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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 사찰명 : 대구 원만사(圓滿寺) ''' * ''' 주소 : 대구시 중구 동산동 708 ''' </br> 원만사는 1952년부터 원만(圓滿), 계수(桂樹), 보현(普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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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대구시 중구 동산동 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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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사는 1952년부터 원만(圓滿), 계수(桂樹), 보현(普賢), 법홍(法弘)의 4대째 불사가 지속되고 있다. 1981년 극락사 터 174평을 추가로 매입하고, 끊임없는 불사의 원력에 정진하기 위해 기도해서 모아진 돈이나 불사금으로 주위의 땅을 조금씩 사들여 현재는 땅이 600평 정도 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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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사는 1952년부터 원만(圓滿), 계수(桂樹), 보현(普賢), 법홍(法弘)의 4대째 불사가 지속되었다. 1981년 극락사 터 174평을 추가로 매입하고, 끊임없는 불사의 원력에 정진하기 위해 기도해서 모아진 돈이나 불사금으로 주위의 땅을 조금씩 사들여 현재는 땅이 600평 정도 된다. </br>
그 당시 자운 큰스님께서 원만사에 법문을 하러 자주 오셨는데, 법당 문이 낮아 걸핏하면 문에 머리를 부딪치셨다. 그때마다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하루빨리 큰 법당을 지어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발원하였다. 그리고 스님의 정진과 열정에 천지가 감동하고 급기야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마침내 청정무구한 부처님 도량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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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자운 큰스님께서 원만사에 법문을 하러 자주 오셨는데, 법당 문이 낮아 걸핏하면 문에 머리를 부딪치셨다. 그때마다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하루빨리 큰 법당을 지어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발원하였다. 그리고 스님의 정진과 열정에 천지가 감동하고 급기야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마침내 청정한 부처님 도량이 건립되었다. </br>
 
원만사 주위에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교회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으니 원만사도 높이 지어 부처님을 위쪽에 모시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절 건물을 높게 지었다고한다. 또한 절이 대구 시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서 요사채나 법당을 따로 두고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편리성과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br>
 
원만사 주위에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교회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으니 원만사도 높이 지어 부처님을 위쪽에 모시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절 건물을 높게 지었다고한다. 또한 절이 대구 시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서 요사채나 법당을 따로 두고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편리성과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br>
 
1984년 9월 15일 현재의 대웅전을 기공해서 1986년 5월 6일 일타 큰스님을 모시고 봉불식을 하여 중창 불사를 했고, 절에서 운영하는 원만사유치원은 1987년 3월 1일에 개원했다. </br>
 
1984년 9월 15일 현재의 대웅전을 기공해서 1986년 5월 6일 일타 큰스님을 모시고 봉불식을 하여 중창 불사를 했고, 절에서 운영하는 원만사유치원은 1987년 3월 1일에 개원했다. </br>
 
※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692~693.
 
※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692~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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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 ''' : [https://map.kakao.com/?q=대구_중구_동산동_708 원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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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 ''' : [https://map.kakao.com/?q=대구_중구_동산동_708 원만사]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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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사찰]]

2024년 5월 7일 (화) 08:51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대구 원만사(圓滿寺)
  • 주소 : 대구시 중구 동산동 708


원만사는 1952년부터 원만(圓滿), 계수(桂樹), 보현(普賢), 법홍(法弘)의 4대째 불사가 지속되었다. 1981년 극락사 터 174평을 추가로 매입하고, 끊임없는 불사의 원력에 정진하기 위해 기도해서 모아진 돈이나 불사금으로 주위의 땅을 조금씩 사들여 현재는 땅이 600평 정도 된다.
그 당시 자운 큰스님께서 원만사에 법문을 하러 자주 오셨는데, 법당 문이 낮아 걸핏하면 문에 머리를 부딪치셨다. 그때마다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하루빨리 큰 법당을 지어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집을 지어야겠다고 발원하였다. 그리고 스님의 정진과 열정에 천지가 감동하고 급기야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마침내 청정한 부처님 도량이 건립되었다.
원만사 주위에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교회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으니 원만사도 높이 지어 부처님을 위쪽에 모시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절 건물을 높게 지었다고한다. 또한 절이 대구 시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서 요사채나 법당을 따로 두고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편리성과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1984년 9월 15일 현재의 대웅전을 기공해서 1986년 5월 6일 일타 큰스님을 모시고 봉불식을 하여 중창 불사를 했고, 절에서 운영하는 원만사유치원은 1987년 3월 1일에 개원했다.
※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 pp. 692~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