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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迦葉山)에 있는 절 음성 미타사는 고려말기 이전에 지어졌진 사찰이다.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迦葉山)에 있는 절 음성 미타사는 고려말기 이전에 지어졌진 사찰이다. | ||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을 1964년에 수덕사의 비구니 명안(明岸)스님이 중창의 원력(願力)을 세워 1965년 4월 8칸의 당우를 건립하였으며, 승려 금오(金烏)와 혜암(惠庵)이 수도자가 도를 깨칠만한 도량이라고 하였다. 그 뒤 1979년 사역대확장 사업과 함께 흙벽 8칸의 기와집을 헐고 그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 극락전과 삼성각(三聖閣)을, 그리고 이듬해 선방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을 1964년에 수덕사의 비구니 명안(明岸)스님이 중창의 원력(願力)을 세워 1965년 4월 8칸의 당우를 건립하였으며, 승려 금오(金烏)와 혜암(惠庵)이 수도자가 도를 깨칠만한 도량이라고 하였다. 그 뒤 1979년 사역대확장 사업과 함께 흙벽 8칸의 기와집을 헐고 그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 극락전과 삼성각(三聖閣)을, 그리고 이듬해 선방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
2024년 3월 9일 (토) 18:42 판
- 명칭 : 미타사지장보살입상
-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874-2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迦葉山)에 있는 절 음성 미타사는 고려말기 이전에 지어졌진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을 1964년에 수덕사의 비구니 명안(明岸)스님이 중창의 원력(願力)을 세워 1965년 4월 8칸의 당우를 건립하였으며, 승려 금오(金烏)와 혜암(惠庵)이 수도자가 도를 깨칠만한 도량이라고 하였다. 그 뒤 1979년 사역대확장 사업과 함께 흙벽 8칸의 기와집을 헐고 그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 극락전과 삼성각(三聖閣)을, 그리고 이듬해 선방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고려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90㎝의 석조 아미타여래좌상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된 높이 230㎝의 마애불이 있고 2000년에 조성완료된 지장보살입상이 있다. 미타사지장보상입상은 모든 중생이 백팔참회를 통해 성불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108척(41m) 높이로 세운 동양최대의 지장보살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