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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백운산 아래 청풍김씨(淸風金氏) 마을을 지나 백운산 자락을 올라간 | + |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백운산 아래 청풍김씨(淸風金氏) 마을을 지나 백운산 자락을 올라간 곳인 백운산 서쪽 중턱으로 이 산은 의왕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br> |
이곳은 옛날 영평현(永平縣)에 속해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인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산4-1번지 백운산(白雲山) 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절이 위치한 백운산은 일대에서 가장 높고 큰 반면 부드러운 능선과 계곡을 지니고 있어 어머니 품과 같이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백운사는 그러한 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br> | 이곳은 옛날 영평현(永平縣)에 속해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인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산4-1번지 백운산(白雲山) 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절이 위치한 백운산은 일대에서 가장 높고 큰 반면 부드러운 능선과 계곡을 지니고 있어 어머니 품과 같이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백운사는 그러한 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br> | ||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운사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창건연도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 창건 이후 절의 역사도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조선시대 동안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로 계속 법등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고종31(1894년)에 산불로 소실되고 말았다.현재의 백운사는 절 아래 마을에 살던 청풍김씨가 고종32(189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창한 것이다. </br> |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운사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창건연도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 창건 이후 절의 역사도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조선시대 동안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로 계속 법등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고종31(1894년)에 산불로 소실되고 말았다.현재의 백운사는 절 아래 마을에 살던 청풍김씨가 고종32(189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창한 것이다. </br> |
2024년 5월 9일 (목) 22:33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의왕 백운사(白雲寺)
- 주소 :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1-1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백운산 아래 청풍김씨(淸風金氏) 마을을 지나 백운산 자락을 올라간 곳인 백운산 서쪽 중턱으로 이 산은 의왕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옛날 영평현(永平縣)에 속해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인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산4-1번지 백운산(白雲山) 서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절이 위치한 백운산은 일대에서 가장 높고 큰 반면 부드러운 능선과 계곡을 지니고 있어 어머니 품과 같이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백운사는 그러한 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운사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창건연도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 창건 이후 절의 역사도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조선시대 동안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로 계속 법등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고종31(1894년)에 산불로 소실되고 말았다.현재의 백운사는 절 아래 마을에 살던 청풍김씨가 고종32(1895)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창한 것이다.
절의 내력은 명확하지 않지만 백운사는 근대 한국불교사를 대표하는 선승인 金烏 대선사가 머물면서 수행승들을 지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1971년에는 비구니 정화(貞和) 스님이 주석하면서 도량을 개수한 바 있다. 현재는 2002년에 중건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요사채 1채와 해우소 1채가 있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백운사(의왕)
- 지도 : 백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