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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법호·법명 : 회명일승(晦明日昇, 1866~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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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생애·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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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6년 6월15일 경기도 양주군(지금은 양주시) 시둔면 직동리에서 부친 이관석(李寬錫) 선생과 모친 수원 백씨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이름은 우경(牛庚). 본관은 전주(全州).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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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려서 할머니 유씨(柳氏) 슬하에서 <소학> <중용> <대학> <논어> 등 한학을 연찬했다. 11세 되던 해(1876년) 3월 양주군 학림암(지금은 서울 상계동 학림사)에서 보하(寶河)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보하스님 회상에서 상주권공, 영산작법 등 범음성(梵音聲)을 배웠다. 1878년 서울 개운사에서 낙암일우(樂庵一佑)스님에게 사미계를 수지하고, 일승(日昇)이란 법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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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3년에는 금강산 건봉사에서 하은열가(荷隱列柯)스님에게 비구계와 보살대계를 수지했다. 1882년 10월 건봉사 만일선원(萬日禪院)에서 수선 안거한 이래 20 하안거를 성취했다. 1886년 9월 건봉사 보안강원(普眼講院)에서 완명(翫溟)스님과 진하(震河)스님 회상에서 공부한 후 제방 강당에서 11년간 대교과를 수료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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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과 교를 겸비한 회명스님은 건봉사에서 서무 소임을 시작으로 만일염불회 설교사(說敎師), 금강계단 전계사, 오대산 중대 세존적멸보궁 수호원장, 각황사 총무, 조선 31 대본산 연합사무소 감사 등을 역임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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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밖에도 경기도 광주 봉은사(지금은 서울 봉은사) 선원 회주, 고양 흥국사 선원 회주, 김천 직지사 회주 등 제방선원에서 수좌들을 지도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는 만주 목단강성에 대흥사 호국선원을 창건했다. 이에 앞서 1929년에는 중국 용정에 불일보조사(佛日普照寺)를 창건하기도 했다. 평양 영명사 주지(1914년)를 역임한 스님은 건봉사 주지에 당선(1918년) 됐지만 끝내 사양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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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22일 대원암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86세, 법납 75세. “移行千里萬虛空(이행천리만허공) 歸途情忘到淨邦(귀도정망도청방) 三業投誠三寶禮(삼업투성삼보례) 聖凡同會法王宮(성범동회법왕궁)”이란 내용의 임종게를 남겼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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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법상좌로 지월(指月)·능명(凌溟)·능산(凌山)·혜각(慧覺)·능파(凌坡) 스님 등 20여명 가까이 있다. 회명스님 부도는 손상좌 태연스님이 건봉사에 건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숭례문 단청 작업을 한 혜각스님이 지난 1991년 상좌 동원·태연스님 등 문도들로 하여금 <회명문집>을 발간하도록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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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처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8265 불교신문(2009.08.26 10:04)] 66. 회명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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