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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는 성라암 선원을 개원하여 2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응민스님을 입승으로 하안거를 났다. </br>
 
1978년에는 성라암 선원을 개원하여 2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응민스님을 입승으로 하안거를 났다. </br>
 
성라암의 [[성라암비구니승가학원]]이라는 명칭의 강원(승가대학)을 운영하던 중에 [[대한불교 비구니우담바라회]]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한국비구니대학'을 세워 정규대학으로 정부 인가를 받아 법성스님이 이사장을 맡고 묘엄스님이 학장을 맡아 1981년에 개학하였으나 개운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중앙승가대학교에 1982년에 합병되면서 의욕에 비해 현실적인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최초로 입학했던 50명의 비구니를 끝으로 1회 졸업생을 배출시키고 문을 닫았다.  </br>
 
성라암의 [[성라암비구니승가학원]]이라는 명칭의 강원(승가대학)을 운영하던 중에 [[대한불교 비구니우담바라회]]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한국비구니대학'을 세워 정규대학으로 정부 인가를 받아 법성스님이 이사장을 맡고 묘엄스님이 학장을 맡아 1981년에 개학하였으나 개운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중앙승가대학교에 1982년에 합병되면서 의욕에 비해 현실적인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최초로 입학했던 50명의 비구니를 끝으로 1회 졸업생을 배출시키고 문을 닫았다.  </br>
법성스님은 1990년 4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 후 이듬해 1월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찰 건물과 대지, 임야등 약 30억원의 사재를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에 기증했다. 이로써 재정적 기반을 닦은 성라원은 92년 4월 청소년종합복지시설인 길음종합사회복지관<ref>길음종합사회복지관은 은평구 진관동 삼천사 산하 인덕원삼천사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ref>과 어린이 보육시설인 목동 꿈나래 어린이집을 동시에 개관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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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스님은 1990년 4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 후 이듬해 1월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찰 건물과 대지, 임야등 약 30억원의 사재를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에 기증했다. 이로써 재정적 기반을 닦은 성라원은 92년 4월 청소년종합복지시설인 길음종합사회복지관<ref>길음종합사회복지관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삼천사 산하 인덕원삼천사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ref>과 어린이 보육시설인 목동 꿈나래 어린이집을 동시에 개관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br>
 
법성스님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 때 가장 큰 목적으로 삼은 일은 여생이 많지 않은 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노인의 낙원 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계획을 전해들은 독실한 불자인 한 할머니가 경기도 가평군 상면 봉수리의 땅 3만7천평을 기증함으로써 법성스님의 꿈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br>
 
법성스님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 때 가장 큰 목적으로 삼은 일은 여생이 많지 않은 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노인의 낙원 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계획을 전해들은 독실한 불자인 한 할머니가 경기도 가평군 상면 봉수리의 땅 3만7천평을 기증함으로써 법성스님의 꿈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br>
 
법성스님은 폐교한 한국비구니대학을 대신하여 성라암을 1990년 9월 26일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으로 바꾸어 무의탁 노인들을 거두고 돌봐드리기 시작했다. 정식 절차를 밟아서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얻는데 자그만치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br>
 
법성스님은 폐교한 한국비구니대학을 대신하여 성라암을 1990년 9월 26일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으로 바꾸어 무의탁 노인들을 거두고 돌봐드리기 시작했다. 정식 절차를 밟아서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얻는데 자그만치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br>

2024년 3월 31일 (일) 18:17 판

  • 명칭 : 사회복지법인 성라원(星羅院)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85

성라원(星羅院)의 정식 명칭은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이다. 서울 성북동 산기슭에 자리잡은 불교 조계종 성라암은 도심 사찰로서도 번듯한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는 사회복지법인 성라원 (02-743-0294)의 본산으로 더욱 유명하다.성라암 주지이자 성라원 이사장은 올해 82세의 비구니 법성스님(속명 권갑순)이다. 법성스님(法性, 1914生, 비구니)이 1962년부터 1998년까지 성라암 새 법당과 신도회관 불사를 시작해서 1960년대 말에 완공하였다.
1978년에는 성라암 선원을 개원하여 20여 명의 비구니스님들이 응민스님을 입승으로 하안거를 났다.
성라암의 성라암비구니승가학원이라는 명칭의 강원(승가대학)을 운영하던 중에 대한불교 비구니우담바라회가 설립하여 운영하는 '한국비구니대학'을 세워 정규대학으로 정부 인가를 받아 법성스님이 이사장을 맡고 묘엄스님이 학장을 맡아 1981년에 개학하였으나 개운사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중앙승가대학교에 1982년에 합병되면서 의욕에 비해 현실적인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최초로 입학했던 50명의 비구니를 끝으로 1회 졸업생을 배출시키고 문을 닫았다.
법성스님은 1990년 4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한 후 이듬해 1월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찰 건물과 대지, 임야등 약 30억원의 사재를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에 기증했다. 이로써 재정적 기반을 닦은 성라원은 92년 4월 청소년종합복지시설인 길음종합사회복지관[1]과 어린이 보육시설인 목동 꿈나래 어린이집을 동시에 개관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법성스님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 때 가장 큰 목적으로 삼은 일은 여생이 많지 않은 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노인의 낙원 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계획을 전해들은 독실한 불자인 한 할머니가 경기도 가평군 상면 봉수리의 땅 3만7천평을 기증함으로써 법성스님의 꿈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법성스님은 폐교한 한국비구니대학을 대신하여 성라암을 1990년 9월 26일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으로 바꾸어 무의탁 노인들을 거두고 돌봐드리기 시작했다. 정식 절차를 밟아서 사회복지법인 허가를 얻는데 자그만치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법성스님은 이곳에 유료와 무료 양로원과 법당을 두루 갖춘 성라불국토를 만들기로 하고 1993년5월 1차로 유료양로원을 착공했다. 양로원 2동과 복지동 등 연건평 1천9백평의 건물에 96개의 숙소와 취미오락실, 서예실, 진료실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지게 될 유료양로원을 설립했다.
2024년 현재 사회복지법인 성라원은 이곳 성북구 성북동 285(서울 성북구 성북로31길 27)와 경기도 가평군 상면 봉수리 산49-4에 유료양로시설인 성라실버타운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9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앙승가대학
- 산다는 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마음 한번 돌리니 극락이 예 있구나(법성스님 자서전)’를 읽고
- 조선일보 성북동 성라암 법성스님/"노인의 낙원 만드는게 꿈"(사랑의 이웃) 1995년.
- 법보신문 수행의 향기-성라실버타운 이사장 법성 스님 2004년.
- 성북마을아카이브 성라암.

  • 길음종합사회복지관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삼천사 산하 인덕원삼천사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