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지훈스님(志訓, 1947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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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및 공헌)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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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사찰==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1동 96 보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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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덕사(☎ 051-518-7790): 부산광역시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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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참고자료==

2022년 8월 21일 (일) 13:13 판



정의

지훈스님은 집착을 버리고 늘 새롭게 출발하는 삶을 산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47 경북 청도 출생
1964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법인(法印)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5 무불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6~1970 동학사 강원 졸업
1969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5 진주 대원사 하안거 성만
1979~1983 정릉 청련선원 주석
1983 동국대학교 선학과 졸업
1984~1987 충청도 귀룡사 토굴에서 수행(3년간)
1987~1990 서울 혜원사 총무
1991 부산 구월산 보덕사 중창 불사
1991~2001 보덕사 총무 역임
1995~1998 대한불교 조계종 제11대 종회의원
2004~ 보덕사 주석

기타사항

문중 두옥(斗玉)문중
수행지침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성실, 근면
생활신조 신심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항상 재신심, 재발심하라.
취미 등산
수계제자 도영(道瑛)·자선(慈善)·수암(守岩)·휴담(休潭)·범견(梵見)

활동 및 공헌

출가

보덕사 대웅전, 사진 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하) p.241.

부산 보덕사에서 정진 중인 지훈(志訓)스님은 1947년 1월 19일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이름은 김명순이다. 1964년 17세 되던 해에 스님은 청도 운문사 나한님(나반존자)이 계신 사리암에 우연히 가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계신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만 집으로 가자고 재촉을 하셨지만 스님은 안 가겠다고 막무가내로 버티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3가지 조건을 이행한다면 스님 생활을 허락하겠다고 하셨다.


      첫째, 자신이 선택한 이상 스님 노릇을 끝까지 할 것.
      둘째, 가문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말 것.
      셋째, 부모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말 것.

아버지는 반드시 이 세 가지를 지키라고 하고는 산을 내려가셨다. 곧이어 스님은 힘든 행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새벽 두시 반에 일어나 찬바람을 헤치고 정진할 때면 여우 울음소리와 밀려오는 졸음을 극복하기가 무엇보다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채찍이 되어 참고 견디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자 비로소 구도의 길을 걷는 출가자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은 1964년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법인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1965년 부산 연화사에서 무불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약인욕요지(若人慾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약 사람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근원을 꿰뚫어 볼지니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것이 마음으로 지어졌음이라!!

강원생활

동학사 강원 생활을 할 때는 사찰의 전통 놀이인 성불도나 윷놀이를 하는 것까지도 대중을 위해서 함께 즐거워하였다. 또한 대중 울력 등 힘든 일에 동참할 때는 자신을 낮추며 열심히 대중과 화합하였다.

스님의 강원 재학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강원을 지을 당시 법당 옆 요사채에는 윗반 스님들이 거처하면서 공부를 하고 아랫반들은 미타암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 스님은 치문반이었는데, 어느 날 화엄반 스님들이 다락에 팥죽을 몰래 숨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뜩이나 배가 고프던 차에 이 소식을 들은 스님과 도반들은 팥죽을 훔쳐 먹기 위해 화엄반 스님들 눈을 피해 다락에 몰래 올라갔다. 정신없이 한참 팥죽 옹심이를 꺼내 먹다 보니 얼굴에도 팥죽이 묻어 서로를 바라보며 웃다가 들키는 바람에 108배 참회를 하였다. 당시 선배 스님들은 바다와 같이 너른 이해심과 자비심으로 후배들을 보살펴주어서 지금까지도 그때의 선후배 사랑이 가슴에 아련히 남아 있다고 한다.

수학과 비구니계 수계

출가한 지 3년 후인 1969년 26세 때 일지스님은 개심사 강원에서 선지(禪志)가 밝으셨던 성능스님께 『능엄경』을 배우게 되었다. 성능스님은 공부 중에 참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하여 해안(海眼) 큰스님과 지장암에서 참선하면서 『원각경』을 보았다. 그 뒤 스님은 동학사 강원에서 대교를 졸업하였고, 석암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큰스님께서는 단기 정진을 항상 말씀하셨다. 아무리 정진력이 강하다 해도 3개월 동안 계속 긴장하며 화두를 놓치지 않기란 힘들다면서 경(經)과 선(禪), 주력 등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치게 지도하지 않고 골고루 겸하여 정진할 것을 강조하셨다. 그러면 아무리 미련한 사람도 일주일이면 성불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큰스님은 사계절 지방을 순회하며 단기 정진을 실행하셨다.

6·25전쟁 당시 월명선원은 낮에는 군인이나 경찰이 오고, 밤이 되면 공산당원이 몰려오는 바람에 혼란스러웠다. 큰스님은 월명암에 계시다가 지장암으로 내려오셨다.


집착을 버리고 늘 새롭게 출발하는 삶

스님은 먹물들인 승복과 스님의 모습이 너무 멋있지만, 아무에게나 스님이 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확고한 신심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모든 것을 인내하며 새롭게 출발하려는 각오가 서면, 그때에는 스님이 되라고 권한다.

서울 혜원사 총무, 부산 보덕사 총무, 대한불교 조계종 제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한 지훈스님은 2004년 현재 보덕사에 주석하고 있다.

수계제자로는 도영(道瑛)·자선(慈善)·수암(守岩)·휴담(休潭)·범견(梵見)스님 등이 있다.

사찰

  • 보덕사(☎ 051-518-7790): 부산광역시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697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238~241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482
  • 네이버 블로그 승보종찰 송광사 https://blog.naver.com/songgwang01/221385617550 조계총림말사기행 18-10/ 부산 보덕사 2018.10.26.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지훈(志訓)스님 본항목 지훈스님(志訓, 1947~) 志訓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지훈스님(志訓,_1947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지훈(志訓)스님 경북청도 ~에서 태어나다
지훈(志訓)스님 법인(法印)스님 ~을 은사로 출가하다
지훈(志訓)스님 무불(無佛)스님 ~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다
지훈(志訓)스님 동학사 ~에서 강원을 졸업하다
지훈(志訓)스님 자운(慈雲)스님 ~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다
지훈(志訓)스님 대원사 ~에서 하안거를 성만하다
지훈(志訓)스님 동국대학교 ~를 졸업하다
지훈(志訓)스님 혜원사 ~에서 총무를 역임하다
지훈(志訓)스님 구월산 보덕사 ~를 중창 불사하다
지훈(志訓)스님 보덕사 ~에서 총무를 역임하다
지훈(志訓)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에서 제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다
지훈(志訓)스님 보덕사 ~에서 주석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