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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보리사(菩提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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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67 '''  
 
* ''' 주소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67 '''  
보리사가 있는 미륵골[彌勒谷]은 탑골[塔谷]과 명모골[明募谷] 사이의 소계곡으로 그 깊이가 짧고 협소하여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대숲 옆길로 약 250미터 가량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비구니스님들의 수도 도량인 보리사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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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리사가 있는 미륵골[彌勒谷]은 탑골[塔谷]과 명모골[明募谷] 사이의 소계곡으로 그 깊이가 짧고 협소하여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대숲 옆길로 약 250미터 가량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비구니스님들의 수도 도량인 보리사가 자리잡고 있다. </br>
근래에 지은 대웅전과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남산에 있는 절 가운데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삼국사기』에서 헌강왕릉(憲康王陵)과 정강왕릉(定康王陵)의 위치를 말할 때 '보리사의 동남쪽'이라고 한 것을 보면 보리사가 유서 깊은 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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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지은 대웅전과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남산에 있는 절 가운데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삼국사기』에서 헌강왕릉(憲康王陵)과 정강왕릉(定康王陵)의 위치를 말할 때 '보리사의 동남쪽'이라고 한 것을 보면 보리사가 유서 깊은 절임을 알 수 있다. </br>
또한 경내에 통일신라 후반의 석불상을 대표하는 훌륭한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 있으며, 보리사 앞에서 남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산비탈로 35미터쯤 가면 경사가 급한 산허리에 마애불이 있다. 이 마애불 앞에 서면 옛 서라벌의 중심지였던 배반평야 일대가 한눈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마애불 앞 공간은 어른 두 사람이 서있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비좁고 협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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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내에 통일신라 후반의 석불상을 대표하는 훌륭한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 있으며, 보리사 앞에서 남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산비탈로 35미터쯤 가면 경사가 급한 산허리에 마애불이 있다. 이 마애불 앞에 서면 옛 서라벌의 중심지였던 배반평야 일대가 한눈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마애불 앞 공간은 어른 두 사람이 서있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비좁고 협소하다. </br>
'계(界)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세(世)의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정(情)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법계(法界)의 상도(常道)라. 여기 서라벌의 찬란한 문화를 빛내던 남산(南山)의 한 자락에 폐사의 한 터가 있으니, 그저 막연히 사천왕사(四天王寺), 신인사(神印寺)와 함께 신인종(神印宗) 계통의 절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흙더미 속에서 나온 보리사(菩提寺)라는 현액(懸額)으로 여기가 보리사 터라는 추측일 뿐 그 창건주나 창건 년대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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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界)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세(世)의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정(情)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법계(法界)의 상도(常道)라. 여기 서라벌의 찬란한 문화를 빛내던 남산(南山)의 한 자락에 폐사의 한 터가 있으니, 그저 막연히 사천왕사(四天王寺), 신인사(神印寺)와 함께 신인종(神印宗) 계통의 절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흙더미 속에서 나온 보리사(菩提寺)라는 현액(懸額)으로 여기가 보리사 터라는 추측일 뿐 그 창건주나 창건 년대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br>
 
※ [[묘운스님(妙雲, 1921生, 비구니)]] 참조
 
※ [[묘운스님(妙雲, 1921生, 비구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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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 ''' : [https://map.kakao.com/?q=경주시_배반동_산67 보리사]</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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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사찰]]

2024년 5월 6일 (월) 22:04 기준 최신판

  • 경주 보리사(菩提寺)
  • 주소 :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67

경주 보리사가 있는 미륵골[彌勒谷]은 탑골[塔谷]과 명모골[明募谷] 사이의 소계곡으로 그 깊이가 짧고 협소하여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대숲 옆길로 약 250미터 가량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비구니스님들의 수도 도량인 보리사가 자리잡고 있다.
근래에 지은 대웅전과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남산에 있는 절 가운데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삼국사기』에서 헌강왕릉(憲康王陵)과 정강왕릉(定康王陵)의 위치를 말할 때 '보리사의 동남쪽'이라고 한 것을 보면 보리사가 유서 깊은 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내에 통일신라 후반의 석불상을 대표하는 훌륭한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 있으며, 보리사 앞에서 남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산비탈로 35미터쯤 가면 경사가 급한 산허리에 마애불이 있다. 이 마애불 앞에 서면 옛 서라벌의 중심지였던 배반평야 일대가 한눈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마애불 앞 공간은 어른 두 사람이 서있기에도 빠듯할 정도로 비좁고 협소하다.
'계(界)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세(世)의 생주이멸(生住異滅)과 정(情)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법계(法界)의 상도(常道)라. 여기 서라벌의 찬란한 문화를 빛내던 남산(南山)의 한 자락에 폐사의 한 터가 있으니, 그저 막연히 사천왕사(四天王寺), 신인사(神印寺)와 함께 신인종(神印宗) 계통의 절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흙더미 속에서 나온 보리사(菩提寺)라는 현액(懸額)으로 여기가 보리사 터라는 추측일 뿐 그 창건주나 창건 년대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묘운스님(妙雲, 1921生, 비구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