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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 사찰명 : 안양 한마음선원 ''' * ''' 주소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01-60 ''' </br> 묘공대행묘공대행(妙空大行) 스님이 1972년 세수 4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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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에는 118평의 대법당을 두고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박찬수 관장(목아박물관)으로 하여금 본존불과 법상을 조성하게 하였고, 목탱화, 단청, 개금 역시 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청원 스님과 김성규님이 맡아 대법당을 장엄하니 그 규모와 예술문화적 가치에 사부대중이 크게 찬탄하였다. </br>
 
5층에는 118평의 대법당을 두고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박찬수 관장(목아박물관)으로 하여금 본존불과 법상을 조성하게 하였고, 목탱화, 단청, 개금 역시 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청원 스님과 김성규님이 맡아 대법당을 장엄하니 그 규모와 예술문화적 가치에 사부대중이 크게 찬탄하였다. </br>
 
1999년 10월 31일 대법당 낙성법회에는 불교계의 대덕 큰스님들은 물론이고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대불사의 원만한 회향을 한마음으로 축하하였다. </br>
 
1999년 10월 31일 대법당 낙성법회에는 불교계의 대덕 큰스님들은 물론이고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대불사의 원만한 회향을 한마음으로 축하하였다. </br>
스님께서는 신도들과 함께한 낙성식 기념 법회(1999.1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불사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여래의 자리에 다 회향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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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신도들과 함께한 낙성식 기념 법회(1999.1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불사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여래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회향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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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모든 한마음의 노고가 더불어 같이 이렇게 이루었다고 봅니다. 근데 우리가 마쳤다 해도 아니 되고 마치지 않았다 해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발걸음을 걷는 게 결국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불사니까요. 여러분들이 이것을 지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지만 궁극에 들어가서는 세세생생에 내 집이고 더불어 같이 내 집인데 뭘 생색을 내서 ‘했다 안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겠습니까. 그런 대로 흉하지 않게 해 놓고 미래에도 여러분들이 이 장소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이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r>
 
“여러분들의 모든 한마음의 노고가 더불어 같이 이렇게 이루었다고 봅니다. 근데 우리가 마쳤다 해도 아니 되고 마치지 않았다 해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발걸음을 걷는 게 결국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불사니까요. 여러분들이 이것을 지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지만 궁극에 들어가서는 세세생생에 내 집이고 더불어 같이 내 집인데 뭘 생색을 내서 ‘했다 안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겠습니까. 그런 대로 흉하지 않게 해 놓고 미래에도 여러분들이 이 장소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이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br>

2023년 7월 30일 (일) 15:51 판

  • 사찰명 : 안양 한마음선원
  • 주소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01-60


묘공대행묘공대행(妙空大行) 스님이 1972년 세수 46세에 불법의 궁극적 목표인 한마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본래의 불성을 밝혀 성불하도록 인도하고자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현재의 한마음선원 전신인 대한불교회관을 설립했다.
대행스님은 1982년 1월 22일 한마음선원을 대한불교조계종에 등록하고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으로 개칭한 뒤 선원장으로 취임했다.
1993년 4월 안양의 한마음선원 본원 대법당 기공식을 갖게 되었다.
대법당 불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999년 10월 31일 비로소 낙성을 보았으니, 연면적 9,588㎡에 지상 5층 지하 4층의 대불사였다.
5층에는 118평의 대법당을 두고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 박찬수 관장(목아박물관)으로 하여금 본존불과 법상을 조성하게 하였고, 목탱화, 단청, 개금 역시 문화재 기능 보유자인 청원 스님과 김성규님이 맡아 대법당을 장엄하니 그 규모와 예술문화적 가치에 사부대중이 크게 찬탄하였다.
1999년 10월 31일 대법당 낙성법회에는 불교계의 대덕 큰스님들은 물론이고 정관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대불사의 원만한 회향을 한마음으로 축하하였다.
스님께서는 신도들과 함께한 낙성식 기념 법회(1999.11.7.)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불사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여래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회향했다.

“여러분들의 모든 한마음의 노고가 더불어 같이 이렇게 이루었다고 봅니다. 근데 우리가 마쳤다 해도 아니 되고 마치지 않았다 해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발걸음을 걷는 게 결국은 사람이 살아나가는 불사니까요. 여러분들이 이것을 지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지만 궁극에 들어가서는 세세생생에 내 집이고 더불어 같이 내 집인데 뭘 생색을 내서 ‘했다 안 했다’ ‘잘했다 잘못했다’ 하겠습니까. 그런 대로 흉하지 않게 해 놓고 미래에도 여러분들이 이 장소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이렇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했다 누가 안 했다 이걸 떠나서, 이걸로 즉 말하자면 길잡이가 돼서 여러분들이 다 이 한자리에서, 지구 바퀴에서 벗어나서 사방, 상하 모두 뚫린 데로 다 자유스럽게 훨훨 털고 벗어나시기를 바라면서, 이 집을 이렇게 하신 것도 마음에다 넣고 그렇게 함이 없이 하신 거를 아신다면 공덕이 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하나 하나가 전부 공덕이 될 것입니다.
그걸 마음에 넣지 않고, 이 내면에 더불어 같이 하지 않았으면 공덕이 하나도 없죠. 그렇지만 모든 게 함이 없이 했다는 걸 알게 되고 자기가 공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마음을 가지신다면 모두가 공덕입니다. 하나도 공덕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고 이렇게 여러분들을 뵈니까 참, 부처님이 따로 없고 귀빈이 따로 없고 정말 공법 신이 따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자료 :
한마음선원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10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