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스님(正心, 1925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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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도수(道秀)·도각(道覺)·명선(明禪)·일선(一禪)·성혜(性慧)·석경(石鯨)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도수(道秀)·도각(道覺)·명선(明禪)·일선(一禪)·성혜(性慧)·석경(石鯨) |
2024년 9월 15일 (일) 14:36 판
정심(正心)스님 | |
---|---|
법명 | 정심(正心) |
법호 | 청해(淸海) |
속명 | 박점성(朴占星) |
출생 | 1925.01.15. |
출가 | 1968년 |
입적 | |
사찰 | 부산 선암사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797-9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정심(正心)스님은 1980년대에 부산 영도구에 부산 영도 선암사를 창건하고 유치원을 세워 어린이 포교를 한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25 | 경남 고성 출생 |
1968 | 가지산 석남사에서 인홍(仁弘)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9 | 석남사에서 자운(慈雲)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71 |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76~1981 | 내원사, 대원사, 오대산 지장암, 보현암, 대성암 하안거 성만 |
1986 | 선암사 대웅전 불사 |
1992 | 요사채 불사 |
1994 | 종각 불사 및 선암사 주지 |
1996 | 중창 불사와 선암유치원 개원 |
1997~2000 | 선암유치원에서 교육사업에 종사 |
2004 | 선암사 회주 |
문중 | 법기문중(法起) |
생활신조 | 백 원을 받으면 백 원만큼 베풀어야 한다. |
수계제자(『한국비구니명감』) | 도수(道秀)·도각(道覺)·명선(明禪)·일선(一禪)·성혜(性慧)·석경(石鯨) |
문중계보(『한국의 비구니문중』) | 부영(扶榮, 6)→심공(心空, 7)→정자(淨慈, 8)→인홍(仁弘, 9)→정심(正心, 10)→도수(道秀, 11), 도각(道覺, 11), 명선(明禪, 11), 일선(一禪, 11), 성혜(性慧, 11), 석경(石鯨, 11) |
활동 및 공헌
출가 계기
청해당(淸海堂) 정심(正心)스님은 1925년 1월 15일 경남 고성군 마암면에서 아버지 박희제와 어머니 최수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박점성이다. 1968년 43세의 늦은 나이에 세상에 대한 무상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 스님은 마침내 모든 인연을 단호하게 끊고, 가지산 석남사에서 인홍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스님은 1969년 3월 12일 석남사에서 자운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계하였고, 이어서 4월 8일 양산 통도사에서 월하 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수계하였다.
불법 문중에 늦게 출가했다는 마음에 다른 이들보다 더욱 깊은 신심과 원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던 스님은 47세이던 1971년 4월 8일 통도사에서 월하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수행
스님은 52세 때인 1976년 석남사에서 하안거 성만을 시작으로 1977년과 1978년 내원사에서 하안거를, 1979년 오대산 지장암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다. 스님의 정진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1980년 해인사 보현암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고, 그 다음해에 범어사 대성암에서 하안거 결제를 성만하였다.
부산 영도에 선암사를 창건하고 유치원을 세우다
석남사에서 대중 생활을 할 때는 자신의 늦은 출가를 도리어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나이 어린 선배스님에게도 깍듯이 대하며 하심(下心)하였다. 이러한 성품은 1982년 부산 영도구 선암사로 옮기면서 그 꽃을 활짝 피웠다.
스님은 62세가 되던 1986년 선암사 대웅전 불사에 이어서 1992년 4월 요사채를 불사하였다. 그리고 1994년 4월 종각을 지었고, 1996년 스님의 나이 72세에 이르러 선암사에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후학에게 주는 당부
스님은 포교에 대하여 ‘수행자라면 깊은 산중에서 정진해야 당연하다. 하지만 포교할 원력을 세우고 시내에 살면 현재 이 시대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히 불모지에서 불교를 개척하고 일구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심스님은 도심 한복판에서 포교를 하고 살면서도 바깥 출입은 거의 하지 않음은 물론 시자들이 주는 용돈이나 단월들이 주고 가는 적은 보시금을 한 푼도 소유하지 않고 사중에 다 내놓는 분으로 유명하다. ‘백 원을 받으면 백 원만큼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활 철학을 철저히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말이나 문자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노구의 몸으로도 예불과 공양을 대중과 늘 함께 하며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는 모습은 후학들에게 크나큰 경책이 되고 있다.
정심스님은 혜해스님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2022년 부산에는 영도구 외에 부산진구와 연제구 등 두 곳의 선암사가 있다.
수계제자로는 도수(道秀)·도각(道覺)·명선(明禪)·일선(一禪)·성혜(性慧)·석경(石鯨)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뜨란출판사, 2007, pp. 409~412.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28.
- 네이버 블로그, 영도 선암사 (2019년) https://blog.naver.com/kym23031/221553930156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정심(正心)스님 | 본항목 | 정심스님(正心, 1951~2014) | 正心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심스님(正心,_1925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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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스님(正心) | 법기문중(法起) | ~의 일원이다 | |
정심스님(正心) | 인홍스님(仁弘) | ~의 수계제자이다 | |
정심스님(正心) | 울산울주 석남사 | ~에서 출가하다 | |
정심스님(正心) | 자운스님(慈雲)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정심스님(正心) | 월하스님(月下)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정심스님(正心) | 부산 선암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정심스님(正心) | 부산 선암사 | ~을(를) 정비하다 | |
정심스님(正心) | 선암사유치원 | ~을(를) 건립하다 | 선암유치원 |
정심스님(正心) | 안거 | ~을(를) 성만하다 | 양산 내원사, 산청 대원사, 평창 월정사 지장암(오대산), 합천 해인사 보현암, 부산 범어사 대성암(청룡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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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부산 선암사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797-9
주석
다른 비구니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