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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의 『가례집람(家禮輯覽)』, 조선시대 예학의 확립
조선시대 예학은 김장생(金長生)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그는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저술하여 예학의 기초를 다졌다. 아들 김집(金集)과 함께 이이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를 형성하고, 충청 지역에서 17세기 전반 조선 후기 유학의 중요한 흐름을 이끌었다. 기호학파는 조선 전기에는 세력을 갖지 못했으나, 김장생의 출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학은 성리학의 분열 이후 도덕적, 사회적 기준을 확립하고 사회 혼란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AI 스토리텔링
조선 후기, 유학의 중심은 충청 지역에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기호학파는 김장생(金長生)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그의 아들 김집(金集)과 제자들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이이(李珥)의 학문을 계승하며, 예학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김장생은 한국적 예학을 확립하기 위해 『가례집람』을 저술하였고, 이 작업은 후에 그의 아들 김집과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기호학파는 호락논쟁(湖落論爭)을 통해 학문적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권상하(權尙夏)는 이 논쟁을 이끌며, 학문적 갈등 속에서도 기호학파의 흐름을 지켜내었습니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는 다양한 문헌으로 남아있습니다. 『가례집람』, 『상례비요』, 『의례문해』 등 많은 문헌들이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 보존되어 있으며, 후대 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고 계승해 나갔습니다. 김창협(金昌協), 권상하, 한원진(韓元震) 등은 각자의 문헌을 저술하며 기호학파의 예학적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기호학파의 유산은 단순히 학문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유교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 관계를 중시하며 예의를 중심으로 한 예학의 전통을 계승해 왔습니다.
지식 요소 간 관계
A | B | 관계어 |
---|---|---|
김장생 | 이이 | hasDisciple |
김장생 | 기호학파 | belongsTo |
김장생 | 김집 | hasSon |
송시열 | 김집 | hasDisciple |
윤선거 | 김집 | hasDisciple |
송준길 | 김집 | hasDisciple |
이유태 | 김집 | hasDisciple |
유계 | 김집 | hasDisciple |
김창협 | 송시열 | hasDisciple |
권상하 | 송시열 | hasDisciple |
한원진 | 김창협 | hasDisciple |
김장생 | 상례비요 | creator |
김장생 | 가례집람 | creator |
김장생 | 의례문해 | creator |
김장생 | 의례문해습유 | creator |
김장생 | 전례문답 | creator |
김집 | 의례문해 | editor |
김집 | 의례문해속 | creator |
김집 | 고금상례이동의 | creator |
윤선거 | 가례원류 | creator |
송시열 | 예의문답 | creator |
유계 | 가례원류 | creator |
이유태 | 예변 | creator |
이유태 | 의례문답 | creator |
김창협 | 사례편람 | creator |
권상하 | 의례경전통해보 | creator |
권상하 | 주자언론동이고 | creator |
한원진 | 가례소의의록 | creator |
한원진 | 가례원류의록 | creator |
권상하 | 호락논쟁 | leads |
상례비요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currentLocation |
가례집람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currentLocation |
의례문해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currentLocation |
의례문해습유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currentLocation |
의례문해속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currentLocation |
고금상례이동의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 currentLo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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