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 |
한자명칭 | 慈慶殿進爵整禮儀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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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명칭 | Jagyeongjeon jinjakjeongrye uigwe |
영문명칭 | A Korean translation of a book of royal banquet at Jagyeongjeon hall, Changgyeonggung palace |
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28년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1.2×11.7㎝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첩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1827년(순조27) 9월 10일에 창경궁 자경전에서 설행된 진작 의례에 관한 것으로, 한문본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를 한글로 축자 번역한 것이다.
내용
1827년(순조27) 9월 10일에 창경궁 자경전에서 설행된 진작 의례에 관한 것으로, 한문본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를 한글로 축자 번역한 것이다. 의궤는 10건의 한문 인출본과 3건의 한글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1828년(순조28) 5월 10일에 제작이 완료되었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는 7월 18일 원손(훗날 헌종)의 탄생을 경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9월 9일에는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올리는 존숭례(尊崇禮), 다음날 10일에는 조촐한 술자리로 진작례(進爵禮)를 마련하였다. 이때 진작례는 순조와 순원왕후를 비롯하여 효명세자, 세자빈 조씨, 명온공주, 좌우명부, 종친, 의빈, 척신으로 참석자를 한정하는 내연(內宴)으로 설행되었다. 따라서 상궁을 비롯한 여관(女官)들이 의례에 참여했고, 그들을 위하여 치사(致詞)·악장(樂章)·의주(儀註)·홀기(笏記) 등이 한글본으로 제작되었다. 한글본 의궤는 중궁전과 세자궁을 위한 것으로 한문본을 인출할 때 필사본으로 3건 제작하도록 하였다. 본 자료가 이 중 1건으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3권 3책으로 제작되었다. 2권 2책의 한문본 의궤에 비해 분책의 형태가 조금 다르지만, 수록 내용은 동일하다.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분량이 증가하자 각 책의 두께를 일정하게 맞추기 위하여 분책한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연설명
『자경전진쟉졍례의궤』는 3권 3책으로 한문본 의궤와 수록 내용이 동일하다. 다만 2권 2책의 한문본을 분권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권3으로 나누었다. 한문본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분량이 증가함에 따라 각 책의 두께를 일정하게 맞추기 위하여 분책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문본과 또 다른 부분은 권 첫머리의 도식이다. 한문본과 동일한 목판 인쇄본을 수록하였으나, 텍스트와 도형으로 이루어진 도면 6개, 즉 자경전도(慈慶殿圖), 전내도(殿內圖), 동보계도(東補階圖), 서보계도(西補階圖), 외보계등가도(外補階登歌圖), 외보계헌가도(外補階軒架圖)는 제외하였다. 그리고 그림 부분에는 진작에 참여하는 주요 인물의 자리를 한글로 명기해둔 것이 특징이다. <자경전진작도(慈慶殿進爵圖)>에 ‘왕세자배위(王世子拜位)’, ‘셰자빈배위(世子嬪拜位)’, ‘공주배위(公主拜位)’, ‘명부(命婦)’를 한글로 써서 각각의 자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2] 이처럼 한글본을 한문본과 조금 다르게 제작한 원인은 편찬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한글본 편찬을 명할 때 중궁전과 왕세자빈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혔으므로, 순원왕후 김씨와 왕세자빈 조씨 두 분이 열람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즉, 3책으로 분철하여 책의 두께를 조절한 것이나 의례의 집행에 요긴한 배치 도면을 수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비빈의 열람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로 볼 수 있다.[3] 효명세자가 한글본을 특별히 제작한 까닭은 순원왕후 김씨를 향한 효심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정조대의 한글본 의궤 『뎡니의궤(整理儀軌)』의 영향이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뎡니의궤』는 현륭원 행행, 혜경궁 홍씨 탄신 경하, 화성 성역 세 부분의 내용을 날짜별로 모은 것으로 현재 48책 가운데 12책만 전한다. 정조가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여러 종류의 한글 문헌들을 제작한 전례로 볼 때 이 또한 혜경궁을 위하여 특별히 편찬한 책으로 보는 것이 무방하다.[4] 『경뎐진쟉졍례의궤』는 표지, 본문 구성, 서체 등 많은 부분이 『뎡니의궤』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특히 표제의 규격이나 서체는 동일인이 썼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본문 또한 9행 17‒19 자 정도로 글자의 크기가 일정하며 궁궐의 여성들이 쓰는 궁체와는 전혀 다른 남성의 글씨로 쓴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이 유사한 형식을 갖춘 것은 효명세자가 할아버지 정조의 업적을 따르고자 한 것이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다양한 한글 문헌을 편찬한 바 있는데, 효명세자가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조가 왕세손 시절 대리 청정을 시작할 때 마련한 진찬 의례를 따르고자 한 데서부터 의례의 전담기구로 정조의 ‘정리소(整理所)’와 유사한 ‘진작정례소(進爵整禮所)’를 설치한 것, 한문본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한글본 『뎡니의궤』에 따라 한문본 및 한글본 의궤를 제작한 것 등 하나하나 정조대의 전례를 따르는 모양새다.[5]
관련 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효명세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효명세자 | 현종 | A는 B와 같다 | |
순조 | 효명세자 | A는 B의 어버이이다 | |
순원왕후 | 효명세자 | A는 B의 어버이이다 | |
순조 | 순원왕후 | A는 B의 남편이다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순원왕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순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세자빈 조씨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명온공주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자경전진작경례의궤 | A는 B에 포함된다 |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 | 자경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828년 | 효명세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가 작성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462127 | 126.950338 | 자경전 진작졍례 의궤 언해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98쪽.
- ↑ 김봉좌, 「순조대 진작 의례와 한글 기록물의 제작 - 1827년 자경전진작의례(慈慶殿進爵儀禮)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38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 ↑ 김봉좌, 「순조대 진작 의례와 한글 기록물의 제작 - 1827년 자경전진작의례(慈慶殿進爵儀禮)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38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 ↑ 김봉좌, 「순조대 진작 의례와 한글 기록물의 제작 - 1827년 자경전진작의례(慈慶殿進爵儀禮)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38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 ↑ 김봉좌, 「순조대 진작 의례와 한글 기록물의 제작 - 1827년 자경전진작의례(慈慶殿進爵儀禮)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38권,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