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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 사찰명 : 마곡사(麻谷寺) 은적암(隱寂庵) ''' * '''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산 73 ''' 이 암자는 몸을 잘 갈무리하여 번거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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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마곡사(麻谷寺) 은적암(隱寂庵)  '''
 
* ''' 사찰명 : 마곡사(麻谷寺) 은적암(隱寂庵)  '''
* '''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산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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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산73 '''
이 암자는 몸을 잘 갈무리하여 번거로운 생각을 재처럼 쉬라는 의미에서 은적암이라 이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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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자는 몸을 잘 갈무리하여 번거로운 생각을 재처럼 쉬라는 의미에서 은적암이라 이름했다. </br>
창건 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1840년에 중수하고 1858년에 관음보살상에 개금(형상에 금을 칠함)을 하고 상단탱화를 조성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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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1840년에 중수하고 1858년에 관음보살상에 개금(형상에 금을 칠함)을 하고 상단탱화를 조성한 기록이 있다. </br>
은적암은 일찍이 마곡사의 상선원(높은 곳에 위치한 선원으로 법납(출가한 나이) 많은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는 곳)으로 많은 큰스님들이 정진하셨으며 근래엔 만공스님, 적음스님, 두 분의 선사는 정진 중에 새벽 종소리를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많은 청안납자(수행력 높은 선방스님)를 배출했다. 특히, 비구니 선경 스님도 이곳에서 득력(공부의 힘을 얻음)하여 제방의 비구니 수좌를 제접(이끌어 줌)했다. 비구니 하경 스님을 이은 성호 스님은 1982년 이래 20여 년의 원력으로 1984년에 법당채를 복원하고 1987년에 산신각 불사와, 기와불사, 도로 불사를 통해 비로소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고, 아울러 당시 충청도 지사 박중배 거사, 김중천 거사 두 거사의 지대한 공을 기림이다. 성호 스님의 상좌인 자량 스님의 연이은 천일기도로 명실상부한 도량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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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암은 일찍이 마곡사의 상선원(높은 곳에 위치한 선원으로 법납(출가한 나이) 많은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는 곳)으로 많은 큰스님들이 정진하셨으며 근래엔 만공스님, 적음스님, 두 분의 선사는 정진 중에 새벽 종소리를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많은 청안납자(수행력 높은 선방스님)를 배출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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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구니 선경 스님도 이곳에서 득력(공부의 힘을 얻음)하여 제방의 비구니 수좌를 제접(이끌어 줌)했다. 비구니 하경 스님을 이은 성호 스님은 1982년 이래 20여 년의 원력으로 1984년에 법당채를 복원하고 1987년에 산신각 불사와, 기와불사, 도로 불사를 통해 비로소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고, 아울러 당시 충청도 지사 박중배 거사, 김중천 거사 두 거사의 지대한 공을 기림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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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스님의 상좌인 자량 스님의 연이은 천일기도로 명실상부한 도량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게 되었다. </br>
 
※ 출처 : [https://blog.naver.com/jhp1969/223049493539 樂]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을 모신 선(禪)의 요람, '은적암'
 
※ 출처 : [https://blog.naver.com/jhp1969/223049493539 樂]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을 모신 선(禪)의 요람, '은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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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 ''' : [https://map.kakao.com/?q=공주시_사곡면_운암리_산73 마곡사 은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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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사찰]]

2024년 5월 7일 (화) 20:50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마곡사(麻谷寺) 은적암(隱寂庵)
  • 주소 :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산73

이 암자는 몸을 잘 갈무리하여 번거로운 생각을 재처럼 쉬라는 의미에서 은적암이라 이름했다.
창건 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1840년에 중수하고 1858년에 관음보살상에 개금(형상에 금을 칠함)을 하고 상단탱화를 조성한 기록이 있다.
은적암은 일찍이 마곡사의 상선원(높은 곳에 위치한 선원으로 법납(출가한 나이) 많은 스님들이 모여 정진하는 곳)으로 많은 큰스님들이 정진하셨으며 근래엔 만공스님, 적음스님, 두 분의 선사는 정진 중에 새벽 종소리를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 많은 청안납자(수행력 높은 선방스님)를 배출했다.
특히, 비구니 선경 스님도 이곳에서 득력(공부의 힘을 얻음)하여 제방의 비구니 수좌를 제접(이끌어 줌)했다. 비구니 하경 스님을 이은 성호 스님은 1982년 이래 20여 년의 원력으로 1984년에 법당채를 복원하고 1987년에 산신각 불사와, 기와불사, 도로 불사를 통해 비로소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고, 아울러 당시 충청도 지사 박중배 거사, 김중천 거사 두 거사의 지대한 공을 기림이다.
성호 스님의 상좌인 자량 스님의 연이은 천일기도로 명실상부한 도량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게 되었다.
※ 출처 : 조선 후기 목조관음보살을 모신 선(禪)의 요람, '은적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