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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650~655.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650~655. |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42. |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42. | ||
−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87, 394 | +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87, 391, 394. |
* 법보신문, 사찰과 자연 5 - 양산 천성산 내원사 (2004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00 | * 법보신문, 사찰과 자연 5 - 양산 천성산 내원사 (2004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00 | ||
* 매일노동뉴스, 도롱뇽 소송인단 100만명 모집 (2004년)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220 | * 매일노동뉴스, 도롱뇽 소송인단 100만명 모집 (2004년)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2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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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8일 (수) 06:22 기준 최신판
혜등(慧燈)스님 | |
---|---|
법명 | 혜등(慧燈) |
법호 | 인하(忍河) |
속명 | 김정심(金正心) |
출생 | 1946.07.27. |
출가 | 1959년 |
입적 | |
사찰 | 내원사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혜등(慧燈)스님은 자윤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내원사 주지를 역임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46 | 전북 김제 출생 |
1959 | 내원사에서 자윤(慈允)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0 | 내원사에서 석주(昔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63 | 동학사 강원 사교과[1] 수료 |
1964 | 범어사에서 고산스님으로부터 화엄경 현담 수학 |
1965 | 범어사에서 화엄경 현담 졸업,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79 |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내원사 교무 소임 |
1980~1982 | 세등선원, 윤필암, 견성암, 양진암, 내원암 등 안거 성만 |
1983~1985 | 해인사 삼선암 3년 결사 성만 |
1986 | 내원사 재무 소임 |
1988 | 경산 외양사 주지 취임 |
1993 | 혜원사(통도사의 군산포교당(전북)) 주지 취임 |
1995~2003 | 동학사 동문회 회장(9년간 역임) |
1998~2004 | 내원사 주지 |
문중 | 삼현(三賢)문중 |
수행지침 |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以生其心) |
상훈 | ‘우수사찰' 선정, 종정스님 표창패 (2003)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호경(皓憬)·현도(賢度)·도응(導應)·영휴(暎休)·담영(淡映)·고원(固苑)·도훈(道勳)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귀완(貴完, 7)→법희(法喜, 8)→수옥(守玉, 9)→자윤(慈允, 10)→혜등(慧燈, 11)→호경(浩憬, 12), 현도(賢度, 12), 도응(道應, 12), 영휴(暎休, 12), 담영(淡映, 12), 도훈(道勳, 12), 고원(古苑, 12), 효광(孝光, 12), 상지(祥知, 12), 지웅(志雄, 12), 지항(芝巷, 12), 적인(寂印, 12) |
활동 및 공헌
출가
인하(忍河) 혜등(慧燈)스님은 1946년 7월 27일 전북 김제시 신숭동에서 아버지 김요인과 어머니 정귀례 사이의 2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울산이며, 이름은 김정심이다.
수옥 노스님과의 인연
스님이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속가의 바로 윗집에 법희스님의 유발 상좌인 원각성 보살님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옥 노스님이 선방의 장판을 구입하고자 전라도로 나와 원각성 보살님 집에 머무르며 전주로 장을 보러 다니셨다.
수옥 노스님이 오시면 어머니는 과일과 맛있는 음식을 차려 들고 윗집에 자주 갔다. 호기심에 어머니를 따라온 혜등스님을 노스님은 너무나도 어여삐 여겨주셨다. 이후 혜등스님에게 깊은 인연을 느끼셨던지 노스님은 혜등스님를 보러 일부러 집으로 오셨는데 어린 마음에 부끄럽고 놀라 노스님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숨어 있다가 돌아가시는 스님의 모습만 황홀히 바라보았다.
출가
당시 선암사에 계시던 무주스님과 자광스님도 먼 길을 떠날 때면 원각성 보살집에서 머물곤 했다. 이처럼 스님의 이웃집은 스님들이 쉬어 가시던 집이었다. 스님들이 오실 때마다 윗집으로 올라가 생활할 정도로 스님들을 따랐던 혜등스님은 스님들의 얘기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차츰 출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수옥 노스님을 다시 뵙고 발심하여 출가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졌다. 스님은 국민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진학 문제로 가정 방문을 오신 담임선생님 앞에서 출가의 뜻을 당당히 밝혀 1959년 3월 5일 14세에 내원사에서 자윤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게 되었다. 행자 시절에는 성욱, 석정(탄형) 행자님과 같이 생활을 했으며, 수옥 노스님의 시자[2] 소임이 주어져 늘 심부름을 다니느라 바빴다. 자연히 다른 두 행자 스님 보다 공부가 늦어졌지만 혜등스님은 이해력이 빨랐기 때문에 뒤지지 않았다.
수학과 수행
1960년 2월 15일 내원사에서 석주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한 스님은 1961년 16세에 자광스님의 가르침으로 [『치문』을 배웠는데, 혜등스님은 도반스님에게 “글 배우지 말고, 선방에 가서 공부하자.”고 부추겨서 보따리를 싸 다락에 넣어두고는 선방에 가서 참선 공부를 하였다.
어느 날 수옥 노스님이 그 사실을 아시고 3명의 스님을 부른 뒤 성욱스님은 은사스님한테 보내고, 석정스님은 성불암에 계신 은사 스님께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스님에게는 속가로 돌아가라고 할 정도로 걱정이 대단하셨다. 그 문제로 결국에는 참회와 종아리를 맞고 벌로 산에서 나무를 세 짐씩 하였다.
이때 스님은 시자 사는 것이 싫어서 공양주[3]를 자원했는데, 스님의 빠른 몸놀림이 마음에 드셨는지 15일 만에 노스님의 부름으로 다시 시자를 살게 되었다. 이후 스님은 시자 일을 하느라고 후원 일을 해보지 못했는데, 지금도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의 스님들은 공부에 대한 열정과 구도의 노력이 대단했는데, 혜등스님은 특히 성우스님과 법형스님을 가까이 뵈며 존경의 마음을 길렀다. 성우스님은 눈에서 퍼런 불빛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정진을 하였다. 법형스님은 내원사 낙성식을 한 직후에 권속이 없어 적적히 여기고 계시다가 혜등스님에게 함께 지낼 것을 권하였다. 이렇게 하여 스님은 내원사에 걸망을 풀게 되었다. 총무 소임을 맡은 법형스님은 자칫 유실될 뻔한 사찰 토지를 찾는 데 많은 애를 쓰셨다. 그 결과 김장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 웅촌의 총 지적 141,550평 정도의 논을 되찾았다.
혜등스님은 18세 되던 1963년 무량사 강원에서 내전 수학 중 동학사 강원으로 월반을 하여 『사집』ref> 선종에서 중시하는 것으로, 불교를 학습하는 데에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책. 곧 《서장(書狀)》, 《도서(都書)》, 《선요(禪要)》, 《절요(節要)》를 이른다. </ref>부터 배웠다. 이때 노전[4] 소임을 보며 교무 소임을 사는 성일스님과는 같은 방을 쓰면서 우애를 돈독히 나눴다. 『사교』ref> 여러 설이 있으나 보통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의 4과목을 강원에서는 4교라고 한다. </ref>반 때 경봉 강사스님이 입적하시고, 뒤를 이어 대처승 혜성스님이 몸이 불편하여 강사를 그만 두셔서 도반 스님들과 진우스님, 성일스님과 함께 동학사를 나왔다.
그리고 성수스님이 계시는 범어사를 찾아 그곳에 머물며 가르침을 주실 것을 부탁드렸으나 '범어사는 역사 이래로 비구니를 받아준 적이 없다.”며 거절하였다. 다행히 내원사 미타암에 계실 때 뵌 인연으로 허락을 얻어 진우, 성일, 재문스님과 이외의 비구스님 다섯 분과 함께 범어사 청련암에 머물며 고산스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곳에서 『현담』까지 보고 졸업한 해가 1965년이었다. 스님은 당시 『화엄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언젠가는 시간을 내어서 목판으로 된 화엄경을 꼭 볼 생각이다.
속세의 공부를 하다
스님은 1965년 3월 15일에 범어사에서 석암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이후 원광사 원성 노스님이 학교에서 세상의 기본 지식을 배워오라 권하여 검정고시를 볼 요량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부단한 노력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한 혜등스님은 1972년 명성여고에 입학하여 1975년에 졸업을 하였으며, 그해 동국대학교 승가학과에 입학해서 1979년에 졸업하였다.
수행
1979년 내원사에서 교무 소임을 1년간 살았으며, 이듬해에는 세등선원에서 하안거를, 윤필암에서 동안거를 성만하였다. 윤필암 산철에는 3시간이 5분처럼 여겨질 정도로 정진하였다.
어느 날 밤, 정진하다 잠시 졸기라도 할라치면 밖에서 돌이 탁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 졸음이 달아났고, 함께 공부하던 심원스님이 깨워주는 소리에 일어나 보면 심원스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님은 신장님이 옹호해 주신다고 생각하여 더욱 정진에 힘을 쏟았다.
1981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하안거,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성만하였고, 1982년에는 내원암에서 동안거를 성만하였다. 그리고 1983년에 해인사 삼선암에서 3년 결사를 나며 정진의 고삐를 더욱 견고히 하였다.
경산 외양사 주지, 군산의 포교당인 혜원사 소임, 내원사 주지를 역임
스님은 내원사에서 2년간 재무 소임을 맡았고, 1988년에는 경산 외양사에서 5년간 주지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3년 군산의 포교당인 혜원사에서 3년간 소임을 맡았으며, 1998년 음력 2월 7일 내원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선방 대중 스님들의 심부름꾼이라는 마음으로 대중 외호를 하는 혜등스님은 평상시에도 금강경의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以生其心)’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정진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 아상(我相)을 가득 품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아상을 없애면 그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나' 라는 존재는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나'를 내세워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서로 타협하지 못하는 현실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2004년 혜등스님은 내원사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호경(皓憬)·현도(賢度)·도응(導應)·영휴(暎休)·담영(淡映)·고원(固苑)·도훈(道勳)스님 등 12명이 있다.
양산 내원사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써 수려한 산수와 6Km에 달하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2의 금강산이라 일컬어지는 천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300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성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다.
1898년 석담유성(石潭有性) 선사가 설우(雪牛), 퇴운(退雲), 완해(玩海) 등과 더불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여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 명명한 후 선찰로써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께서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 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을 잇는 명안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6ㆍ25사변으로 사원이 전소되자, 비구니 수옥스님의 원력으로 10년 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써 새롭게 중창되었다. 그 후 만공스님의 법제자인 법희, 선경스님등 납자들의 정진처가 되었다. 19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삼년결사를 시작한 이후 1999년 여섯 번째 회향을 하였고 지금도 비구니 선객의 정진도량으로 선불장이 되고 있다.
- 원효대사와 비구니 수옥 스님의 이야기 * 1,300여 년 전 원효대사는 중국 태화사(太和寺)에서 건너온 1천 명의 대중들을 이끌고 이 산으로 들어와 대둔사(大屯寺)와 89개의 암자를 창건했다고 한다. 당시의 암자 가운데 상ㆍ중ㆍ하 내원암이 있었는데 조선후기에 발생한 큰 수해로 대둔사와 89암자 대부분이 유실되고 하내원암만 남아,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내원사로 법등을 잇게 된 것이다. 한말에는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는 선찰(禪刹)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으나 6.25로 소실되고 말았는데, 오늘날의 내원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 시기에 이룩한 비구니 수옥(守玉) 스님의 업적이다. 스님은 어려운 시절에 전쟁으로 폐허화된 내원사를 중건하고 단절된 선원을 복원하여, 오늘날 명실공히 내원사를 비구니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일구어낸 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원으로서 내원사는 근대 경허(鏡虛) 스님의 법제자인 혜월(慧月) 선사가 조실로 주석하며 운봉(雲峰)ㆍ향곡(香谷)ㆍ명안(明眼) 선사 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禪脈)을 잇는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이러한 수행도량으로서의 가풍(家風)을 이어받아 오늘날에도 ‘동국제일선원’으로서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고 있으며, 눈 푸른 선승들의 수행공간 구실도 아울러 담당하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650~655.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542.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87, 391, 394.
- 법보신문, 사찰과 자연 5 - 양산 천성산 내원사 (2004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5600
- 매일노동뉴스, 도롱뇽 소송인단 100만명 모집 (2004년)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220
- egloo, 내원사 혜등스님,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2008년) http://egloos.zum.com/vega576/v/1254730
- 가야일보, 천성산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찰 '내원사' (2018년) http://www.gaya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53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혜등(慧燈)스님 | 본항목 | 혜등스님(慧燈, 1946~) | 慧燈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혜등스님(慧燈,_1946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
혜등스님(慧燈) | 삼현문중(三賢) | ~의 일원이다 | |
혜등스님(慧燈) | 자윤스님(慈允) | ~의 수계제자이다 | |
혜등스님(慧燈) | 양산 내원사 | ~에서 출가하다 | |
혜등스님(慧燈) | 석주스님(昔珠)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혜등스님(慧燈) | 석암스님(昔巖)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혜등스님(慧燈) | 경산 외양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혜등스님(慧燈) | 군산 혜원사(군산포교당)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혜등스님(慧燈) | 양산 내원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혜등스님(慧燈)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대전 세등선원(탄방동), 문경 대승사 윤필암, 예산 수덕사 견성암, 대구 동화사 양진암(도학동), 대구 동화사 내원암(도학동), 합천 해인사 삼선암 등 |
지도
- 내원사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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