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보택(石頭寶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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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호·법명 : 석두보택(石頭寶澤, 1882~1954)
  • 생애·업적

석두보택(石頭寶澤, 1882~1954) 스님은 1882년 9월 4일(음력)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화대동에서 부친 임치권(林致權) 선생과 모친 김해 김씨 슬하에서 5남매 가운데 2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상하(尙夏). 소년 시절에는 병법(兵法)을 배워 장수가 되고 싶었지만, 일제 침탈에 실망하여 출세(出世)의 뜻을 접고 출세간(出世間)하여 수행자가 됐다.
16세에 안변 석왕사에서 백하청호(白荷晴昊)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백하스님은 “장차 선지식이 될 것”이라며 보택(寶澤)이란 법명을 주었다. 은사 회상에서 정진하며 범패(梵唄)도 익히며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에 함북 명천군 쌍계사 주지 소임을 받았지만 사양하고 오대산 상원사, 양산 통도사 등에서 정진했다.
25세 되던 해 합천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산스님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듬해 겨울 무자(無字)화두를 타파하고 깨달음을 성취했다. 이후 가야산, 금강산 등 명산에 있는 제방 선원에서 수행했다. 1909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영봉(靈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 미륵암, 여여원, 봉래암 등에서 후학을 제접했다. 47세 되던 해에는 효봉스님에게 법을 전했다.
전주 남고사, 곡성 도림사, 남원 백우암, 순천 송광사, 순창 순평암에 주석하며 정진하며 호남에도 법향(法香)을 전했다. 71세에 통영 미륵도 미래사로 주석처를 옮겼으며, 1954년 4월25일(음력) 열반에 들었다. 세수 73세, 법납 57세.
스님의 비(碑)는 조계총림 송광사와 통영 미래사에 있다. 효봉학눌(曉鳳學訥), 향봉향눌(香峰香訥), 화봉유엽(華峰柳葉), 계봉무아(溪峰無我), 해봉석정(海峰石鼎), 석봉인선(石峰仁善), 은봉원광(隱峰圓光) 스님 등을 제자로 두었다.

※ 출처 : 석두보택(石頭寶澤) 선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