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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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현대불교신문(現代佛敎新聞)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6길 36 (오피스텔월드) 606 (대표전화 : 02)2004-8200 | 팩스 : 02)737-0698) 현대불교 신문은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 세계화를 사시로 1994년10월15일 한마음선원에서 창간하였다. 발행 목적은,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를 위하여, 불교교리 연구 및 보급, 신앙생활 각 종단 관련단체 소개 등, 불교과 관련된 각종 소식을 제공함으로써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

《행동강령》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한다.
언제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한다.
내 손으로 할 일이면 최고로 한다.

《창간사》

"가르침 속에 한마음 될 때까지"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은 늘 공존한다. 과거는 경험 반성 교훈의 모습으로 오늘에 살고 있고 미래는 예견 결의 희망의 얼굴로 오늘과 함께 한다. 이것은 철칙이다. 현대불교신문은 바로 그 오늘의 의미를 뚜렷이 인식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자신에게 반문한다. 불교는 케케묵은 어려운 종교인가? 한국불교는 이제 시대의 약방문으로 더 이상 환대받을 수 없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대답은 단호하다. 불교, 즉 붓다의 가르침이 낡은 게 아니라 불교인이 구태의연할 뿐이다.
세계는 병원이고 인류는 치료되어야 할 환자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발원 동기이자 깨달음의 골자이다. 그럴진대 어찌 불교가 묵어 군내나는 가르침일 수 있으라. 불교는 영원한 오늘의 약방문이요 생명력이다. 다만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시대의 고뇌를 적극 감싸안지 못함으로써, 또한 현대인에게 알맞는 삶의 모델, 사고의 모델을 옳게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오해와 평가절하를 자초한 것이다. 더욱이 그같은 경향은 안타깝게도 한국 불교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현대 산업 사회의 각종 병리현상이 곪아터져도 돌아앉은 산중에 은거하는 소극적 자세가 그러하고 중생구원의 본분사보다 기복 신앙에 안주하려는 모습이 그러하다. 뿐만아니라 되풀이 되는 분쟁 송사 정화사태로 배불의 기운을 자초하는 형태가 그러하다. 이에 현대불교신문은 대개혁의 기풍 진작을 고대하면서 우리들이 할 일로 불교의 현대화 생활화를 제시한다.
불교의 현대화란 교리의 재해석이나 개작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요. 가르침을 따라 살아도 거북살스럽지 않게 납득시키는 일이요, 가르침을 맛 볼 수록 삶이 넉넉해지게 이끄는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화는 붓다의 정신으로 되돌아감인 동시에 가르침의 참뜻에 오늘이라는 옷을 입히는 노력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앞으로 사회 병리 현상, 인간소외의 문제, 생태계 파괴 등의 과제도 현대화의 각론으로 삼아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불교의 생활화 역시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다. 그냥 일상 생활 가운데 불법을 실천하고 사회가 바로 가르침의 실천 도량이 되게 하자는, 다시말해 가르침이 곧 생활도리요, 생활도리가 곧 가르침되게 하자는 것이다. 그를 위해 우리는 현장으로 뛰어들어 힘 닿는 대로 실참 수행을 북돋우려 한다. 그것도 선도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실참 수행이기도 하다.
불교의 현대화 생활화는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온 겨레가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한마음이 될 때까지 우리의 노력을 다방면으로 계속할 각오이다. 우리가 이 일에 정진, 또 정진할 때 우리는 거기서 한국 불교의 세계화의 길을 찾게 될 것이고 불교가 현대 화학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생동감 넘치는 가르침으로 온 인류를 감싸안게 되리라 확신한다.
끝으로 현대불교는 언제나 거짓없는 목탁소리를 낼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특정 사찰 특정 종파의 대변지이기를 거부하고 다만 붓다의 기관지임을 고집할 것이며, 따라서 파사현정의 정신만이 우리를 잡아둘 뿐 어디에도 굴하지 않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언론의 자세를 지켜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