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담치익(海曇致益)"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 ''' 법호·법명 : 해담치익(海曇致益, 1862~1942) ''' * ''' 생애·업적 ''' 성은 서씨(徐氏). 호는 해담(海曇). 19세에 출가하여 통도사 춘담화상(...)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 ''' 생애·업적 ''' | * ''' 생애·업적 ''' | ||
성은 서씨(徐氏). 호는 해담(海曇). 19세에 출가하여 통도사 춘담화상(春潭和尙)의 제자가 되었으며, 용문사 해주(海珠)에게 불경을 배우고 1894년(고종 31)에 고운사(孤雲寺) 음관화상(音觀和尙)의 법을 이어받았다. </br> | 성은 서씨(徐氏). 호는 해담(海曇). 19세에 출가하여 통도사 춘담화상(春潭和尙)의 제자가 되었으며, 용문사 해주(海珠)에게 불경을 배우고 1894년(고종 31)에 고운사(孤雲寺) 음관화상(音觀和尙)의 법을 이어받았다. </br> | ||
− | 그 뒤 통도사 강주(講主)가 되어 학도를 교육하였으며, 1929년 선교양종칠교정(禪敎兩宗七敎正)의 1인으로 추대되었다. 계율을 잘 지켰으므로 율사(律師)의 칭호를 들었으며, 보살계법회(菩薩戒法會)의 수계사(授戒師)로 활동하였다.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입적하였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증곡집(曾谷集)』이 있다. | + | 그 뒤 통도사 강주(講主)가 되어 학도를 교육하였으며, 1929년 선교양종칠교정(禪敎兩宗七敎正)의 1인으로 추대되었다. 계율을 잘 지켰으므로 율사(律師)의 칭호를 들었으며, 보살계법회(菩薩戒法會)의 수계사(授戒師)로 활동하였다.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입적하였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증곡집(曾谷集)』이 있다.</br></br> |
− | ※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83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치익 | + | ※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83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치익</br></br> |
[[분류 : 비구스님]] | [[분류 : 비구스님]] |
2024년 6월 8일 (토) 21:40 기준 최신판
- 법호·법명 : 해담치익(海曇致益, 1862~1942)
- 생애·업적
성은 서씨(徐氏). 호는 해담(海曇). 19세에 출가하여 통도사 춘담화상(春潭和尙)의 제자가 되었으며, 용문사 해주(海珠)에게 불경을 배우고 1894년(고종 31)에 고운사(孤雲寺) 음관화상(音觀和尙)의 법을 이어받았다.
그 뒤 통도사 강주(講主)가 되어 학도를 교육하였으며, 1929년 선교양종칠교정(禪敎兩宗七敎正)의 1인으로 추대되었다. 계율을 잘 지켰으므로 율사(律師)의 칭호를 들었으며, 보살계법회(菩薩戒法會)의 수계사(授戒師)로 활동하였다.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입적하였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증곡집(曾谷集)』이 있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치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