 청담스님의 딸인 묘엄스님이 학교로 스님을 찾아온 것이다. 한 번도 불러 보지도 못 봤던 아버지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하며 호기심 반 미움 반에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마음으로 삼촌과 묘엄스님을 따라나섰다. 다 떨어진 누더기에 부리부리하게 광채 나는 큰 눈만 보이는 스님을 보며 저 분이 내 아버지인가 하는 순간, 큰스님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라, 가!” 그것이 아버지인 스님과의 첫 대면이었다.

그 다음해 6·25 전쟁이 발발했다. 스님은 피난민 대열에 섞여 걸어서 고향까지 내려갔다. 전쟁 통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손녀를 할아버지는 ‘공부를 못 시키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서울에 보내지 않겠다.’하시며 스님을 진주 사범학교에 입학시켰다.

사범학교 2학년 방학 때 안정사 천제굴에 큰스님이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 큰스님이 스님을 보자마자 ‘참 못됐다’고 말씀하셨다. 스님은 큰스님이 자신의 속마음을 잘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스님이 서투른 인사를 드리니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물으셨다. “행복을 위해 삽니다.”

큰 스님의 물음에 답하고 난 뒤 이번에는 스님이 여쭈었다. “행복에는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이 있는데, 어떠한 것이 영원한 것이고 어떠한 것이 일시적인 것입니까?” “부처님처럼 도를 깨쳐서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이 세상의 오욕락(五慾樂)은 일시적인 것이다.”

큰스님의 말씀에 스님이 다시 말했다. “나는 바보가 아닌 이상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이때 스님은 세속의 인연보다는 그저 큰스님으로서 존경하는 마음만 들었다. 큰스님과 불필스님 사이에 몇가지의 선문답이 이어졌다. “그런 것이 공부입니까?” “화두를 해서 깨쳐야 한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화두를 받았다. “그러면 학교에 가지 않고 이 공부를 하겠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끝을 맺지 않으면 큰 일도 마찬가지다.”

학업을 일단 끝마치라는 큰스님의 말씀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화두에 방해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교생 실습 중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맡은 학급은 비록 1학년이지만 분상에서는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이 때 친구 옥자(백졸스님)와 함께 출가를 결심했다.

출가와 수행

해인사 청량사에서 첫 하안거를 성만한 이후 절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온 집안이 야단이었다. “내 죽음을 대신해 줄 사람이 있으면 절에 가지 않겠다.”는 스님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평생 동안 꼿꼿하고 도도하게 사셨던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는 집안이 다 망했다고 한탄했다.

스님은 세연을 끊고 친구 옥자와 함께 해인사 청량사에서 큰스님께 인사드릴 때, 헛되이 보낸 지난 20년이 마냥 후회스러웠다고 한다.

백졸스님과 불필스님은 대중 스님들과 함께 하안거 정진을 시작하면서 절대로 두 번은 자지 말자고 다짐했다. 잠깐 누웠다가 눈을 뜨면 더 이상 자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자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누워도 깊은 잠에 빠지지 않았다. 일단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절대 눕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대웅전 뜰을 거닐고, 낮에는 청량사 뒷산을 오르내렸다. 피로하면 잠깐 소나무에 기대어 쉴 뿐이었다. 그러면서 될 수 있으면 추녀 밑에 들어가지 않고 비가 오면 그 비를 그대로 맞으며 하안거를 보냈다. 이때 스님이 절실히 느낀 것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절대로 피로하거나 괴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해제 후 백졸스님과 함께 거지 차림을 하고 태백산 홍제사로 인홍스님을 찾아갔다. 동안거에 인홍 스님께서는 묘경, 성우, 혜춘, 철마, 법희, 현각, 혜근 스님과 함께 비상한 각오로 정좌하셨다. 밤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면 밖으로 나와 눈 속에서 행선을 하였다. 은은한 달빛 아래 흰 눈에 무릎까지 쑥쑥 빠지는데도 추운 줄 모르고 거닐다가 배가 고프면 시금치나 생감자를 스님들 몰래 먹기도 하였다. 오직 화두를 일념으로 보낸 그 겨울, 스님의 눈빛은 유난히 희고도 밝았다. 동안거를 마치고 인홍스님은 대중과 함께 석남사로 가시고 스님은 백졸스님과 함께 사불산 윤필암 묘적암으로 두루 다녔다.

1956년 석남사에 찾아가 인홍 스님을 은사로 사미니계를 받고, 1961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스님께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그 후 석남사 심검당에서 3년 결사를 하고, 1975년에 해인사 금강굴을 짓고는 오직 수행에만 정진하였다. 1988년 해인사 금강굴 금강보전 문수원을 불사한 스님은 오대산 지장암, 팔공산 부도암과 양진암, 지리산 대원사, 해인사 국일암과 극락원 보현암 등을 거치며 거듭 정진하였다. 불필스님은 2019년 비구니 스님에 대한 최고 지위인 명사법계를 품수했다.

수계 제자로 도륭(道隆)・도현(道炫)・도명(道明)・명조(明照)・대안(大安)・대일(大日)・대원(大圓)・대주(大珠)・원욱(元旭)・진종(眞宗)・일구(一句)・일태(一太)・일경(一慶)・일옥(一玉)・천경(千鏡)・선조(禪虎)・영근(瑛瑾)・천광(千光)・지광(智光)・육청(六淸)・중안(中安)・중정(中定)・만봉(萬峰)스님 등이 있다.

석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道義)가 호국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이다.

창건 당시 화관보탑(華觀寶塔)의 빼어남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하였다고 하며, 일설에는 가지산의 별명이 석안산(碩眼山)이기 때문에 석안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1674년(현종 15)에 언양현감 강옹(姜甕)의 시주로 탁령(卓靈)·자운(慈雲)·의철(義哲)·태주(泰珠)가 중창하였고, 진혜(振慧)·쌍원(雙遠)·익의(益儀)·성진(性眞)이 단청을 하였으며, 동시에 종과 북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하였다. 이어 정우(淨佑)·각일(覺日)·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청운당·청화당·향각(香閣)을 증축하였고, 희철(熙哲)이 명부전을 세웠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枕虛)와 수일(守一)이 중수하였고, 1912년에는 우운(友雲)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이후에 크게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7년 비구니 인홍(仁弘)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증축하였다. 이 때부터 비구니 수도처로서 각광을 받은 이 절에는 항상 100명이 넘는 비구니스님들이 엄격한 계율을 준수하면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극락전·설선당(說禪堂)·조사전(祖師殿)·심검당(尋劍堂)·침계루(枕溪樓)·정애루(正愛樓)·종루(鐘樓)·무진료(無盡寮)·대방(大房) 등 30여 동이 있다.

이들 가운데 극락전은 1791년(정조 15)에 세운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문화재로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보물 제369호의 석남사 팔각원당형부도(石南寺八角圓堂形浮屠)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인 삼층석탑, 조선 초기에 제작된 엄나무구유와 돌구유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824년에 도의가 호국의 염원 아래 15층으로 세운 것이라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973년 스리랑카의 승려가 사리 1과를 봉안하면서 3층으로 개축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 4기의 부도가 있다.

해인사 금강굴

1976년 창건한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서 보현암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곳의 지명이 오가리(五佳里)인데 이 다섯가지의 아름다움이란 다음과 같다. 청룡과 백호와 전망(展望)과 문수보살의 정진과 보현보살의 교화, 이 다섯가지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다. 금강암은 금강굴(金剛窟)이라고도 불린다.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불필(不必)스님 본항목 불필스님(不必, 1937~) 不必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불필스님(不必, 1937生, 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속성
불필스님(不必) 법기문중(法起) ~의 일원이다
불필스님(不必) 인홍스님(仁弘) ~의 수계제자이다
불필스님(不必) 울산울주 석남사 ~에서 출가하다
불필스님(不必) 자운스님(慈雲) ~(으)로부터 계를 받다 사미니계, 비구니계
불필스님(不必) 명사법계(明師法階) ~을(를) 품수하다
불필스님(不必) 해인사 금강굴 ~을(를) 창건하다
불필스님(不必) 안거 ~을(를) 성만하다 산청 대원사, 합천 해인사 국일암, 합천 해인사 보현암, 봉화 청량사, 태백산 봉화 홍제사, 문경 대승사 윤필암(사불산), 문경 대승사 묘적암 등

지도

  • 석남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다른 비구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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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