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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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한자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鐘碑
승려 나옹(懶翁)
찬자 이색(李穡)
서자 한수(韓脩)
각자 이인중(李仁衆)



번역문

  • 출처: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사4, 가산문고, 1997.[1]


여흥군(驪興郡) 신륵사(神勒寺) 보제사리석종기(普濟舍利石鐘記)

선각왕사(禪覺王師)인 보제존자(普濟尊者)가 여흥(驪興)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入寂) 하였다. 스님이 입적할 때 혁혁한 영험(靈驗)과 이서(異瑞)에 대하여 한 때 의심하였던 각신(覺信)스님이더욱 분발하여 천년 후에까지 모든 불자(佛子)들에게 신심을 일으키게 하고자 진영당(眞影堂)을 짓고 영정을 모시는 한편, 석종탑(石鐘塔)을 만들어 사리(舍利)를 조장(厝藏)하였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난 셈이다. 각신(覺信)스님은 석종(石鐘) 불사(佛事)를 맡아 주선하고 각주(覺珠)스님은 비석에 사용할 돌을 구하는 한편 장차 스님의 행적(行跡) 사실을 비석에 새기고자 비문을 이색(李穡)에게 청탁하기로 하였다.

이 때 염(廉) 정당(政堂)이 천녕(川寧)에 있으면서 자주 신륵사에 왕래하였다. 각주(覺珠)스님이 염(廉) 정당(政堂)에게 이를 부탁하였더니 공(公)이 기꺼워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곧 개경(開京)으로 가서 마땅히 스님을 대신하여 한 말씀을 한산자(韓山子)에게 청(請)하겠습니다. 그러면 한산자는 반드시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염(廉) 정당(政堂)이 나에게 진당기(眞堂記)를 청원(請願)하므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강월헌(江月軒)은 나옹스님이 주석(住錫)하던 당호(堂號)인 것이다. 보제(普濟)의 육신은 이미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여천강(驪川江)과 달은 전일(前日)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지금도 신륵사(神勒寺)는 장강(長江)을 굽어보고 있으며, 석종탑(石鐘塔)은 강변 언덕에 우뚝 서 있다. 달이 뜨면 달 그림자가 강물 속에 거꾸로 비치어서 천광(天光)과 수색(水色)과 등불 그림자와 향불 연기가 그 가운데 서로 교잡(交襍)하니, 이른바 강월헌(江月軒)은 비록 진묵겁(塵墨劫)이 지나가더라도 보제선사(普濟禪師)의 생존시(生存時)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제 보제(普濟)의 사리(舍利)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혹은 하늘 높이 올라가 운무(雲霧) 중에 있고, 혹은 여염(閭閻)의 연진(烟塵) 속에 있으며, 혹은 사리함에 모시고 목에 걸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하고, 혹은 그 사리를 잠잘 때에도 항상 팔 곁에 모시고 자기도 한다.이와 같이 극진히 사리(舍利)를 봉지(奉持)하는 것을 생전에 스님을 존경하던 것과 비교하면, 백배 이상으로도 견줄 수 없다. 하물며 신륵사는 나옹의 입적(入寂)한 곳이므로, 마땅히 각주(覺珠)스님이 사리(舍利)에 대하여 온 정성을 다하였다. 신륵사는 보제(普濟)스님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과 규모가 높고 넓어졌다. 그러므로 장차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며, 석종탑비(石鐘塔碑)도 견고하여 신륵사와 더불어 시종(始終)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여천강(驪川江)과 이 달과 더불어 무궁할 것이다. 오호라! 허공에서 보이는 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눈병 때문이며, 진묵겁(塵墨劫)도 또한 인간의 분별이지 결코 긴 시간이 아닌 것이다. 세계에는 성(成)·주(住)·괴(壞)·공(空)의 변천이 있어 세계가 비록 성(成)·주(住)·괴(壞)·공(空)에 따라 변천하지만 우리들의 인성(人性)은 영원히 불변자약(不變自若)한 것이다. 보제(普濟)의 사리(舍利)가 장차 세계와 더불어 성괴(成壞)함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성(人性)과 같이 자약(自若)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비록 우부(愚夫)와 우부(愚婦)일 지라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후세에 이 사리에 예경(禮敬)하는 사람들은 보제(普濟)스님의 고상한 도풍(道風)을 흠모하고 귀의하여 그의 마음을 구(求)하는 것이어야 비로소 가히 보제(普濟)가 끼친 큰 은혜에 보답함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제의 도덕은 보제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결코 우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에 대해 보제의 사리석종기(舍利石鐘記)를 기록하는 바이다.

보제존자(普濟尊者) 진당시(眞堂詩) 병서(幷序) 석지선(釋志先)스님은 나와는 아직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이다. 국신리(國贐里)의 노구(老嫗)가 안내하여 왔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스님인 선각(禪覺)의 탑은 선생(先生)께서 이미 그 비문을 지어 주었으므로 지선(志先) 등 문인(門人)들이 선생으로부터 망극(罔極)한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선생을 찾아뵙는 것은 한 마디로 말씀드려서 우리 스님의 진당(眞堂)에 대한 찬시(讚詩)를 지어달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그 전말(顚末)을 적는 바이다. 우리 스님께서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나타나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說法) 도생(度生)함이 비유컨대 마치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회암사(檜巖寺)는 기원정사와 같고 신륵사(神勒寺)는 또한 구시나가라의 쌍림(雙林)과 같다 할 것이다. 지선(志先)스님 등이 아무리 반호(攀呼)하고 민절(悶絶)한들 마침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스님의 행적을 돌아보건대 마치 밝은 달이 허공에서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그 여광(餘光)까지 이미 끝나고 없으나, 다행히도 사리(舍利)를 남겨 두었으므로 모두가 지극한 마음으로 봉지(奉持)하며 또한 도모(道貌)를 영정(影幀)에 담아 두었으므로 후세에 널리 전시(傳示)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신륵사의 석종탑(石鐘塔)은 실제로 스님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하고 있다. 지선(志先) 등이 염려하는 바는 후대에 이 사리탑에 예경(禮敬)하는 이가 우리 스님의 도모(道貌)를 알지 못하거나, 또한 그의 도풍(道風)을 흠모하더라도 그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귀앙(歸仰)하는 마음에 반드시 겸연(慊然)(부족함)함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아가서는 도모(道貌)인 영정을 첨앙(瞻仰)하고, 물러나와 사리석종탑(舍利石鐘塔)을 참관하면, 흔모(欣慕)하는 마음이 개연지경(介然之頃)이라도 감명을 받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당(眞堂)을 짓고 영정을 봉안하는 이유인 것이다. 선생(先生)께서 만약 우리 불교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붓을 잡고 석종기(石鐘記)를 짓는다 하더라도 선생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선(志先)스님의 말이 옳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살펴보건대 전국 각 사찰에 불상과 영정(影幀)이 봉안되고 있음이 적지 않다. 전문가가 아닌 동남(童男) 동녀(童女)와 신남(信男) 신녀(信女)들이 어찌 이를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반드시 설명자로부터 이는 불상이니 그 명호가 모불(某佛)이시고 또 이는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의 영정(影幀)이니 그의 당호(堂號)는 모(某)스님이라고 안내를 받고서야, 비로소 귀앙(歸仰)의 예배(禮拜)를 드리고 마음이 그 상모(像貌)에 명합(冥合)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선각(禪覺)스님의 진영(眞影)도 또한 하나의 단청(丹靑)한 고물(故物)에 불과할 것이니, 누구인들 제대로 알 수 있으랴? 지선(志先) 등이 구구(區區)한 그 마음을 장래(將來)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곳이 없다면서 그의 청탁함이 돈독하므로 부득이 사양하지 못하고 간략히 그 전말(顚末)을 서술하였으니, 후대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꾸짖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그리고 진당(眞堂)을 건축하는 토목공사(土木工事)의 과정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사(常事)이므로 기록하지 않는 바이다. 다음과 같이 진당시(眞堂詩)를 읊는다. 심심(甚深)하온 부처님의 묘(妙)한 법(法)이여! 그 정체는 유(有)도 무(無)도 아닐 것이다. 위대하신 우리 스님 영정(影幀)이시여! 누가 감히 스님 도덕 이길 것인가.         ① 늠연(凜然)하고 탁월하신 스님의 생애! 준수(俊秀)하온 스님 모습 영정(影幀)에 담다. 먼 곳에서 찾아와서 예배(禮拜)하는 자(者) 스님 육성(肉聲) 생생하게 듣는 듯하네!      ②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한산군(韓山君) 영예문춘추관사(領藝文春秋館事) 겸성균대사성(兼成均大司成) 이색(李穡) 찬(撰) 수충찬화공신(輸忠贊化功臣) 대광(大匡)상당군(上黨君)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 신(臣) 한수(韓脩) 봉(奉) 교(敎) 서(書) 창룡기미(蒼龍己未) 5월 15일 문인(門人) 각주(覺珠) 각성(覺惺)73 각굉(覺宏) 등은 비석을 세우고 이인린(李仁厸)은 글자를 새기다.

(음기(陰記))
 문생(門生)   전주송광(前住松廣) 광통무애(廣通無礙) 원묘대지(圓妙大智) 
           보제대선사(普濟大禪師) 수환암(脩幻菴) 전주광암(前住光巖) 
           정지원명(正智圓明) 응물무애(應物無礙) 총지국일대선사(摠持國一大禪師) 
           승과암(昇果庵) 산▨▨▨▨」광대선사(山▨▨▨▨」光大禪師) 원본공(源本空)
 수월사주지(水月寺住持) 대선사(大禪師) 지연(智淵)
 보광사주지(普光寺住持) 선사(禪師) 각호(覺瑚)
 수좌(首座)   달순(達順)
 수좌(首座)   무학(無學) 계행(戒行) 계철(戒哲) ▨▨ ▨▨」 굉여(宏如) 굉숙(宏淑) 
         천규(天圭) 가중(可中) 각동(覺同) 각종(覺宗) 죽오(竹悟) 각공(覺空)
         각금(覺芩) 보명(普明) 각조(覺照) 각영(覺永) 각희(覺希) 각란(覺蘭)
         호명(護明) ▨▨ ▨▨」 계생(戒生) 지보(志寶) 지일(志一) 각경(覺敬)
         지정(志正) 안분(安分) 각수(覺守)
비구니(比丘尼) 정업원주지(淨業院住持) 묘봉(妙峯) 묘덕(妙德) 묘간(妙玕) 묘신(妙信) 
        묘해(妙海) 묘해(妙海) ▨▨ ▨▨」 묘혜(妙惠) 묘중(妙重) 묘헌(妙憲) 
        묘현(妙玄) 묘경(妙瓊) 묘인(妙因) 묘진(妙珍) 묘령(妙玲) 묘한(妙閑)
        월미(月眉) 묘징(妙澄) 묘총(妙摠) 묘당(妙幢) 묘응(妙應) 묘선(妙善) ▨▨
단월질(檀越秩) 영창부원군(永昌府院君) 유(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
        순성군(順城君) 정(挺) 
        사공(司空) 각상(覺祥)
        사공(司空) 지초(志超)
        장패감대경(章佩監大卿) 귀성부원군(龜城府院君) 김▨▨(金▨▨) ▨▨▨」
        문하시중(門下侍中)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경복흥(慶復興)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광평부원군(廣平府院君) 이인임(李仁任) 
        판삼사사(判三司事)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 최영(崔瑩)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목인길(睦仁吉)
        전삼사우사(前三司右使)  김속명(金續命)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 이득분(李得芬) 
        남양군(南陽君) 홍영통(洪永通)
        전판개성부사(前判開城府事) 이성림(李成林)
        전정당문학(前政堂文學) ▨▨▨
        ▨▨▨」산군(山君) 박성량(朴成亮)
        중원군(中原君) 유완(劉完)
        밀직사사(密直司使) 도길부(都吉敷) 
        전개성윤(前開城尹) 이방직(李邦直)
        전개성윤(前開城尹) 유향(柳珦)
        전판도판서(前版圖判書) 조무(趙茂) 
        전전(前典)▨▨▨▨ ▨」 계생(繼生)
        전례의판서(前禮儀判書) 권희(權僖)
        전전공판서(前典工判書) 홍의룡(洪義龍)
        전전공판서(前典工判書) 유지습(柳之隰)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중광(金仲光)
        충주목사(忠州牧使) 김존성(金存誠)
        ▨▨▨▨」사사(사사) 변남룡(卞南龍)
        전판전객사사(前判典客寺事) 이귀영(李貴榮) 
        전전교사사(前典校寺事) 조운흘(趙云仡)
        전판군기사사(前判軍器寺事) 윤순(尹順)
        전삼사좌윤(前三司左尹) 김구용(金九容)
        전(前)▨▨▨▨▨ ▨▨호(瑚)
        득통거사(得通居士) 임만리(林萬里)
        전대호군(前大護軍) 이천명(李天明)
        전전의령(前典儀令) 조사겸(趙思謙)
        지여흥군사(知驪興郡事) 오선(吳璿)
        전중현대부(前中顯大夫) 조신을(曹臣乙)
        전(前)▨▨ ▨▨▨」
        호군(護軍) 임언충(任彦忠)
        호군(護軍) 조경(趙璟)
        전지청풍군사(前知淸風郡事) 김승필(金承弼)
        전장군(前將軍) 원후(元垕)
        전개성소윤(前開城少尹) 이을림(李乙琳)
        전전의부정(前典醫副正) 신계방(辛繼芳)
        ▨▨▨▨▨」사(事)  이린(李璘)
        전전의부정(前典醫副正) 양윤기(梁允奇) 
        전전주판관(前全州判官) 고천구(高天具) 
        전중랑장원로(前中郞將 元老) 박사검(朴思儉) 
        전랑장(前郎將) 김조(金釣)
        전랑장(前郎將) 신자온(辛子溫) 
        ▨▨▨▨▨▨▨」량(良) 이각경(李覺卿)
        낭장(郎將) 이득계(李得桂) 
        진사(進士) 원천석(元天錫)
        판군기사사(判軍器寺事) 김극공(金克恭) 
        지풍주사(知豊州事) 유자(柳滋)
        전판사(前判事) 홍원로(洪元老)
        숙령옹주(淑寧翁主) 김씨묘선(金氏妙善)
        정신택주(貞信宅主) 안씨(安氏)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김득배(金得培)처(妻) 동주군부인(蕫州 郡夫人) 
        김씨묘경(金氏妙煚)
        북원군부인(北原郡夫人) 원씨묘수(元氏妙守)
        ▨▨▨▨인(人) 박씨(朴氏)
        진강군(晋康郡) 정씨(鄭氏)
        상락군(上洛郡) 김씨묘영(金氏妙英)
        진양군(晋陽郡) 유씨묘현(柳氏妙玄)
        영흥군(永興郡) 강씨묘전(康氏妙全)
        상당군(上黨郡) 이씨묘명(李氏妙明)
        상락군(上洛郡) ▨▨▨▨」
        영평군(鈴平郡) 윤씨묘영(尹氏妙英)
        상락군(上洛郡) 김씨묘명(金氏妙明)
        영평군(鈴平郡) 윤씨묘란(尹氏妙蘭)
        김제군(金堤郡) 조씨(趙氏)
        나주군(羅州郡) 나씨묘선(羅氏妙善)
        선주군(善州郡) 김씨묘덕(金氏妙德)
        ▨▨▨」 유씨(劉氏)
        단양군(丹陽郡) 지씨(池氏)
우파새(優婆塞)이천백(李天白) 최용철(崔龍哲) 정란(貞蘭) 원송(元松) 
지종(志宗) 백송(白松) 고련광(高連廣) 
             대(大) 난대(難大) 전려▨(全呂▨) ▨▨▨ ▨각근(▨覺根) 김각지(金覺持) 
             해부(海富) 김가라(金加羅)
             대(大) 이부개(李夫介) 김홍백(金紅白) 조근금(趙斤金) 김석이(金石伊) 
             한우(韓祐) 최각희(崔覺希) 갑인(甲寅) 신찬▨(辛贊▨) ▨▨ ▨▨」 
             원려(元呂) 나복(羅卜) 이자선(李自屳) 이장(李莊) 동이(洞伊)
중창연화(重創緣化) 문생명목(門生名目)
대전(大殿)   지경(志瓊) 각수(覺守) 심정(心正)
조당(祖堂)   지선(志先) 지수(志守) 지총(志摠)
승당(僧堂)   굉참(宏旵) 혜문(惠文)
선당(禪堂)   각연(覺緣) 각린(覺厸)
종루(鐘樓)   각선(覺禪)
동▨▨(東▨▨)   ▨」송(▨松)
서익당(西翼堂)   지연(志延)
남행랑(南行廊)   각초(覺超) 지연(志衍)
향적당(香積堂)   신견(信堅)
번와(燔瓦)   지청(志淸) 자행(慈行) 지혜(志惠)
석종(石鐘)   수좌(首座) 각신(覺信) 각여(覺如) 일행(一行) 각회(覺恢) 지▨(志▨) 
          ▨▨ ▨▨」 지희(志希) 각숭(覺崇) 지신(志信) 지흥(志興)
도사(都事)   각연(覺緣)
감사(監寺)   경휘(冏輝)
전좌(典座)   해순(海順)
석수(石手)   지명(智明) 금말(金末) 을지(乙只)
목수(木手)   천일(天一) 각연(覺演) 각우(覺隅) 각청(覺淸) ▨▨ ▨▨」
여흥군(驪興郡) 좌주(座主)   조영우(趙英祐)
        호장(戶長)   민예(閔藝) 민청(閔淸) 김호(金瑚)
        전호장(前戶長)   민겸(閔謙)
조문기관(詔文記官)   김수(金秀)
기관(記官)   민창(閔暢)

판독문

  • 출처: 허흥식, 『한국금석전문』중세하편, 아세아문화사, 1984. [2]

           驪興郡神勒寺普濟舍利石鐘記」

禪覺王師普濟尊都之示寂于驪興神勒寺也靈異赫然疑者釋信者益奮謀所以起敬於千載之下則堂而垂其像鐘而」
厝舍利盖無所不至矣曰覺信者實幹石鐘而曰覺珠者求燕石將載其事而徵記於穡曰廉政堂在川寧往來吾寺珠告」
其故公欣然曰吾如京當爲上人請一言於韓山子韓山子必不讓矣願先生賜之言予曰江月軒普濟之所居也普濟之」
身旣火之矣而江與月猶夫前日也今神勒臨長江石鐘峙焉月出則影倒于江天光水色燈影篆香交襍乎其中所謂江」
月軒雖歷墨劫加普濟之生存也今夫普濟舍利散而之四方或在崔嵬雲霧之中或在閭閻烟塵之內或頂而馳或臂而」
宿其所以奉持之者比之普濟生存之日不啻百倍加矣况神勒爲入寂之地宜珠師之盡心於舍利也神勒寺由普濟大」
闢道場將永世不墜石鐘之固非獨與神勒爲終始又將與此江此月爲無窮矣嗚呼空華非瞥墨刧非闊理也而世界則」
有成壞焉世界雖有成壞而人性自若也普濟之舍利將與世界有成壞歟將與人性爲自若歟雖愚夫愚婦亦知所擇矣」
後之禮舍利者歆普濟之高風歸而求之其心則始可以報普濟之恩矣不然普濟之道自道也於我何也哉是爲記」
普濟尊者眞堂詩幷序」
釋志先予未之相識也國贐里之老嫗引之來其言曰吾師禪覺之塔先生辱賜之銘先等固已受先生罔極之惠矣玆又」
將謁先生一言以記吾師眞堂先生幸無麾焉吾師於五濁惡世現相應機譬則佛出也是以檜巖也猶祇樹焉神勒也猶」
雙林焉先等攀呼悶絕竟何益哉回視化迹月墮虗空餘光已盡幸有舍利存焉所以奉之者至矣道貎存焉所以傅之者」
廣矣今神勒石鐘實所以厝頂骨舍利也先等以謂後之禮舍利者無以知吾師之道貎也歆其風而未知其容儀之如何」
也則於歸仰之心必有所慊然者矣進瞻道貌退觀舍利以欣以慕夫豈無感悟於介然之頃者哉此眞堂之所由作也先」
生非知吾道者也執筆記纂先生之事也先生其終惠焉予曰先也言也是矣今夫像設多矣街童巷婦豈盡知哉必從而」
語之曰是佛也其名曰某也是佛之弟子也其名曰某也然後始得展其歸仰之禮而心冥於其像矣不然則禪覺之眞亦」
一丹靑故物爾誰從而知之先等區區之心無以白於將來宜其請之勤也故不辭而系以詩後之讀者幸無譏焉土木工」
程常事也故不書其詩曰 道之云妙 匪無匪有 於戱畫像 與衆孰愈 凛然其生 秀色天成 有來拜者 如」
聞其聲推忠保節同德賛化功臣三重大匡韓山君領藝文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李 穡撰」
輸忠賛化功臣大匡上黨君進賢館大提學臣韓 脩奉 敎書」
蒼龍己未五月十五日  門人覺珠覺惺覺宏等立石  刻手李仁」


  (陰記)
門生 前住松廣廣通無礙圓妙大智普濟大禪師脩幻菴 前住光巖正智圓明應物無礙揔持國一大禪師昇果庵山▨
▨▨▨」
光大禪師源本空 水月寺住持大禪師智淵 普光寺住持禪師覺瑚 首座達順首座無學 戒行 戒哲 ▨▨▨▨」
宏如 宏淑 天圭 可中 覺同 覺宗 竹悟 覺空 覺芩 普明 覺照 覺永 覺希 覺蘭 護明 ▨▨ ▨▨」
戒生 志寳 志一 覺敬 志正 安分 覺守 比丘尼淨業院住持妙峯 妙德 妙玕 妙信 妙海 妙海 ▨▨ ▨▨」
妙惠 妙重 妙憲 妙玄 妙瓊妙因 妙珍 妙玲 妙閑 月眉 妙澄
妙揔 妙幢 妙應 妙善 ▨▨」
檀越 永昌府院君瑜 曲城府院君廉悌臣 順城君挺 司空覺祥 司空志超章偑監大卿龜城府院君金▨▨ ▨▨▨」
門下侍中淸原府院君慶復興 守門下侍中廣平府院君李仁任 判三司事鐵原府院君崔瑩 門下贊成事▨▨▨▨▨」
睦仁吉 前三司右使金續命 判崇敬府事李得芬 南陽君洪永通 前判開城府事李成林 前政堂文學▨▨▨▨▨▨」
山君朴成亮 中原君劉完 密直司使都吉敷 前開城尹李邦直 前開城尹柳珦 前版圖判書趙茂 前典▨▨▨▨▨」
繼生 前禮儀判書權僖 前典工判書洪義龍 前典工判書柳之隰晋州牧使金仲光 忠州牧使金存誠▨▨▨▨」
寺事卞南龍 前判典客寺事李貴榮 判典校寺事趙云仡 前判軍器寺事尹順前三司左尹金九容 前▨▨▨▨▨▨」
瑚 得通居士林萬里 前大護軍李天明 前典儀令趙思謙 知驪興郡事吳璿前中顯大夫曹臣乙 前▨▨▨▨▨」
護軍任彥忠 護軍趙璟前知淸風郡事金承弼 前將軍元垕 前開城少尹李乙琳 前典醫副正辛繼芳▨▨▨▨▨」
事李璘 前典醫副正梁允奇 前全州判官高天具 前中郎將元老 朴思儉 前郎將金釣 辛子溫▨▨▨▨▨▨▨」
良 李覺卿 郎將李得桂 進士元天錫 判軍器寺事金克恭 知豐州事柳滋前判事洪元老」
淑寧翁主金氏妙善 貞信宅主安氏 僉議贊成事金得培妻蕫州郡夫人金氏妙焸 北原郡夫人元氏妙守▨▨▨▨」
人朴氏 晋康郡鄭氏 上洛郡金氏妙英 晉陽郡柳氏妙玄 永興郡康氏妙全上黨郡李氏妙明上洛郡▨▨▨▨」
鈴平郡尹氏妙英 上洛郡金氏妙明 鈴平郡尹氏妙蘭 金堤郡趙氏 羅州郡羅氏妙善 善州郡金氏妙德▨▨▨」
劉氏 丹陽郡池氏 優婆塞李天白崔龍哲 貞蘭 元松 志宗 白松 高連 廣大 難大 全呂▨▨▨▨▨覺根 金覺持 海富 金加羅大 李夫介金紅白 趙斤金 金石伊」
韓祐 崔覺希 甲寅 辛贊▨▨▨▨▨」
元呂 羅卜 李自屳 李莊 洞伊」
重創緣化門生名目 大殿志瓊覺守心正 祖堂志先志守志揔 僧堂宏旵惠文禮堂覺緣覺 鐘樓覺禪 東▨▨▨」
松 西翼堂志延 南行廊覺超志衍香積堂信堅 燔瓦志淸慈行志惠 石鐘首座覺信覺如一行覺恢志▨▨▨▨▨」
志希覺崇志信志興 都事覺緣 監寺冏輝 典座海順 石手智明金末乙只 木手天一覺演 覺隅覺淸 ▨▨▨▨」
驪興郡 座主趙英祐 戶長閔藝 閔淸金瑚 前戶長閔謙 詔文記官金秀記官閔暢」

주석

  1. 온라인 참조: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2. 온라인 참조: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