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스토리텔링 툴 샘플 페이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Timeline.js
- 타임라인 바로가기
- 주제 : 영,정조대를 중심으로
- 1735년 1월 21일 : 사도세자 출생.
- 1743년 11월 13일 :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가례.
- 1752년 : 정조 탄생
- 1762년 : 임오화변
- 1776년 : 정조 즉위
- 1790년 : 무예도보통지 편찬.
- 1794년 2월 : 수원화성 착공
- 1795년 윤2월 9일-16일 : 을묘원행
- 1796년 09월 : 수원화성 완공
- 1800년 : 정조 사후 순조 즉위.
사도세자, 정조의 일생과 관련 사건들(년도와 나이 표시)
- 1735년 사도세자 출생(사도세자 1세):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 출생.
- 1736년 사도세자 세자로 책봉 (사도세자 2세)
- 1744년 홍봉한의 딸을 빈으로 맞이함 (사도세자 10세)
- 1752년 정조 출생 (사도세자 18세, 정조 1세)
- 1759년 왕세손 책봉 (정조 8세)
- 1761년 성균관 입학 (정조 10세)
- 1762년 임오화변 (사도세자 28세, 정조 11세)
- 1765년 동궁책봉 (정조 14세)
- 1775년 대리청정 (정조 24세)
- 1776년 정조 즉위 / 규장각 설치 (정조 25세)
- 1777년 서얼철폐
- 1778년 노비제도 폐지 추진
- 1782년 외규장각 준공
- 1785년 장용위 설치 (정조 34세)
- 1789년 현륭원 이전 (정조 38세)
- 1791년 신해통공
- 1793년 장용영 확대 (정조 42세)
- 1794년 화성 건설 (정조 43세)
- 1795년 행행 (정조 44세)
Google my map
- 구글마이맵 바로가기
- 주제 : 을묘원행정리의궤를 중심으로
- 첫째날 : 창덕궁(돈화문) → 돈녕부 앞길/파자전 돌다리(지금의 단성사 앞) → 통운 돌다리(지금의 보신각 앞길) → 대광통 돌다리(지금의 서린동 122번지 남쪽) → 소광통 돌다리(남대문로1가 23번지 남쪽) → 동현(銅峴, 지금의 명동)병문 앞길 → 송현(松峴, 지금의 한국은행 부근) → 수각(水閣) 돌다리/숭례문(남대문) → 노량행궁(용양봉저정,지금의 동작구 본동 30번지) → 시흥행궁(금천구 시흥 5동 831번지 6호)
- 둘째날 : 시흥행궁 → (지금의 시흥대로와 안양시 만안대로, 그리고 1번 국도를 따라 이동) → 장산(長山)모루 → 청천평 (晴川坪) 에서 휴식/ 왕은 말에서 내려 혜경궁에게 문안 → 사근참행궁(肆覲站行宮)에서 점심 → 저녁에 화성행궁 봉수당(奉壽堂)에 도착 (혜경궁을 봉수당 왼편에 있는 장락당(長樂堂)으로 모심)
- 셋째날 : 화성향교 대성전 참배 → 행궁에서 문무과 별시 시행 → 행궁의 봉수당에서 회갑잔치의 예행연습인 진찬습의(進饌習儀) 거행
- 넷째날 : 새벽 인정 3각(寅正三刻, 오전 4시45분) 3취에 화성행궁 출발 → 팔달문 → (지금의 정조로(正祖潞)를 따라 이동) → 상류천점(上柳川店)(지금의 매교삼거리)에서 잠시 휴식 → 융릉 → 화성행궁 → 서장대에 친림하여 주간 및 야간 군사훈련
- 다섯째날 : 진정3각(辰正三刻, 오전 8시 45분경)에 봉수당에서 회갑 진찬례 거행
- 여섯째날 : 새벽에 신풍루(新豊樓)에서 사미의식 → 진정1각(辰正一刻, 8시 15분경)에 낙남헌(洛南軒)에서 양로연
- 일곱째날 : 진정3각(辰正三刻, 오전 8시 45분경)3취에 수원 화성행궁 출발 → 미륵현(彌勒峴, 지지대고개) → 사근행궁에서 점심 → 시흥행궁(1박)
- 여덟째날 : 묘정3각(卯正三刻時, 오전 6시 45분경)에 부로(父老)와 민인(民人)을 만나 백성들의 소망을 듣고 이 자리에서 환곡을 탕감 → 노량행궁에서 점심 → 저녁에 창덕궁 도착
첫째 날
- 묘시(새벽 5~7시) 영춘헌에 나와 교를 내리고 말을 타고 수정전으로 가 정순후에게 인사 드림.
- 묘정 3각(새벽 6시 45분경) 융복을 입고 여를 타고 돈화문에 나와 여에서 내려 악차에 들어가 혜경궁 홍씨를 기다림. 가마를 타고 나온 혜경궁 홍씨와 인사 나누는 의식을 치르고 출발.
- 창덕궁 돈화문
- 돈녕부 앞길
- 파자전 돌다리(지금의 단성사 앞)
- 통운 돌다리(지금의 종로 2가)
- 종루 앞길(지금의 보신각 앞길)
- 대광통 돌다리(지금의 서린동 122번지 남쪽)
- 소광통 돌다리(남대문로 1가 23번지 남쪽)
- 동현, 구리개, 지금의 명동) 병문 앞길
- 송현, 지금의 한국은행 부근)
- 수각 돌다리(구서울시 경찰국 부근)
- 숭례문(남대문)
- 도저동(복숭아골과 닥나무골, 지금의 서울역 부근) 앞길
- 청파교(지금의 갈월동 쌍굴다리 부근): 지금 기차가 다니는 철로가 대체로 당시에 노량으로 가는 길이었다.
- 율원현(밤울재, 지금의 원효로 2가에서 용산방면 언덕으로 추정)
- 석우(돌모루골, 만초천과 청파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지금의 남영 전철역 앞)
- 만천주교(너푸내에 있는 다리, 지금의 용산역 부근)
- 노량(노들) 배다리: 배다리의 위치는 지금의 한강대교와 한강철교 중간쯤으로 보인다. 지금 한강대교에는 중간에 중지도가 있지만, 당시에는 중지도가 없었다.
- 다리를 건너 노량행궁(용양봉저정, 용이 뛰놀고 봉황이 높이 나는 정자 라는 뜻, 지금의 동작구 본동 30번지) 도착. 창덕궁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당시 10리로 간주된다.
- 휴식 취한 후 오초 2각(11시 30분) 다시 행차 시작
- 상도터널 입구에서 노량진 쪽으로 가다가 노량진 본동 입구에서 서남쪽 매봉산을 향해 올라가는 고개로 향함.
- 장승백이 고개를 지나 지금의 상도동길로 불리는 길을 따라 번대방평(지금 동작구 대방동)으로 향함.
- 서남쪽으로 틀어 시흥현 문성동 앞길에 이름(지금의 시흥대로에 해당. 문성동은 지금 남부순환도로와 시흥대로가 만나는 지점)
- 시흥행궁 도착(위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지금 금천구 시흥5동 동사무소 부근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