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 중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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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중수비
(順天 仙巖寺 重修碑)
대표명칭 순천 선암사 중수비
한자 順天 仙巖寺 重修碑
소장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분류 석비
관리자 선암사
시대 조선
제작시기 1707년
수량 1기



정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선암사의 중수를 위해 노력한 약휴(若休)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1707년에 건립된 석비.[1]

내용

채팽윤(蔡彭胤)이 짓고 이진휴(李震休)가 글씨를 썼으며 권규(權珪)가 전액을 썼다. 선암사가 호남 삼암의 하나로써 도선이 창건하고 의천이 중건하였는데 정유재란에 대부분이 불타 경잠 등이 중창한 것을 악휴가 이어 원통전과 53불 등을 조성하였음을 서술하였다. 후면에는 약휴의 중창과 더불어 초창 중창자인 도선의천의 공을 다시 기리고자 호연이 짓고 전형이 써서 붙였다. 그리고 유공자와 시주질 삼강 등 절 운영진과 각수까지 기록하였는데 상주 승려가 250명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 시기 사원과 승려의 형세를 살필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2]

비는 높직한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받침의 머리(귀부)는 용의 머리화 되었는데 여의주를 물고 있지 있으며, 목이 매우 짧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등은 선명하게 새긴 육각무늬로 덮혀있고, 중앙에 네모난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를 꽂아두도록 하였다. 머릿돌(이수)은 밑면에 연꽃을 새겼고, 윗면에는 서로 엉켜 꿈틀거리는 두 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천 선암사 중수비 약휴 A는 B를 위한 비이다
순천 선암사 중수비 순천 선암사 A는 B에 있다
순천 선암사 중수비 채팽윤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순천 선암사 중수비 호윤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순천 선암사 중수비 이진휴 A는 B가 비문을 썼다
순천 선암사 중수비 전형 A는 B가 비문을 썼다
순천 선암사 중수비 권규 A는 B가 제액을 썼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07년 순천 선암사 중수비가 건립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선암사 중수비",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2. "선암사중수비",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3. "선암사중수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