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중광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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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리는 마을 서편의 산이 주발을 엎어놓은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또는 '발산(鉢山)'이라 부른다 하며, 가운데 있는 마을을 ‘가운데 바리미’라고 부른다.</br>
 
발산리는 마을 서편의 산이 주발을 엎어놓은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또는 '발산(鉢山)'이라 부른다 하며, 가운데 있는 마을을 ‘가운데 바리미’라고 부른다.</br>
 
조선 초엽 태종(太宗)에 의한 태자(太子)의 난(亂)때 신천 강씨인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일족이 화를 입게 되어 이곳으로 피난하여 숨어 살았는데 그 후 송시열(宋時烈) 등 많은 학자들의 탄원에 의해 관원(官員)의 등용(登用)이 허락되었다. </br>
 
조선 초엽 태종(太宗)에 의한 태자(太子)의 난(亂)때 신천 강씨인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일족이 화를 입게 되어 이곳으로 피난하여 숨어 살았는데 그 후 송시열(宋時烈) 등 많은 학자들의 탄원에 의해 관원(官員)의 등용(登用)이 허락되었다. </br>
그때 영조(英祖) 때 후손인 강씨부자(康氏父子)가 거듭 대과(大科)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어 중광사(重光寺)라는 절을 세우게 하였다 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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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영조(英祖) 때 후손인 강씨부자(康氏父子)가 거듭 대과(大科)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어 중광사(重光寺)라는 절을 세우게 하였다 한다.</br>
 
중광사를 세운 산의 산세(山勢)가 마치 주발을 엎어 놓은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즉 발우 (발; 鉢)과 같은 뫼 (산; 山)이 있다 해서 '발산리(鉢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br>
 
중광사를 세운 산의 산세(山勢)가 마치 주발을 엎어 놓은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즉 발우 (발; 鉢)과 같은 뫼 (산; 山)이 있다 해서 '발산리(鉢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br>
 
발산리는 신천 강 씨의 집성촌이며 중광사 사찰 옆에는 신천강씨 재실인 효선재가 있다.</br>
 
발산리는 신천 강 씨의 집성촌이며 중광사 사찰 옆에는 신천강씨 재실인 효선재가 있다.</br>

2024년 9월 11일 (수) 07:58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세종 중광사(世宗 重光寺)
  • 소재지 : 세종시 금남면 발산리 39 (세종시 금남면 발산2길 33-10)

중광사(重光寺)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발산리 39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발산리는 마을 서편의 산이 주발을 엎어놓은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또는 '발산(鉢山)'이라 부른다 하며, 가운데 있는 마을을 ‘가운데 바리미’라고 부른다.
조선 초엽 태종(太宗)에 의한 태자(太子)의 난(亂)때 신천 강씨인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일족이 화를 입게 되어 이곳으로 피난하여 숨어 살았는데 그 후 송시열(宋時烈) 등 많은 학자들의 탄원에 의해 관원(官員)의 등용(登用)이 허락되었다.
그때 영조(英祖) 때 후손인 강씨부자(康氏父子)가 거듭 대과(大科)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어 중광사(重光寺)라는 절을 세우게 하였다 한다.
중광사를 세운 산의 산세(山勢)가 마치 주발을 엎어 놓은 형국이라 하여 바리미 즉 발우 (발; 鉢)과 같은 뫼 (산; 山)이 있다 해서 '발산리(鉢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발산리는 신천 강 씨의 집성촌이며 중광사 사찰 옆에는 신천강씨 재실인 효선재가 있다.
중광사 사찰은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사찰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목야뜨락 중광사(重光寺)/세종시 금남면 발산리
- 산이 좋다! 세종토박이의 전국100대명산 여행 [세종시명산]금강과 신도심 조망이 뛰어나고, 산책하기 좋은 비학산 일출봉 원점회귀 환 종주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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