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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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및 공헌== | ==활동 및 공헌== | ||
| + | [[File:인하스님02.jpg|섬네일|'''인하스님의 손상좌 혜전스님(왼쪽)과 인하스님(오른쪽)''' </br>사진출처: 혜달 스님 제공]] | ||
| + | [[File:인하스님03.jpg|섬네일| </br>사진출처: 혜달 스님 제공]] | ||
=== 화선스님의 제자가 되다 === | === 화선스님의 제자가 되다 === | ||
인하스님은 1921년 10월 29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면 고산리 1671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고일륜이고, 모친은 강정행심이며,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속명은 고선봉이다. 1945년 5월 28일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로 출가하였다. 1947년 4월 28일 관음사에서 이회명을 계사로 보살대계를 품수하였고, 같은 날 비구니 화선을 은사로, 비구 오이화를 계사로 정하고 이회명이 대설하여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계보는 ‘봉려관-화선-인하’이다. | 인하스님은 1921년 10월 29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면 고산리 1671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고일륜이고, 모친은 강정행심이며,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속명은 고선봉이다. 1945년 5월 28일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로 출가하였다. 1947년 4월 28일 관음사에서 이회명을 계사로 보살대계를 품수하였고, 같은 날 비구니 화선을 은사로, 비구 오이화를 계사로 정하고 이회명이 대설하여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계보는 ‘봉려관-화선-인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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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 ~의 2대 후손이다|| | |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봉려관스님(蓬廬觀, 1865生, 비구니)|봉려관스님(蓬廬觀)]] || ~의 2대 후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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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제주도 조천면 고관음사 직임을 수행하다|| 지전持殿|| | |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제주도 조천면 고관음사 직임을 수행하다|| 지전持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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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제주도 도남동||~에서 지역 포교에 앞장서다|| | |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제주도 도남동||~에서 지역 포교에 앞장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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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근대 제주불교 발전||에 기여하다|| | + | |인하스님(仁河, 1921生, 비구니|인하스님(仁河)|| 근대 제주불교 발전||~에 기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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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4일 (토) 21:11 기준 최신판
| 인하(仁河)스님 | |
|---|---|
| 법명 | 인하(仁河) |
| 법호 | 진월(眞月) |
| 속명 | 고선봉(高善奉) |
| 출생 | 1921년 10월 29일 |
| 출가 | 1945년 05월 28일 |
| 입적 | 1999년 음력 02월 05일(세수 79, 법납 53) |
| 사찰 | 제주 보덕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독짓골 8길 26(도남동 80-2), 보덕사 |
| 특이사항 | |
목차
정의
인하스님은 제주도 도남동 보덕사 중창의 주역이며, 제주 도남동 지역포교에 진력해서 근대 제주불교 및 현대 제주불교 중흥에 기여한 비구니이다.
생애
| 연도 | 내용 |
|---|---|
| 1921년 |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서 출생 |
| 1935년 | 고산 공립 보통학교 4년 수료 |
| 1945년 | 5월 28일 한라산 관음사로 출가 |
| 1947년 |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에서 회명선사를 계사로 보살대계 품수 |
| 1947년 |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에서 오이화를 계사로 정하고, 회명선사가 代說하여 사미니계 수지 |
| 1949년 | 제주도 조천면 고관음사 지전持殿으로 피선被選 |
| 1950년 | 제주도 김녕 포교소(백련사) 별좌 취임 |
| 1950년대~1966년 | 제주도 독짓골 남순자(현 보덕사) 주지 |
| 1999년 | 음력 2월 5일 제주도 도남동 보덕사에서 입적(세수 79, 법납 53) |
| 문중 | 두옥문중(斗玉) |
| 수행지침 | 강경 송독, “우리는 부처님 제자라는 마음이 철두철미해야 한다”. |
| 수계제자 | 법련, 법현 |
활동 및 공헌
화선스님의 제자가 되다
인하스님은 1921년 10월 29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면 고산리 1671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고일륜이고, 모친은 강정행심이며,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속명은 고선봉이다. 1945년 5월 28일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로 출가하였다. 1947년 4월 28일 관음사에서 이회명을 계사로 보살대계를 품수하였고, 같은 날 비구니 화선을 은사로, 비구 오이화를 계사로 정하고 이회명이 대설하여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 계보는 ‘봉려관-화선-인하’이다.
제주 신성여고 성당이 남순사의 법당이 되었다
1941년 화선스님이 신도로부터 1칸 초가집이 있던 조그마한 땅을 받으셨고, 이때 창건된 사찰이 남순사南巡寺(현 도남 보덕사)다. 따라서 화선스님이 현 도남동 보덕사의 개산조이고, 최초 창건주이며, 초대주지다. 남순사 2대 주지 인하스님은 1958년 2월 초순에 화선, 인하, 법현 외, 신도 이 만행화, 양정법화, 오병수, 이동일, 양하섭, 김보림행, 김순생, 서상염 등 8명의 보시금을 모아서 제주도 3도동 신성여고 성당 건물을 사서 해체한 후 남순사로 운반해서 20평 법당으로 변신시켰다. 이때 함석 15평 요사채도 함께 건립하였다.
제주도 도남동 보덕사 중창의 주역
제주도 도남 보덕사의 개산조는 은사 화선스님이지만, 도남동 보덕사를 일신해서 포교 중심 도량으로 만든 분은 인하스님이다. 1967년 2월 1일, 인하스님 그리고 인하의 제자 법련스님과 안광호의 제자 능인스님의 주도 하에 법현(인하의 제자), 혜전(법현의 제자), 상진(능인의 제자), 상일(능인의 제자) 등이 합심하여 3차 중창을 하였다. 이때 신성여고에 있던 성당을 해체해 와서 건립한 법당은 3차 중창불사로 인해 없어졌고, 그 자리에 목조 전통 대웅전 28평이 건립되었는데, 지금은 극락전이 되었다. 그리고 선방 2층 60평(골조)과 종각도 함께 건립해서 3차 중창불사를 마무리하였다. 1975년 9월 중순 연못 앞 8평 6작의 요사채(스레트 지붕)는 1978년 3월에 착공해서 함석 15평 요사채로 변모하였고, 이후 27평에 기와를 얹은 요사채로 변모했으며, 2020년에는 신축해서 27평의 요사채가 되었다.
일상이 곧 수행
인하스님은 열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되었지만, 스님은 금강경과 무구정광다라니를 외워 독송하였고, 한 번은 혜인스님(일타-혜인)이 인하스님이 경전 독송하는 것을 옆에서 경전을 펴고 확인한 결과 한 자도 빠짐이 없었고, 한 자도 잘못 왼 자도 없이 금강경과 무구정광다라니를 완벽히 독송한 것에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인하스님의 금강경, 무구정광다라니 독송은 하루에 몇 독이 아니라 깨어 있을 때면 늘 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하스님은 몸을 움직이는 한 조석예불은 물론 사시 기도에 빠진 적이 없었고, 하루 3끼 공양도 빠지지 않고 대중과 함께 하셨는데, 이처럼 승려의 기본자세와 승가의 규율을 일상에서 철저하게 이행하신 분이었다.
승려라는 마음이 철두철미한 분
인하스님은 시력을 잃으셨지만, 자신의 일을 제자에게 시킨 적이 없었다. 자신이 거주하던 방도 먼지가 닦였는지 손으로 확인하면서 본인이 청소를 하셨고, 본인의 입성도 손수 세탁해서 입으셨으며 자신의 일은 본인이 다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제자들이 법당 청소를 대충하고 마무리하면, 다시 청소하라고 말씀할 정도로 부처님 일에 대해서는 아주 깐깐했다고 한다. 하루는 손제자가 묻기를 “노스님께서는 눈도 잘 안보이시는데, 우리가 청소를 덜 깨끗하게 한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고 여쭙자, 인하스님이 답하시길 “법당에 가서 내가 바닥과 탁자를 손으로 쓰윽 만져보면 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손으로 만져서 먼지가 느껴지면 청소를 대충한 것이고, 매끈하면 청소를 제대로 한 것이라는 것이다.
제주불교 발전에 일역을 담당하다
1945년 한라산 관음사로 출가한 인하스님은 제주 4,3으로 관음사가 전소된 것을 보았고, 1949년에는 봉려관스님이 중창한 고관사에서 지전에 피선되었는데 스님의 부처님을 향한 신심은 재가제자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한다. 1950년에는 김녕 포교소(지금의 백련사) 별좌 소임을 맡아 백련사 발전에 일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후 제주도 도남동 보덕사에 주석하면서 보덕사를 독짓골 지역의 대표적 사찰로 일신하였다. 이처럼 인하스님은 근대 제주불교를 넘어 현대 제주불교 발전에까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하겠다.
인하스님 이번 생을 마무리하다
평소 스님이라는 마음이 철두철미했던 인하스님은 육신의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의 눈은 밝으셨다. 1999년 음력 2월 5일 제주 도남동 보덕사에서 이생의 인연을 마무리한 인하스님은 ‘무엇이 진리인지’, ‘어떤 것이 승려다운 일인지’를 스스로 알아차려 행으로 옮기신 분이었고, 평생을 본인이 승려임을 망각하지 않고 살았던 분이었다.
시멘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 인하(仁河)스님 | 본항목 | 인하스님(仁河, 1921~1999)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인하스님(仁河,_1921生,_비구니) |
릴레이션 데이터
|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
|---|---|---|---|---|
| 인하스님(仁河) | 두옥문중(斗玉) | ~의 일원이다 | ||
| 인하스님(仁河) | 봉려관스님(蓬廬觀) | ~의 2대 후손이다 | ||
| 인하스님(仁河) | 화선스님(花仙) | 의 제자이다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 관음사 | ~에서 출가하다 | ||
| 인하스님(仁河) | 회명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보살대계 | |
| 인하스님(仁河) | 오이화를 계사로 정하고, 회명선사가 대설代說하여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도 조천면 고관음사 직임을 수행하다 | 지전持殿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도 김녕 포교소 김녕 백련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별좌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도 도남동 제주 보덕사 | ~을(를) 중창하다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도 도남동 제주 보덕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도 도남동 제주 보덕사 | ~을(를) 3창하다 | ||
| 인하스님(仁河) | 금강경 | ~을(를) 외워서 독송하다 | ||
| 인하스님(仁河) | 무구정광다라니 | ~(을)를 외워서 독송하다 | ||
| 인하스님(仁河) | 제주도 도남동 | ~에서 지역 포교에 앞장서다 | ||
| 인하스님(仁河) | 근대 제주불교 발전 | ~에 기여하다 |
작성자
혜달(사단법인 봉려관 불교문화연구원장)
지도
- 제주 보덕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독짓골 8길 26(도남동 80-2), 보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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