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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성(法性) 스님이 1962년부터 1998년까지 성라암 새 법당과 신도회관 불사를 시작해서 1960년대 말에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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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에는 성라암 선원을 개원하여 2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응민스님을 입승으로 하안거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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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라암 비구니 승가학원 한국비구니대학을 세워 정식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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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성스님이 이사장을 맡고 묘엄스님이 학장을 맡아 1981년에 개학하였으나 개운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중앙승가대학교로 1982년에 합병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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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욕에 비해 현실적인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최초로 입학했던 50명의 비구니를 끝으로 1회 졸업생을 배출시키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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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성 스님은 성라암을 1990.9.26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으로 바꾸어 무의탁 노인들을 거두고 돌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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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명 : 성북동(서울) 성라암(성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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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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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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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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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앙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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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다는 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마음 한번 돌리니 극락이 예 있구나(법성스님 자서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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