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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일 (금) 11:28 판
보영(普暎)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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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40px]] | |
법명 | 보영(普暎) |
법호 | |
속명 | 최윤식 |
출생 | 1937년 |
출가 | 19년 |
입적 | |
사찰 | 광은사(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108-9)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보영(普暎)스님은 법준스님은 은사로 개심사에서 출가하여 광은사를 중창하고 군인 포교에 힘쓴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 내용 |
---|---|
1937 | 충남 예산 출생 |
1949 | 예산 오가국민학교 졸업, 예산 중학교 입학 |
1956 | [1] 에서 법준(法俊)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57~1961 | 개심사 강원 졸업 |
1958 | 수덕사에서 사미니계 수지, 운문사(최초 강원) 사교 수료 |
1971 | 선학원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5 | 광은사 주지 취임, 광은사 중창 불사, 대웅전, 요사채 불사 회향 |
2014 | 광은사 조실 |
문중 | 육화(六和)문중 |
수행지침 | 삼독심(三毒心)을 버려라.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니라. |
생활신조 | 포교를 정진으로 삼는다. |
수계제자 | 자홍(慈洪) |
활동 및 공헌
출가
보영(普暎)은 1937년 11월 15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에서 아버지 최태옥과 어머니 김옥점 사이의 6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이름은 최윤식이다. 스님의 속가는 식구가 무척이나 많았다. 집안 최고의 어른인 할아버지를 비롯해 친척들과 함께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 화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님의 이웃집에 은사스님의 조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분이 “[개심사_(서산시)|개심사]에 가보니 참 좋더라.”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친구와 함께 언니의 혼수로 준비해 놓은 광목을 갖고 개심사로 출가를 하였다.
부잣집 무남독녀 외동딸인 친구와 출가를 하겠다며 무작정 절에 간 것이다. 친구는 하루 만에 가족들에게 이끌려 산을 내려가고 말았다. 혼자 남게 된 보영스님은 은사스님의 조카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여 가족들에게 스님이 개심사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나 후에 부모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개심사로 찾아오셨고 스님은 할 수 없이 부모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영스님은 스님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집으로 끌려온 지 보름 만에 다시 집을 떠나 개심사로 향하였다.
스님은 1956년 법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엿고, 1958년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받고 은사스님을 2년 정도 모시고 살았다.
교육과 수행
은사스님에게 맏상좌가 된 보영스님은 공부를 좋아하여 경(經)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1957년 개심사 강원을 입학하여 5년 동안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示敎)를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스님은 1971년에 선학원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한 후, 그 후 해인사 선원에서 열심히 공부에만 정진하였다. 해인사의 하선원에서 2시간, 중선원에서 4시간, 상선원에서 4시간씩 오로지 자성(自性)참구에 혼신을 다 하였다. 그때는 공부하기에 바빴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공부에 열중하는 스님은 늘 이렇게 마음을 놓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느라 도반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점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광은사로 오다'
스님은 1985년 광은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진달래가 활짝 핀 봄 날 스님은 만행을 하다가 노보살님 혼자서 도량을 지키고 있는 광은사에 당도했다. 스님은 광은사 부처님이 비라도 피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평생의 수행터가 된 것이다. 전등사와 마주보고 있는 광은사에서 불사의 원력을 세우고 3년 2개월만에 육송으로 25평 대웅전 불사를 하였고, 요사채 35평 등 도량 정비를 위해 불처주야 노력하였다.
군인포교에 힘쓰다'
김포시 사암 연합회에서도 열심히 포교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주변의 육군과 해병 등 군인들에게 법문을 들려주며 포교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스님은 군 포교 분야가 황무지와도 같았던 1980년대부터 군인들과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였다. 어려운 법문보다도 친근한 노스님으로, 그리고 각 개인의 고민을 들어 주는 따뜻한 스님으로 부대에서 인기가 대단해서 서로 스님을 모셔서 법문을 들으려고 한다. 스님은 군부대에서 포교를 하고 있으니 아직까지 신심이 새록새록 난다고 말한다.
공양주 보살님과 같이 생활하기도 하고, 아프면 군인들이 와서 죽도 써준다며 현재의 광은사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스님은 가끔 군부대에 가서 밥을 해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군인들이 스님을 더 많이 생각해 준다며 군인들을 대견해하였다. 군인들은 ‘종교는 둘째고 스님이 맛있는 것을 해주니까 항상 스님을 좋아한다. 기독교인이든 천주교이든 무종교인이든 모든 종교를 막론하고 군인들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스님을 찾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스님이 군이들과 허물없이 지내는데는 나름대로의 언칙과 이유가 있다. “젊은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 한 글자라도 일러주면 그게 포교입니다. 거창하게 떠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전에 스님은 부모 없는 아이들을 키운 적이 있다. 출가를 하라고 강요도 안하였고 염불을 외우라거나 예불하라고도 않았다. 불법은 인연 따라가게 되어있는 것이라며 자신들끼리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였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참선과 주력으로 일관하고, 바쁜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즐기며 수행 정진 중인 스님은 광은사에 주석하고 있다.
김포 광은사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승마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의 사암이다. 사지나 현판 등 절의 창건 시기와 연혁을 짐작할 만한 자료가 없다. 하지만 1922년경 마을 사람들이 호환을 막기 위해 이곳에 절을 지었다는 설이 전한다. 창건 이후 별다른 불사도 없이 허름한 대웅전과 요사만으로 운영돼 오다 2001년부터 가람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2003년 요사를 새로 건립하고 도로를 개설했으며, 2004년 옛 법당을 허물고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현재 대웅전 안에 있는 불상과 탱화들도 이때 함께 조성한 것이다.
광은사 대웅전에 올라서면 초지대교와 그 건너편의 강화도 초지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초지진은 광성보, 덕진진과 더불어 강화도 수난의 역사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곳으로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때 각각 프랑스와 미국 함대에 맞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광은사 대웅전 동북쪽에는 또 다른 절터가 있는데, 전하는 바가 없어 이 절터와 광은사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429~433.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11.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pp ~ 227, 423.
- 법보신문, 호국 백승사, 십시일반 보시로 새법당 낙성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2724
BTN, 십시일반 정성으로 호국백승사 낙성
https://www.btn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28940
중부일보, 김포 용화사와 광은사 - 용화세계서 성불, 미륵의 정토서 다시 태어나길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46561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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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은(大恩)스님 | 본항목 | 대은스님(大恩, 19~19) | 大恩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대은스님(大恩,_1852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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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은(大恩)스님 | 문중 | ~의 일원이다 |
스님 | ~의 제자이다 | |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 | |
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
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
천진암 | ~의 감원(주지)을 역임하다 | |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 | |
백암선원 | ~을 창건하다 | |
선원 | ~을 설립하다 | |
강원 | ~을 설립하다 |
주석
보문종(普門宗) 수정(水晶) 육화(六和) 계민(戒珉) 두옥(斗玉) 백양사(白羊寺) 봉래(蓬萊) 법기(法起) 청량사(淸凉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