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CC T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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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임이로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9월 6일 (금) 15:0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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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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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사는 1621년, 홍산 현감 심종직이 김시습이 입적한 무량사 옆에 작은 사당을 세워 김시습을 모시고 제향을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동봉서원 청풍각 상량문』에 따르면 1635년, 현감 윤형각이 ‘청풍’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1658년에는 현감 권흔이 오늘날 위치인 홍산향교 옆으로 이건해 제사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다. 또한, 『윤증-송시열 감찰 별지(1661)』에 따르면, 윤증은 송시열에게 김시습의 정신을 후대에 전해고자 청풍각기를 지어줄 것을 부탁한다. 이후 이곳은 청일사라는 사액을 받는다(1704). 지방 유림들은 이곳에서 김시습과 김효종의 절의를 숭상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교분을 쌓아왔으며 『가석 등 시』는 이 모습을 묘사한 시로 그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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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였다. 그중에서도 김시습과 김효종이 청일사에 모셔져 있었다. 김시습은 무량사라는 또 다른 성스러운 절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그의 정신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청일사는 청일서원이라는 교육의 요람과 연결되어 있었다. 청일서원은 동봉서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그 명성은 전국에 알려져 있었다. 청일사에서는 매년 두 차례의 제례가 열렸는데, 춘향제와 추향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제례는 권흔이라는 학자가 주도하였으며, 김효종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향사례라는 특별한 의식도 거행되었는데, 이는 김효종과 김시습 두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편, 청풍각에서는 윤증과 송시열이 주고받은 서신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서신은 당시 두 사람의 학문적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윤증은 송시열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고, 그 서신은 후대의 연구자들이 IKCC, 즉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 의해 보관되었다. 이곳에는 또 다른 문서들, 예를 들어 가석 등 시와 김효종의 실적도 함께 보존되어 있다.

무량사에는 영각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고, 심종직이 이 영각 건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영각은 이후 청풍각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얽히고설킨 인물과 장소, 사건들은 모두 한국 유교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자산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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