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당과 혜경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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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4일 (목) 10:53 판
주요 이야기
화성행궁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원래 1789년(정조 13)8월 19일 상량하고 9월 25일 완공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파괴된 봉수당은 1997년 복원되었다. [1]
봉수당은 정면으로 삼문형식의 중양문(中陽門), 좌익문(左翊門)을 두고, 행궁정문인 신풍루(新豊樓)와 일직선이 되는 위치에 동쪽을 향하도록 앉아 있어, 행궁 전체의 중심축을 이룬다. 1789년(정조 13) 8월 19일에 상량하여, 9월 25일에 7량 21칸의 정당과 행각 43칸이 완공되었고, 1794년(정조 18)에 북각도(北閣道) 등 48칸을 증축하여 모두 112칸의 규모를 갖추었다. [2]
1795년(정조 19) 정조는 혜경궁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이 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정조는 혜경궁 회갑연을 마치고 9년뒤인 1804년에 혜경궁의 70수연(壽宴) 진찬을 봉수당에서 가질 것이니 이번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잘 보관하라 지시하였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승하함에 따라 실행되지 못하였다.[3]
주요 노드
- 화성행궁 봉수당
- 혜경궁 홍씨
- 혜경궁 홍씨 회갑연
- 혜경궁 읍혈록
- 원행을묘정리의궤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