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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iguni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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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01T18:40:0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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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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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11:40: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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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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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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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272855 | 경도=128.438504 | 줌=17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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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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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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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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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삼현(三賢)문중]] || ~의 일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성태(聖太)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충북 문수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수덕사]]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은해사 백흥암]]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군위 법주사]]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 ~의 회장을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전국 비구니선원 선문회]] || ~의 회장을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9</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9"/>
		<updated>2022-07-28T06:02:3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272855 | 경도=128.438504 | 줌=17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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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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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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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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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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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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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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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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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삼현(三賢)문중]] || ~의 일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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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성태(聖太)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충북 문수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수덕사]]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은해사 백흥암]]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군위 법주사]]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 ~의 회장을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전국 비구니선원 선문회]] || ~의 회장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8</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8"/>
		<updated>2022-07-28T06:01: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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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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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272855 | 경도=128.438504 | 줌=17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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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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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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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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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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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삼현(三賢)문중]] || ~의 일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성태(聖太)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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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충북 문수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수덕사]]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은해사 백흥암]]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군위 법주사]]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淨岸, 1946生, 비구니) | 육문(淨岸)스님]]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 ~의 회장을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淨岸, 1946生, 비구니) | 육문(淨岸)스님]] || [[전국 비구니선원 선문회]] || ~의 회장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6</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6"/>
		<updated>2022-07-28T05:56: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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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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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1</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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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5:44: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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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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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본항목 || || 정안스님(淨岸, 1951~2014)|| 淨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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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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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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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六文)스님(,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삼현(三賢)문중]] || ~의 일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성태(聖太)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문수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수덕사]]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은해사 백흥암]]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군위 법주사]]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淨岸, 1946生, 비구니) | 육문(淨岸)스님]]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 ~의 회장을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淨岸, 1946生, 비구니) | 육문(淨岸)스님]] || [[전국 비구니선원 선문회]] || ~의 회장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0</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60"/>
		<updated>2022-07-28T05:43: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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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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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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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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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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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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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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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본항목 || || 정안스님(淨岸, 1951~2014)|| 淨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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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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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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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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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은해사 백흥암]]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 | 육문(六文)스님]] || [[군위 법주사]] || ~의 회주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淨岸, 1946生, 비구니) | 육문(淨岸)스님]]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 ~의 회장을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육문스님(淨岸, 1946生, 비구니) | 육문(淨岸)스님]] || [[전국 비구니선원 선문회]] || ~의 회장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57</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57"/>
		<updated>2022-07-28T05:16: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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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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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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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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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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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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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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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본항목 || || 정안스님(淨岸, 1951~2014)|| 淨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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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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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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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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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혜종(慧宗)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만화(萬化) 희찬(喜燦)스님|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56</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56"/>
		<updated>2022-07-28T05:15: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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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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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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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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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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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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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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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5:14: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본항목 || || 정안스님(淨岸, 1951~2014)|| 淨岸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정안스님(淨岸,_1951生,_비구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봉래(蓬萊)문중]] || ~의 일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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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혜종(慧宗)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만화(萬化) 희찬(喜燦)스님|희찬(喜燦)스님(1919~198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50</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50"/>
		<updated>2022-07-28T05:12: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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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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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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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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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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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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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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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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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5</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5"/>
		<updated>2022-07-28T05:00: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6||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1962||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0~1980||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74||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1979~1982||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 1981||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1982~1998||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1994||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200||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2004||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2004~2014||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2015||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2019||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2019||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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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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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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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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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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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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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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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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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4</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4"/>
		<updated>2022-07-28T04:57: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350 육문(六文).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46||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0~1980||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4||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9~1982||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1981||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82~1998||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lt;br /&gt;
|1994||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0||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lt;br /&gt;
|2004||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04~2014||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lt;br /&gt;
|2015||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19||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2019||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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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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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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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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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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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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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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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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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D%8C%8C%EC%9D%BC:350_%EC%9C%A1%EB%AC%B8(%E5%85%AD%E6%96%87).jpg&amp;diff=6643</id>
		<title>파일:350 육문(六文).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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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4:57: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MsUpload로 파일을 올림&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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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MsUpload로 파일을 올림&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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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2</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2"/>
		<updated>2022-07-28T04:53: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lt;br /&gt;
|표제 = 육문(六文)스님&lt;br /&gt;
&lt;br /&gt;
|사진 = 431 정안(淨岸).jpg&lt;br /&gt;
&lt;br /&gt;
|법명 = 육문(六文) &lt;br /&gt;
&lt;br /&gt;
|법호 = 여운(旅雲) &lt;br /&gt;
&lt;br /&gt;
|속명 = 이수남(李壽南)&lt;br /&gt;
&lt;br /&gt;
|본적 = 충남 서산군 운산면&lt;br /&gt;
&lt;br /&gt;
|출생 = 1946. 12. 10&lt;br /&gt;
&lt;br /&gt;
|출가 = 1962년&lt;br /&gt;
&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lt;br /&gt;
|입적 = 2014년&lt;br /&gt;
&lt;br /&gt;
|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46||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0~1980||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4||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9~1982||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1981||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82~1998||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lt;br /&gt;
|1994||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0||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lt;br /&gt;
|2004||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04~2014||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lt;br /&gt;
|2015||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19||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2019||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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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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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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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9C%A1%EB%AC%B8%EC%8A%A4%EB%8B%98(%E5%85%AD%E6%96%87,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41</id>
		<title>육문스님(六文, 1946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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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4:51: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새 문서:  {{인물정보  |표제 = 육문(六文)스님  |사진 = 431 정안(淨岸).jpg  |법명 = 육문(六文)   |법호 = 여운(旅雲)   |속명 = 이수남(李壽南)  |본적 = 충...&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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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육문(六文)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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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 1962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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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법주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은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해 1969년 경북 양진암서 수선 안거 이래 25안거를 성만했다. 백흥암 도감으로 가람 신축불사를 10년간 하고 전국비구니회 선문회 회장, 11대 종회의원,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을 엮임한 대한민국 비구니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46 || 충남 서산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 문수사에서 성태(聖太)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0~1980 || 양진암 등 제방 선원에서 11하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4 ||  법주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79~1982 || 동화사 양진암, 백흥암 입승 역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1981 || 백흥암 도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82~1998 || 가람 신축 불사&lt;br /&gt;
(극락전 개금 불사, 설선당, 향적당 불사, 무이당, 요사채 개축 불사)&lt;br /&gt;
|-&lt;br /&gt;
&lt;br /&gt;
|1994 ||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0 || 백흥암 선원장&lt;br /&gt;
|-&lt;br /&gt;
&lt;br /&gt;
|2004 || 현재 군위 법주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04~2014 ||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lt;br /&gt;
|-&lt;br /&gt;
&lt;br /&gt;
|2015 || 제11대 전국비구니회 회장&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019 || 군위 법주사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2019 || 은해사 백흥암 회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삼현(三賢&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청정수행정진(淸淨修行精進)&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상훈|| 총무원장상(1987) 외 다수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취미 || 서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생=== &lt;br /&gt;
여운(旅雲) 육문(六文)스님은 1946년 12월 10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장리에서 아버지 이준과 어머니 김순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빈이며, 이름은 이수남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출가동기===&lt;br /&gt;
16세 되던 1962년, 스님은 조카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그해 4월 10일 충청북도 문수사로 입산하였고, 10월 15일 수덕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그 뒤 1964년 3월 15일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은 뒤, 동화사 양진암에서 동안거를 시작으로 구도 정진에 전념하였다. 스님이 29세 되던 1974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수지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은해사 창건 원찰 백흥암 부처님의 눈물===&lt;br /&gt;
육문스님의 나이 서른여섯이던 1981년 4월 제방 선원을 물과 구름처럼 떠돌다가 백흥암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해우소 바닥에서 대변을 주워 먹는 고양이를 보고 놀라 다음날 새벽 걸망을 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버렸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인사도 못 여쭙고 떠나온 것이 뒤늦게 생각나 다음해인 1982년 1월 20일 백흥암 감원이란 직분으로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뜻밖에도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 아닌가!&lt;br /&gt;
&lt;br /&gt;
경북 영천 팔공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 혜철국사의 발원으로 창건한 절이다. 조선조 때에는 인조의 태를 수호하는 사찰로서, 오늘날까지도 백흥암에는 명종 당시에 간행된 여러 가지 불서와 문서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창건 당시 근처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를 따라 절 이름을 백지사(柏旨寺)라고 불렀다. 백흥암으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명종 원년 천교대사에 의해서다. 백흥암은 본사인 은해사의 창건 원찰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수미단===&lt;br /&gt;
지금까지 보전해온 극락전 건물은 영조 때 중건된 것으로서, 아미타 삼존불을 떠받드는 수미단은 사실적이고 화려한 목조 새김이 돋보이며,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수미단은 조각 기법과 구성이 뛰어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각 부조이다. 5단으로 구성된 각 단마다 천녀와 동자 그리고 갖가지 동물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넣은 걸작으로 그 조화로운 배열과 나무를 투조한 기법은 보는 이의 감탄을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또한 백흥암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추앙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가 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란 글씨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사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개금불사===&lt;br /&gt;
&lt;br /&gt;
그러나 육문스님을 맞아준 것은 이런 화려한 역사의 흔적을 상흔처럼 간직하고 있는 낡고 퇴락한 사찰이었다. 당시 극락전, 방장실, 심검당,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다고는 하나 이름뿐이고, 실제로는 폐사나 다름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금이 떨어져 얼룩덜룩해진 부처님 얼굴이 스님에게는 눈물로 보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체없이 극락전 개금불사를 하여 1982년 12월 부처님 용안에 자비로운 미소를 되찾아드렸다. 1983년 요사채 개축 불사, 1992년 설선당과 향적당 불사 등 스님은 지칠 줄 모르고 불사를 거듭하였다.&lt;br /&gt;
&lt;br /&gt;
십년 불사의 길이 하도 고되고 힘이 들어 ‘이제 그만 나 떠날랍니다.’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부처님은 눈물을 보이며 스님을 붙드셨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극락전 해체 복원===&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은 다 지어 놓은 절에 나비처럼 곱게 날아들어 산 것이 아니었다.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데 실측 기간만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복원 불사란 신축의 몇 곱절 되는 비용과 품이 드는 일이었다.&lt;br /&gt;
&lt;br /&gt;
극락전 앞에 있는 두 당우도 본 기둥 중간중간에 새 나무로 쐐기를 박아 땜질을 하는 등 옛 모습 그대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키려고 성심을 다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극락전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5&lt;br /&gt;
 &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와 노동 울력=== &lt;br /&gt;
&lt;br /&gt;
스님은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공양간을 무시로 드나들며 채공 노릇을 하며 초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스스로 주지의 격을 낮추는 일이 스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다.&lt;br /&gt;
&lt;br /&gt;
또한 몇 천 평이나 되는 밭의 울력뿐 아니라 봄이면 나물 캐는 일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손을 놓아두는 법이 없는 것도 스님의 천성이다. 천성이 그러하기에 절 앞까지 이어지는 길 닦기에도 돌을 손수 등짐으로 져 나르고, 깨진 기와로 빗살무늬를 해 박은 낮은 토벽을 쌓는 일까지 거드는 도량 안팎으로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lt;br /&gt;
&lt;br /&gt;
스님은 필요하면 용처를 밝히고 돈을 타 갈 뿐 안살림은 모두 젊은 스님들에게 일임해두었다.&lt;br /&gt;
&lt;br /&gt;
십 년 불사를 원만히 이룬 것은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바르게 살았더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팔공산 호랑이===  &lt;br /&gt;
&lt;br /&gt;
남하고 시비는 물론 얼굴 한번 붉히는 일 없이 살아온 스님이 ‘팔공산 호랑이’라는 별호를 얻게 된 것은, 그간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lt;br /&gt;
&lt;br /&gt;
자그마한 몸에 얼굴 또한 고우나 언행이 분명한 모습은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한다.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지적하여 바로잡는다.&lt;br /&gt;
&lt;br /&gt;
10.27 법난(法亂) 때 절에 들이닥쳐 수선을 피웠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도무지 말을 삼갈 줄 모르는 스님의 대범함에 놀라 뒷날 다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스님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부처님이기에 그러한 힘이 솟아난 듯하다.&lt;br /&gt;
&lt;br /&gt;
법난 이후 석 달을 미행하고 다녔다는 기관원에게 스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살아온 길이 여법하면서도 청정하여 거리낄 바가 없었으나 알아주는 이 없었는데, 그 모습을 다 확인했을 터이니 고마운 일이라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지금도 종회의원으로 자주 서울에 드나들어야 할 형편이지만 수원에서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지난 개혁불사 때 비구니스님들이 참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p146&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전경&lt;br /&gt;
                                                                사진 출처 : 경북일보&lt;br /&gt;
===수행===  &lt;br /&gt;
&lt;br /&gt;
스님은 세수 33세부터 십 년 이상 동화사 양진암, 내원사, 해인사 삼선암 등 제방 선원에서 한 철도 거르지 않고 수행을 하였다. 안거 때만이 아니라 내원사에서 머물 때는 산철 결제까지 도모 했으니, 그 일은 아마 비구니 최초의 산철 결제였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백흥암에서도 좌복을 걷는다는 생각 없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마음을 안 도반스님들이 죽비를 들려 입승을 시켜 놓았다. 그러나 땟거리도 없는 가난한 절 살림을 꾸려야할 스님에게는 지나친 일이었다. 좌복 위에 앉지 못하는 아쉬움은 백흥암을 온전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행처로 만들겠다는 스님의 각오로 이어졌다.&lt;br /&gt;
&lt;br /&gt;
‘부모에게 큰 빚을 지고 스님이 되었으니, 문 잠가 놓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잘 먹고 잘 입는 편안한 수행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 행자 교육===  &lt;br /&gt;
&lt;br /&gt;
스님은 백흥암으로 출가한 행자들에게 남다른 각오로 가르친다. 13년 동안 허락 없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몇 번을 덧대어 기운 헌옷에 짝이 다른 양말과 행전 차림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면서 초발심을 지키게 한다.&lt;br /&gt;
&lt;br /&gt;
행자들은 절문 앞에 성처럼 쌓아 놓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이십 분 만에 밥을 지으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신심과 정성을 다하도록 훈육을 한다. 또한 큰방 스님들은 깨진 기와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복을 지켜 산철에도 결제가 끊어진 적이 없도록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lt;br /&gt;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행 정진에 힘쓰면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리리라===   &lt;br /&gt;
&lt;br /&gt;
 30여 명의 상좌들 가운데 공부하는 스님이 절반이 넘는데, 세속으로 나가서 포교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에게는 맵게 이른다.&lt;br /&gt;
&lt;br /&gt;
“경전만 달달 외워 전할 일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에 힘쓰면 그 끝에 저절로 얻어지는 바가 필연 있을 터이니, 그 여법한 행과 산소리야말로 뭇사람의 심금을 자연스레 울릴 것이다.”&lt;br /&gt;
&lt;br /&gt;
육문스님의 포교 방식과 중노릇하는 방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말씀이다. 스님은 1994년 3월 대한불교 조계종 개혁회 의원 및 상임의원, 같은 해 11월 대한불교 조계종 11대 종회의원을 역임하였다.&lt;br /&gt;
&lt;br /&gt;
2004~14년 전국비구니 선원 선문회 회장 역임. 2015년 전국비구니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출된 지낸 육문스님은 2019년 현재군위 법주사와 은해사 백흥암 회주로 있으며, 문하에는 상좌인 범준·무진·대원·원경·경호·보덕·대운·선휴·경원·정현·자선·인선·지엄·현상·도연·지양 외 19명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lt;br /&gt;
&lt;br /&gt;
&lt;br /&gt;
백흥암(百興庵)은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로 팔공산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은해사의 북서쪽 골짜기 치일 저수지를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비구니 도량이다.&lt;br /&gt;
&lt;br /&gt;
이 암자는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세워졌는데,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百旨寺)라는 이름으로 혜철(惠哲)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명종 1년(1546년) 천교(天敎)스님이 중창하여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조선 말기에 몇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지만 사세는 날로 퇴락해 갔다.&lt;br /&gt;
&lt;br /&gt;
1981년 육문(六文)스님이 도감으로 부임하여 극락전(보물 제790호)을 해체 복원하면서 중창 불사를 시작해 오늘날 비구니 도량으로서 면모를 굳게 다져 나가고 있다.&lt;br /&gt;
&lt;br /&gt;
현재 당우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선원 심검당과 좌측에 진영각이 있고, 문루 보화루(寶華樓), 극락전 좌측에 차례대로 입승실, 무위전,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밖에 요사와 신설당이 있다.&lt;br /&gt;
&lt;br /&gt;
백흥암은 비구니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산문을 닫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으로 유명한데, 그만큼 수행 분위기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어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열심히 정진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142~147.&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350.&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506&lt;br /&gt;
&lt;br /&gt;
‘육문스님, 제12대 전국비구니회장 출마의 변 발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amp;amp;sc_sub_section_code=S2N33&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월간 해인&lt;br /&gt;
&lt;br /&gt;
http://haein.or.kr/contents/?pgv=v&amp;amp;cno=2158&amp;amp;wno=35&lt;br /&gt;
&lt;br /&gt;
‘은해사 백흥암 육문스님’&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지식백과&lt;br /&gt;
&lt;br /&g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0663&amp;amp;cid=46656&amp;amp;categoryId=46656&lt;br /&gt;
&lt;br /&gt;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04&lt;br /&gt;
&lt;br /&gt;
‘[부처님 오신 날 기획] 군위 법주사 육문스님 대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네이버 블로그&lt;br /&gt;
&lt;br /&gt;
https://blog.naver.com/kimyc3189/222357662890&lt;br /&gt;
&lt;br /&gt;
‘숨은 비경을 찾아서’&lt;br /&gt;
&lt;br /&gt;
‘사찰기행 : 일년에 두 번 산문을 개방하는 은해사 백흥암’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lt;br /&gt;
&lt;br /&gt;
육문스님_220217_이경호1차.hwp&lt;br /&gt;
3.50MB&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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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lt;br /&gt;
● 법주사 :054-382-0408 |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lt;br /&gt;
{{  구글지도 | 위도= 36.955771 | 경도=126.625625 | 줌=17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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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맨틱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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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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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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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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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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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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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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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청하당(淸霞堂) 성원(性源) 대선사|성원(性源)스님(1927~2004;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오대산 남대 지장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 ~의 감원(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 || ~을 중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정안스님(淨岸, 1951生, 비구니) | 정안(淨岸)스님]] || [[백양사 천진암 백암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07</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07"/>
		<updated>2022-07-28T04:08: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 = 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 473 지행(智行).jpg&lt;br /&gt;
|법명 = 지행(智行 &lt;br /&gt;
|법호 = &lt;br /&gt;
|속명 = 임순희(林順姬) &lt;br /&gt;
|본관 = &lt;br /&gt;
|출생 = 1941년 10월 3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입적 = &lt;br /&gt;
|사찰 =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 세심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기타사항===&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문중|| 청해(靑海)문중 &lt;br /&gt;
|-&lt;br /&gt;
|수행지침|| 어린이 포교 &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lt;br /&gt;
* 세심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041-543-2696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6.842155 | 경도=126.926914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04</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604"/>
		<updated>2022-07-28T04:05: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 = 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 473 지행(智行).jpg&lt;br /&gt;
|법명 = 지행(智行 &lt;br /&gt;
|법호 = &lt;br /&gt;
|속명 = 임순희(林順姬) &lt;br /&gt;
|본관 = &lt;br /&gt;
|출생 = 1941년 10월 3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입적 = &lt;br /&gt;
|사찰 =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 세심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lt;br /&gt;
* 세심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041-543-2696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6.842155 | 경도=126.926914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D%8C%8C%EC%9D%BC:473_%EC%A7%80%ED%96%89(%E6%99%BA%E8%A1%8C).jpg&amp;diff=6541</id>
		<title>파일:473 지행(智行).jp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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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0:29: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MsUpload로 파일을 올림&lt;/p&gt;
&lt;hr /&gt;
&lt;div&gt;MsUpload로 파일을 올림&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539</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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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0:28: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 = 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 473 지행(智行).jpg&lt;br /&gt;
|법명 = 지행(智行 &lt;br /&gt;
|법호 = &lt;br /&gt;
|속명 = 임순희(林順姬) &lt;br /&gt;
|본관 = &lt;br /&gt;
|출생 = 1941. 10. 3&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입적 = &lt;br /&gt;
|사찰 =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 세심사&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lt;br /&gt;
* 세심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041-543-2696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6.842155 | 경도=126.926914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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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535</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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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0:22: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 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473 지행(智行).jpg&lt;br /&gt;
|법명= 지행(智行)&lt;br /&gt;
|속명= 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 나주&lt;br /&gt;
|출생= 1941. 10. 3&lt;br /&gt;
|출가= 1960년&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lt;br /&gt;
* 세심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041-543-2696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6.842155 | 경도=126.926914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531</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531"/>
		<updated>2022-07-28T00:15: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lt;br /&gt;
* 세심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041-543-2696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6.842155 | 경도=126.926914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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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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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8T00:01: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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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lt;br /&gt;
* 세심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0 041-543-2696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6.842058 | 경도=126.926473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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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99"/>
		<updated>2022-07-27T23:48: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 &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 을 은사로 출가 &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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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90"/>
		<updated>2022-07-27T23:25:4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 &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9</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9"/>
		<updated>2022-07-27T23:23: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1941 ||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1960 ||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1962 ||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1963 ||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2004 ||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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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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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8</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8"/>
		<updated>2022-07-27T23:22:0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7</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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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23:19:0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6</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6"/>
		<updated>2022-07-27T23:17: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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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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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23:15: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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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5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3</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83"/>
		<updated>2022-07-27T23:14: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65%&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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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78"/>
		<updated>2022-07-27T23:13: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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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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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23:10: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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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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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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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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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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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23:09: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71</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71"/>
		<updated>2022-07-27T23:07: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70</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70"/>
		<updated>2022-07-27T23:06:5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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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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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23:05: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66</id>
		<title>지행스님(智行, 1941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C%A7%80%ED%96%89%EC%8A%A4%EB%8B%98(%E6%99%BA%E8%A1%8C,_1941%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66"/>
		<updated>2022-07-27T23:04: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amp;lt;indicator name=인명사전&amp;gt;비구니 인명사전&amp;lt;/indicator&amp;gt;&lt;br /&gt;
{{인물정보&lt;br /&gt;
|표제=지행(智行)스님&lt;br /&gt;
|사진=[[파일:지행스님.png|섬네일]]&lt;br /&gt;
|법명=지행(智行)&lt;br /&gt;
|속명=임순희(林順姬)&lt;br /&gt;
|본관=나주&lt;br /&gt;
|출생=1941. 10. 3&lt;br /&gt;
|출가=&lt;br /&gt;
|사찰= 세심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221)&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 &lt;br /&gt;
&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세심사에서 법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전념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41|| 충남 당진 출생&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0|| 세심사에서 법연(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962|| 일현(一玄)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lt;br /&gt;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안거 성만&lt;br /&gt;
|-&lt;br /&gt;
&lt;br /&gt;
|1963||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lt;br /&gt;
세심사 주지 취임&lt;br /&gt;
룸비니유치원 운영&lt;br /&gt;
|-&lt;br /&gt;
&lt;br /&gt;
|2004|| 세심사 주지&lt;br /&gt;
&lt;br /&gt;
&lt;br /&gt;
*문 중 : 청해(靑海) &lt;br /&gt;
*수행지침 : 어린이 포교&lt;br /&gt;
*수계제자 : 덕수(德修)·인수·성수·연수&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lt;br /&gt;
===출가와 수행===&lt;br /&gt;
지행(智行)스님은 1941년 10월 3일 아버지 임동출과 어머니 김해점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임순희이다. &lt;br /&gt;
1960년 친구와 함께 충남 마곡사 영은암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충남 아산시 세심사에서 법련(法蓮)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lt;br /&gt;
출가 후 스님은 곧바로 동학사 강원에 들어갔지만 사정이 생겨 세심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세심사에서 은사스님을 모시고 생활하던 스님은 어느 날 내원사로 가기 위해 무작정 걸망을 지고 나와 군용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그때 내원사로 향하는 한 스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내원사에서 그 스님과 함께 정진하며 생활했는데, 아쉽게도 도반스님은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다며 속퇴하였다. &lt;br /&gt;
그 뒤 지행스님은 내원암, 동화사 등 제방의 선방에서 수선 정진을 하며 20안거를 성만하였다. &lt;br /&gt;
&lt;br /&gt;
&lt;br /&gt;
===어린이 포교와 룸비니 유치원 개원===&lt;br /&gt;
공부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스님은 당시 세심사 주지였던 이청우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지를 맡아 살며 어린이 포교에 힘을 기울여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유치원 건물은 신도가 지어서 기증을 하였다. 당시 세심사에는 중·고등부 학생회가 있었는데 유치원을 개원함으로써 장차 청년 포교의 발판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lt;br /&gt;
현재 룸비니 유치원은 16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많은 새싹 불자들을 키워냈다. 유치원 법회에는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부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여 법문을 들으며 불심을 키운다. 어릴 때부터 불심을 배우고 키워야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고 법문도 잘 받아들인다는 스님의 생각은 이렇게 유치원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부처님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다. &lt;br /&gt;
스님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차 도저히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대학 개설과 교육포교=== &lt;br /&gt;
평소 아산에 불교회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스님은 룸비니 유치원을 개원한 뒤 힘을 기울여 회관을 지어 현재 아산불교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다. &lt;br /&gt;
지금은 아산 불교의 모든 일을 그곳에서 할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포교대학인 전통불교대학을 개설하여 교수님들 과 큰스님들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스님은 초급반과 중급반을 합하여 200여 명의 신도들에게 기초교리를 강의하고 있다. &lt;br /&gt;
스님은 포교활동을 자원하는 젊은 스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젊은 스님들이 직접 현장에서 일을 보고 배워 포교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lt;br /&gt;
예전에 비하면 포교 여건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는 실정인데도 포교에 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며 힘이 부족한 자신을 도와줄 젊은 스님들을 찾고 있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지행스님은 하루에 2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도 신도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스님을 보고 신도들은 ‘머슴’이란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부처님 은혜로 살기에 늘 감사하다는 스님은 ‘출가해서 왜 편히 살려고 하는지, 부처님 법을 펴는데 과연 힘을 다하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출가란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세심사===&lt;br /&gt;
세심사(洗心寺)는 전통사찰 제61호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영인산 기슭에 있는 절로써 백제 때 창건해 654년(신라 선덕여왕 14년) 자장스님이 중창했다고 하지만 입증할 문헌은 아직 찾지 못했다. 1530년(중종25)에 편찬한《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 후기 의《여지도서》《범우고》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lt;br /&gt;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절 입구에 있는 ´세심당(洗 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와 세심사로 고쳤다.&lt;br /&gt;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가 있다.&lt;br /&gt;
대웅전 안에는 소조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회상후불탱화와 신중탱화가 있다.&lt;br /&gt;
신중탱화는 1794년(정조18)에 조성한 것으로 승초·원정·보심·품관·대운 등이 그렸다.&lt;br /&gt;
영산전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및 판관상 1위가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 2점, 독성도 2점 등이 있다.&lt;br /&gt;
산신각에는 1935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1937년에 조성한 산신탱화가 있으며, 절의 중심부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으로 만든 9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231호)이 있는데, 상륜부가 없으며 1968년 일타와 도견이 옥신(屋身) 등의 새로운 부재를 가미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lt;br /&gt;
부도는 본래 절 입구에 3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웅전에서 영산전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송매당부도 2기만 있다.&lt;br /&gt;
이 밖에 1563년(명종18)에 판각된 부모은중경판과 불교의식집인 청문판 4매가 남아 있다.&lt;br /&gt;
* 출처 : 아산시 문화관광 https://www.asan.go.kr/tour/develop/m_tour/?m_mode=view&amp;amp;pds_no=2019111514555772380&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473-02.jpg|섬네일|세심사 대웅전과 다층석탑(사진출처: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 p76)]]&lt;br /&gt;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76~79.&lt;br /&gt;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473.&lt;br /&gt;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30, 340&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법보신문, 아산 세심사, 소장 ‘부모은중경’ 학술세미나 (2019년)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825&lt;br /&gt;
*충청일보, 세심사 25일 학술세미나 개최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주제 (2019년)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3759&lt;br /&gt;
*유튜브, 마음을 씻어 주는 아산 세심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9ALTS4X6wqs&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법연(法蓮)]] || ~의 제자이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에서 출가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 세심사]]  || ~의 주지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일현(一玄)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석암(昔岩)스님(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내원암]], [[동화사]] 등 선방에서 20여 || ~안거를 성만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룸비니 유치원]] || ~을 개원하다&lt;br /&gt;
|-&lt;br /&gt;
| [[지행(智行)스님]] || [[아산불교회관]]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 비구니 인명사전]]&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ntry>
	<entry>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B%B3%B4%EB%AC%B8%EC%8A%A4%EB%8B%98(%E6%99%AE%E9%96%80,_1938%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01</id>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B%B3%B4%EB%AC%B8%EC%8A%A4%EB%8B%98(%E6%99%AE%E9%96%80,_1938%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401"/>
		<updated>2022-07-27T14:12: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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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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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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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4:11: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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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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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4:07: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지도==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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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B%B3%B4%EB%AC%B8%EC%8A%A4%EB%8B%98(%E6%99%AE%E9%96%80,_1938%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397</id>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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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4:04: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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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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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4:03: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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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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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4:01: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암]]  ||  ~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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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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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3:59: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지도==&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릴레이션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20px&amp;quot; | 항목1 || style=&amp;quot;width:240px&amp;quot; | 항목2 || style=&amp;quot;width:180px&amp;quot; | 관계&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시현(示現)스님]] || ~의 제자이다 &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  || 약수암~에서 출가하다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정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청담(靑潭)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의 주지(감원)를 역임하다&lt;br /&gt;
|-&lt;br /&gt;
| [[보문(普門)스님]] || [[약수선원]] || ~을 설립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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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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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3:35:1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jpg&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0%&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파일: 209-01.jpg|섬네일]]&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lt;br /&gt;
5.보문스님.hwp&lt;br /&gt;
2.30MB&lt;br /&gt;
5.보문스님1.jpg&lt;br /&gt;
6.77KB&lt;br /&gt;
5.보문스님2.jpg&lt;br /&gt;
49.35KB&lt;br /&gt;
5.보문스님3.jpg&lt;br /&gt;
129.48KB&lt;br /&gt;
5.보문스님4.jpg&lt;br /&gt;
169.53KB&lt;br /&gt;
5.보문스님5.jpg&lt;br /&gt;
70.31K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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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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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3:12: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209 보문(普門)&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lt;br /&gt;
5.보문스님.hwp&lt;br /&gt;
2.30MB&lt;br /&gt;
5.보문스님1.jpg&lt;br /&gt;
6.77KB&lt;br /&gt;
5.보문스님2.jpg&lt;br /&gt;
49.35KB&lt;br /&gt;
5.보문스님3.jpg&lt;br /&gt;
129.48KB&lt;br /&gt;
5.보문스님4.jpg&lt;br /&gt;
169.53KB&lt;br /&gt;
5.보문스님5.jpg&lt;br /&gt;
70.31K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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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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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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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3:06: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lt;br /&gt;
5.보문스님.hwp&lt;br /&gt;
2.30MB&lt;br /&gt;
5.보문스님1.jpg&lt;br /&gt;
6.77KB&lt;br /&gt;
5.보문스님2.jpg&lt;br /&gt;
49.35KB&lt;br /&gt;
5.보문스님3.jpg&lt;br /&gt;
129.48KB&lt;br /&gt;
5.보문스님4.jpg&lt;br /&gt;
169.53KB&lt;br /&gt;
5.보문스님5.jpg&lt;br /&gt;
70.31K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left&amp;quot;&lt;br /&gt;
! style=&amp;quot;width:150px&amp;quot;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lt;br /&gt;
|-&lt;br /&gt;
{{구글지도 | 위도= 37.704301 | 경도=127.044279 | 줌=70 m }}&lt;/div&gt;</summary>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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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title=%EB%B3%B4%EB%AC%B8%EC%8A%A4%EB%8B%98(%E6%99%AE%E9%96%80,_1938%E7%94%9F,_%EB%B9%84%EA%B5%AC%EB%8B%88)&amp;diff=6374</id>
		<title>보문스님(普門, 1938生, 비구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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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2-07-27T13:05: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대안스님: &lt;/p&gt;
&lt;hr /&gt;
&lt;div&gt;{{인물정보&lt;br /&gt;
|표제 = 보문(普門)스님&lt;br /&gt;
|사진 =  &lt;br /&gt;
|법명 = 보문(普門)&lt;br /&gt;
|법호 = 정목(正穆)&lt;br /&gt;
|속명 = 정병덕(丁炳德) &lt;br /&gt;
|본관 = 나주&lt;br /&gt;
|출생 = 1938년 2월 10일&lt;br /&gt;
|출가 = 1960년&lt;br /&gt;
|종단 = 대한불교조계종&lt;br /&gt;
|사찰 =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약수선원&lt;br /&gt;
}}&lt;br /&gt;
&lt;br /&gt;
==정의==&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시현스님을 은사로 의정부 약수암에서 출가하여 약수암(선원)을 불사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 middle; text-align: left; background-color: 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연도 !! 내용&lt;br /&gt;
|-&lt;br /&gt;
|1938|| 전남 완도 출생, 서창국민학교 졸업 &lt;br /&gt;
|-&lt;br /&gt;
|1960|| 약수암에서 시현(示現)스님을 은사로 출가 &lt;br /&gt;
약수암에서 청담(靑潭)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동학사 강원 사집 수료 해인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lt;br /&gt;
&lt;br /&gt;
약수암 중창 불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불사 &lt;br /&gt;
&lt;br /&gt;
자비회 회원, 강동여고 이사 역임 &lt;br /&gt;
&lt;br /&gt;
강동여고 장학회 운영&lt;br /&gt;
|-&lt;br /&gt;
|2000|| 약수선원 주지 &lt;br /&gt;
|}&lt;br /&gt;
&lt;br /&gt;
{| class=&amp;quot;wikitable sortable&amp;quot; style=&amp;quot;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74%&amp;quot; &lt;br /&gt;
|-&lt;br /&gt;
|문중|| 청해(靑海) 문중 &lt;br /&gt;
|-&lt;br /&gt;
|생활신조||  기도정진하고 가람수호하여 부처님 도량을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젊어서 공부해야 한다.&lt;br /&gt;
|-&lt;br /&gt;
|취미|| 간경(看經)&lt;br /&gt;
|-&lt;br /&gt;
|수계제자 || 지선(智禪)&lt;br /&gt;
|}&lt;br /&gt;
&lt;br /&gt;
==활동 및 공헌==&lt;br /&gt;
===출가===&lt;br /&gt;
정목(正穆) 보문(普門)스님은 1938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이며, 이름은 정병덕이다.&lt;br /&gt;
&lt;br /&gt;
스님은 서창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날 불암사에 친척이 있어서 며칠 머물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숙이 되시는 상인스님이 시현스님(훗날 은사스님이 되심)에게 입산을 권하시는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면 저절로 신심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져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발심한 것이다.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대한불교 여성수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하동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던 분이다. 상인스님 아래서 삭발하려고 하니까 보문스님의 노스님이 시현스님을 놓치기 아까워하시고 당신도 이참에 삭발을 해야겠다고 해서 두 스님은 한날한시에 삭발 수계하게 되었다. 1960년 약수선원에서의 일이었다.&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과 함께 포교와 복지활동==&lt;br /&gt;
&lt;br /&gt;
그 뒤 보문스님과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지속적으로 불사를 펼치는 한편,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를 지을 수 있게 부지를 마련해주는 등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논산훈련소를 비롯하여 여러 군부대에 부처님을 모시는 일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해나갔다. 중생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 언제든지 몸소 발 벗고 나서서 행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계속 실천해온 것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자유당 시절 뚝섬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배가 없어 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계사 혜정스님과 함께 화주로 나서서 배를 마련해주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60&lt;br /&gt;
&lt;br /&gt;
또한 봉선사에서 『화엄경』을 편찬 불사할 때에도 후원회를 조직하여 큰 불사를 이룰 수 있었고, 탄허 큰스님이 개운사에 계실 때에는 속장경을 불사하여 학교에 기증하였다. 이처럼 보문스님과 은사스님은 중생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실행하며 보살행을 펼쳐온 공로로 여러 차례 감사패와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스님은 애당초 남들의 상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표창장이라고 해서 따로 보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단지 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는 일에만 헌신하는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lt;br /&gt;
&lt;br /&gt;
===은사인 시현스님===&lt;br /&gt;
보문스님의 은사이신 시현스님은 늦게 삭발 출가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종종 주위로부터 찬사를 받으셨다. 또한 사찰 불사를 하는 데도 참으로 통이 큰 거물이라는 평을 많이 받으셨다. 시현스님은 1985년 세수 83세 되던 날, 사시 예불을 마치고 공양을 잘 드신 후 고요한 모습으로 입적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불사==&lt;br /&gt;
보문스님은 세속에 있을 때부터 은사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터라 은사스님 시봉을 위해 동학사 강원을 중도에 그만두고 약수선원에 거주하면서 전념을 다하여 대웅전, 관음전, 산신각, 요사채, 일주문, 종각 등을 불사하였다. 스님은 지금도 부처님 도량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발원하고 있다. 2004년 약수선원 주지로 수행 정진 중인 보문스님은 의정부 내의 몇몇 사찰이 모여 운영하는 자비회의 회원이며, 광동여고 이사를 맡아 어려운 학교 재정을 후원함은 물론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지선(智禪)스님이 있다.&lt;br /&gt;
&lt;br /&gt;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lt;br /&gt;
&lt;br /&gt;
&lt;br /&gt;
[보문스님]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스님에 관한 책과 인터넷 게시물==&lt;br /&gt;
 &lt;br /&gt;
&lt;br /&gt;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lt;br /&gt;
&lt;br /&gt;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가상 현실(VR)로 체험하는 우리 고장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2017년)&lt;br /&gt;
&lt;br /&gt;
https://realujb.tistory.com/31&lt;br /&gt;
&lt;br /&gt;
===의정부 약수선원===&lt;br /&gt;
6.25전쟁 때 개성에서 피난 온 문수당 보살(속명 이정임 · 작고)은 청량리 시립병원에서 능인심을 급하게 불렀다. 능인심은 서울 북부 남양주 소재 수락산과 상계동 불암산 자락 경계에 자리한 불암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병원에 20대 초반 아리따운 처녀과 함께 온 능인심에게 문수당 보살은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며 꼭 지니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의정부 약수암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능인심은 문수당 보살을 부축해 젊은 처녀과 함께 약수암으로 갔다. 약수암에서 솟아나오는 약수는 다락원에서는 물론 의정부 일대에서 온갖 질병을 치유하는 영험한 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곳에서 문수당은 능인심과 능인심을 따라 온 처녀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병 치유에 열중했다. &lt;br /&gt;
&lt;br /&gt;
경기도 의정부 호원동 약수선원. 약수선원의 태동 배경은 이렇듯 약수와 불심 돈독한 세 여성의 우정으로 이루어진다. 문수당 보살은 당시 울산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한유화 회장. 약수선원의 최대 공덕주다. 능인심은 비구니 시현스님으로 약수선원 창건주 보문스님의 은사다. 20대 젊은 처녀가 바로 보문스님이다. 문수당이 건네 준 서류봉투는 약수터가 있던 당시 약수암의 집문서였다. 약수암은 허름한 산신각과 방2칸 짜리 ㄱ자방 요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곳에서 시현스님과 보문스님의 약수선원 창건설화가 다시 쓰여진다. 건물만 약수암 소유였지 땅 소유자는 개신교를 믿는 이교도였다. 이런 저런 압박과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두 스님은 벽돌을 찍어 내 관음전을 지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쉽지 않은 건축불사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불보살의 명호를 칭념하며 의지를 다졌다. 마침내 관음전이 완공되자 너무 기쁜 마음에 이를 기념하고자 보살계단을 열었다. 수계법사로는 한국불교의 최고봉에 자리하고 있던 동산 · 청담 · 대휘스님을 모셨다. 창건주 보문스님은 이때 머리를 깎고 사미니계를 받게 된다.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평생을 약수선원과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관음전을 완공한 시현스님이 말했다. “비록 절은 새로 지었지만 부처님 만큼은 고불(古佛)을 모시고 싶다.” 시현스님은 노래처럼 이 말을 읊조렸다. &lt;br /&gt;
&lt;br /&gt;
그러던 어느 날 약수암에 다니는 민보리성 보살(당시 민병두 한국은행 총재 어머니)이 절밑에서 보문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신발을 급하게 신고 뛰어 내려가니 민 보살이 몸시중도 없이 혼자 타박타박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노구의 행보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안아드리니 가뿐했다. 내려달라는 말씀도 없어 가슴에 안고 올라와 인법당에 모셨다. 그러자 민 보살이 살짝 미소를 머금는데 자태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게 꿈이었다. 꿈 얘기를 은사스님께 말씀드리니 깔깔 웃으며 “가회동 보살님(민보리성)이 오늘 오시려나 보다”했다. &lt;br /&gt;
&lt;br /&gt;
이날 민보리성 보살로부터 “보문스님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실제로 연락이 왔다. 집에 도착한 보문스님을 차에 태워 종로 5가 한 대처승 절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목조보살입상이 스님의 품에 안겼다. 광목에 둘둘 말린 목조입상은 꿈 속 느낌 그대로 가뿐했다. 한달음에 내달려 약수암에 도착한 목조보살입상은 나중에야 예사 불상이 아님이 밝혀졌다. 현재 관음전에 봉안된 목조보살입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76호다. 보관을 제외한 크기가 84㎝로 해충에 강한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고불을 모시고 싶다’는 시현스님의 바람은 이 보살입상의 등장으로 실현된다. 개금과 파손된 부위의 복원을 위해 부른 박준주(전한국문화재수리기술협회장)씨는 국보급 불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보살상 복장에서 광무9년명다라니, 무구정광다라니경, 발원문 및 금판도 발견됐다. 불상은 지리산 유역 경상도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됐다. &lt;br /&gt;
&lt;br /&gt;
삼존불 중 협시불로서 이 불상과 제작연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한 관음보살입상은 현재 동국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조보살입상의 조성 시기를 16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문화재 박준주는 보살입상 친견의 인연을 지중하게 여겨 약수선원에 대형 괘불을 선물한다. 장정 3~4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펼쳐서 걸 수 있다는 이 대형괘불은 큰 행사 아니고는 평소에 볼 수 없다. 보문스님도 생전예수재를 봉행하느라 3번 정도 대형괘불을 펼치고 천도재를 지냈다고 회고할 정도다. &lt;br /&gt;
&lt;br /&gt;
1962년 선학원에 등록된 약수암은 1969년 약수선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시현스님은 이 와중에 도봉산에 호국선원을 건립하고 약수암을 떠났다. 보문스님은 막내사제와 함께 약수선원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됐다. 1972년 비록 콘크리트지만 대웅전도 건립했다. 비로소 도량과 당우가 제 자리를 차지하며 어엿한 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1년엔 스레트와 벽돌로 지어진 관음전을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며 풍광이 더욱 돋보였다. 신도들도 크게 기뻐했다. 선학원 이사장 범행스님을 초청해 낙성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했다. &lt;br /&gt;
약수 위에 자리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약수선원의 독실한 신도인 안경환 노(老)보살의 시주로 봉안됐다. 안보살은 약수를 배경으로 중생들의 질병과 재앙을 소멸하는 발원을 담아 약사여래를 모셨다. &lt;br /&gt;
&lt;br /&gt;
1986년엔 일주문도 세웠다. 약수선원은 망월사역을 지나 호암초등학교를 꺾어 오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여놓은 발길에 주차장이 있고 도량이 시작되는 초입에 일주문이 사람들을 반긴다. 일주문 안으로 발을 옮기면 ‘약수선원’과 ‘관음정사’ 판액이 정면으로 시야에 들어오고 오른 쪽으로 요사채 ‘청송당’이 위치하고 있다. 청송당은 2007년에 신축된 것으로 보문스님과 보문스님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지선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지선스님도 약수선원의 중창에 있어선 중심의 역사다. 70대 후반 연로한 보문스님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지선스님은 주섬주섬 기억해낸다. 약수선원의 역사를 같이 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교도인 땅임자를 상대로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구사, 2001년 땅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지금은 2천7백평에 달하는 사찰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1987년 대웅전을 목조로 개축해 확장한 것과 1988년 종각신축불사로 약수선원은 비로소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사격을 갖추게 된다. 그 배후엔 역시 최대 공덕주라 할 이정님씨와 형제들이 있었다. 이정님씨에겐 자신을 포함한 6형제가 있었다. 이들을 위한 기도처로 처음 약수암을 매입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남동생 이정구씨는 보문스님을 끝까지 후원한 시주자였다. 이씨는 임종 직전에도 부인에게 “보문스님의 용돈을 잊지 말고 챙겨줘라”고 유언할 정도였다. &lt;br /&gt;
&lt;br /&gt;
보문스님은 그래서 남은 원력이 있다면 입적 전 꼭 사적비를 경내에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원력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간절한 염원과 기도엔 늘 불보살님이 화응해 주셨기 때문이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기도가 있는 날엔 거르지 않고 보문스님과 주지 지선스님은 법당에 올라가 신도들과 함께 목청껏 염불 정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출처 : 불교저널, (3) 의정부 약수선원 (2014년)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lt;br /&gt;
약수선원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인 목조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조선 초기 보살양식(菩薩樣式)을 일부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보살상이다. &lt;br /&gt;
보관(寶冠)을 제외한 보살상의 전체 크기는 84센티미터로 아담하며, 조각도를 쓰기에 좋고 나무 자체에 독성이 있어 해충에 강한 행자목(杏子木)으로 제작되었다.상(像)의 형태는 이목구비가 작은 통통한 얼굴과 원형 귀고리에 결발(結髮)을 높게 하였고, 결발이 귀 뒤로 돌아가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lt;br /&gt;
이 같은 결발 형식 및 귀고리 표현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여 조선 초기에는 간략화 되었던 표현 수법이다. 어깨는 얼굴에 비해 좁고 처져서 다소 왜소한 느낌이며,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는 팔을 휘감고 발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 밑에는 군의(裙衣)를 묶은 띠 매듭이 있으며, 양다리 사이에 수대(繡帶)가 내려져 있다. &lt;br /&gt;
이 작품은 15세기 작으로 비정(比定)된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관음보살좌상이나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 관음상보다 결발(結髮) 형식이나 귀고리가 간략화 되었고, 신체 비례도 5등신이어서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15세기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결발 형태나 통통한 얼굴 등에서 조선 중기, 즉 16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더욱이 좌협시(左脇侍)인 동국대학교 소장 목조관음보살입상의 복장기(腹藏記)가 발견됨에 따라 명확한 제작 연대와 봉안 사찰, 조각장인(彫刻匠人) 및 발원자(發願者) 등을 알 수 있는 상(像)이어서 조선 중기의 보살상 및 조각장 유파(流派)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목조보살입상] 사진출처 : 불교저널,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45&lt;br /&gt;
== 참고문헌==&lt;br /&gt;
 &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8~61.&lt;br /&gt;
&lt;br /&gt;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9 .&lt;br /&gt;
&lt;br /&gt;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21. 332.&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약수선원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 58 (의정부시 호원동 226-54) 031-873-4266&lt;br /&gt;
&lt;br /&gt;
&lt;br /&gt;
5.보문스님.hwp&lt;br /&gt;
2.30MB&lt;br /&gt;
5.보문스님1.jpg&lt;br /&gt;
6.77KB&lt;br /&gt;
5.보문스님2.jpg&lt;br /&gt;
49.35KB&lt;br /&gt;
5.보문스님3.jpg&lt;br /&gt;
129.48KB&lt;br /&gt;
5.보문스님4.jpg&lt;br /&gt;
169.53KB&lt;br /&gt;
5.보문스님5.jpg&lt;br /&gt;
70.31KB&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lt;br /&gt;
* &lt;br /&gt;
&lt;br /&gt;
==시맨틱 데이터== &lt;br /&gt;
&lt;br /&gt;
===노드 데이터===&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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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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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대안스님</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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