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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몇몇 뜻있는 비구니스님들이 불교 현대화의 역군을 양성할 비구니총림을 건립하자고 발원하여 결성한 조직이다. 초대 회장인 서울 보문동 보문사 주지 은영스님을 중심으로 '비구니총림 건립', '불교대중화를 위한 포교 합리화', '중생제도를 위한 복지사회 건설' 이라는 3대 강령을 바탕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81년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했고, 1985년 9월 5일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비구니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비구니 스님이 단일화된 모습으로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8년 2월24일 대한불교비구니우담바라회 창립부터다.
 
 
오늘날 전국비구니회 전신(前身)인 ‘우담바라회’는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조직이며
 
 
이를 계기로 수행 교육 포교 가람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비구니스님들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게 됐다.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새로운 종단이 만들어졌던 1955년이 지나,
 
 
정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비구니 스님들이 전국의 사찰에 산재하며 가람을 일구고 후학 양성을 위해 강원을 열었다.
 
 
1956년 동학사 강원, 1958년 문을 연 운문사 승가대학청암사 승가대학이 대표적이다.
 
 
또 우담바라회 창립을 주도한 명성스님은 종비생 이전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재학하며 불교와 신학문을 배우는 등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교육에 매진했다.
 
 
이처럼 비구니 스님들은 역량을 강화하다가 1968년 우담바라회 조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우담바라회 창립을 다룬 당시 불교신문 기사를 보면,
 
 
"불교현대화를 위한 인재 양성과 시대가 요구하는 포교의 근대화를 위해 전국에 산재한 5000여 비구니들이 단합했다.
 
 
이 모임은 지금까지 희박한 역사의식에서 오는 안일한 제사종교를 벗어나, 생활의 도량인 가정으로부터 불법(佛法)을 일으키자는 발원을 세우고
 
 
지난 2월24일 오전11시 보문사에서 비구니 100여명이 모여 ‘대한불교비구니우담바라회’를 발족했다.
 
 
이 회는 1967년 11월 초순 서울과 지방의 뜻있는 비구니 스님들이 발기해,
 
 
지금은 상당수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시내 동대문구 숭인동 청룡사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앞으로 우담바라회는 전국비구니 사암의 실태 파악과, 획일적인 교육 과정 그리고 포교 내용을 통일하는 교화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우담바라회에서 구상하고 있는 사업 목표를 보면 총림의 설치와 전국비구니에 대한 실태조사 착수, 그리고 중앙수도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불교신문 239호 1968년 3월17일자)
 
 
당시 우담바라회는 ▲(비구니)총림의 건설 ▲포교의 합리화 ▲복지사회건설이라는 삼대강령을 제창했다.
 
 
또한 각 문중별 계보를 정리함으로써 비구니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계기도 되었다.
 
 
 
♦출처<br/>
 
 
불교신문, 우담바라회 창립과 비구니 활동(상) 2010년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618
 
 
불교신문, 우담바라회 창립과 비구니 활동(하) 2010년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751
 
 
법보신문, 창립 50주년 전국비구니회 2018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77
 
 
♦참조<br/>
 
 
BTN, 창립50주년 특집 우담바라의 화현 2018년  https://www.youtube.com/watch?v=Iarc-QbmAIY
 

2024년 4월 28일 (일) 21:14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