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한마음선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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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 사찰명 : 안양 한마음선원 ''' * ''' 주소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01-60 ''' </br> 묘공대행묘공대행(妙空大行) 스님이 1972년 세수 4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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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안양 한마음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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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0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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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공대행묘공대행(妙空大行) 스님이 1972년 세수 46세에 불법의 궁극적 목표인 한마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본래의 불성을 밝혀 성불하도록 인도하고자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현재의 한마음선원 전신인 대한불교회관을 설립했다. </br>
 
대행스님은 1982년 1월 22일 한마음선원을 대한불교조계종에 등록하고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으로 개칭한 뒤 선원장으로 취임했다. </br>
 
1993년 4월 안양의 한마음선원 본원 대법당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br>
 
대법당 불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999년 10월 31일 비로소 낙성을 보았으니, 연면적 9,588㎡에 지상 5층 지하 4층의 대불사였다. </br>
 
5층에는 118평의 대법당을 두고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박찬수 관장(목아박물관)으로 하여금 본존불과 법상을 조성하게 하였고, 목탱화, 단청, 개금 역시 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청원 스님과 김성규님이 맡아 대법당을 장엄하니 그 규모와 예술문화적 가치에 사부대중이 크게 찬탄하였다. </br>
 
1999년 10월 31일 대법당 낙성법회에는 불교계의 대덕 큰스님들은 물론이고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대불사의 원만한 회향을 한마음으로 축하하였다. </br>
 
스님께서는 신도들과 함께한 낙성식 기념 법회(1999.1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불사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여래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회향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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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모든 한마음의 노고가 더불어 같이 이렇게 이루었다고 봅니다. 근데 우리가 마쳤다 해도 아니 되고 마치지 않았다 해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발걸음을 걷는 게 결국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불사니까요. 여러분들이 이것을 지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지만 궁극에 들어가서는 세세생생에 내 집이고 더불어 같이 내 집인데 뭘 생색을 내서 ‘했다 안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겠습니까. 그런 대로 흉하지 않게 해 놓고 미래에도 여러분들이 이 장소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이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r>
 
“그러니까 누가 했다 누가 안 했다 이걸 떠나서, 이걸로 즉 말하자면 길잡이가 돼서 여러분들이 다 이 한자리에서, 지구 바퀴에서 벗어나서 사방, 상하 모두 뚫린 데로 다 자유스럽게 훨훨 털고 벗어나시기를 바라면서, 이 집을 이렇게 하신 것도 마음에다 넣고 그렇게 함이 없이 하신 거를 아신다면 공덕이 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하나 하나가 전부 공덕이 될 것입니다. </br>
 
그걸 마음에 넣지 않고, 이 내면에 더불어 같이 하지 않았으면 공덕이 하나도 없죠. 그렇지만 모든 게 함이 없이 했다는 걸 알게 되고 자기가 공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마음을 가지신다면 모두가 공덕입니다. 하나도 공덕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고 이렇게 여러분들을 뵈니까 참, 부처님이 따로 없고 귀빈이 따로 없고 정말 공법 신이 따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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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br>
 
[https://hanmaum.org/content/one_open?me_code=1050200000 한마음선원] </br>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00~101.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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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 ''' : [https://map.kakao.com/?q=안양시_만안구_석수동_101-60 한마음선원]
 

2024년 4월 6일 (토) 19:39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