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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백양사(白羊寺) 천진암(天眞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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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14-2  '''
 
* ''' 주소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14-2  '''
백양사 천진암(天眞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의 부속 암자로 백암산(白巖山) 촛대봉 아래 2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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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천진암(天眞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의 부속 암자로 백암산(白巖山) 촛대봉 아래 2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br>
천진암은 백양사 청류암과 더불어 고려 충정왕 2년(1380)에 각진 국사가 창건하여 여러 고승대덕들이 주석하였다. 휴정·영규·연담유일·만암 스님이 이곳을 거쳐갔다. 연담 스님은 이곳에서 100여 명의 스님들을 모아 지도했다고 한다. 1950년 6·25 한국전쟁 직전까지 9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 정진했으나 공비의 은거지로 사용될까 우려하여 당시에 국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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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은 백양사 청류암과 더불어 고려 충정왕 2년(1380)에 각진 국사가 창건하여 여러 고승대덕들이 주석하였다. 휴정·영규·연담유일·만암 스님이 이곳을 거쳐갔다. 연담 스님은 이곳에서 100여 명의 스님들을 모아 지도했다고 한다. 1950년 6·25 한국전쟁 직전까지 9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 정진했으나 공비의 은거지로 사용될까 우려하여 당시에 국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br>
1955년 정공 스님이 암자 터에서 천막을 치고 정진하다가 수년에 걸쳐 인법당·삼성각·요사를 지어 1971년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다. 1987년 정안(淨岸)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천일 지장기도를 회향한 이후 1991에 들어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불사를 벌여 법당·삼성각·요사채를 짓는 등 도량을 정비하였으며 불상 및 다수의 탱화를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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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정공 스님이 암자 터에서 천막을 치고 정진하다가 수년에 걸쳐 인법당·삼성각·요사를 지어 1971년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다. 1987년 정안(淨岸)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천일 지장기도를 회향한 이후 1991에 들어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불사를 벌여 법당·삼성각·요사채를 짓는 등 도량을 정비하였으며 불상 및 다수의 탱화를 봉안하였다. </br> </br>
※ 출처 :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p. 84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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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p. 844~845.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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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 ''' : [https://map.kakao.com/?q=장성군_북하면_약수리_14-2 백양사 천진암]</br></br>
* ''' 지도 ''' : [https://map.kakao.com/?q=장성군_북하면_약수리_14-2 백양사 천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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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사찰]]

2024년 5월 7일 (화) 21:13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백양사(白羊寺) 천진암(天眞庵)
  • 주소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14-2

백양사 천진암(天眞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의 부속 암자로 백암산(白巖山) 촛대봉 아래 2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천진암은 백양사 청류암과 더불어 고려 충정왕 2년(1380)에 각진 국사가 창건하여 여러 고승대덕들이 주석하였다. 휴정·영규·연담유일·만암 스님이 이곳을 거쳐갔다. 연담 스님은 이곳에서 100여 명의 스님들을 모아 지도했다고 한다. 1950년 6·25 한국전쟁 직전까지 9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 정진했으나 공비의 은거지로 사용될까 우려하여 당시에 국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1955년 정공 스님이 암자 터에서 천막을 치고 정진하다가 수년에 걸쳐 인법당·삼성각·요사를 지어 1971년 입적할 때까지 머물렀다. 1987년 정안(淨岸)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천일 지장기도를 회향한 이후 1991에 들어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불사를 벌여 법당·삼성각·요사채를 짓는 등 도량을 정비하였으며 불상 및 다수의 탱화를 봉안하였다.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p. 844~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