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격진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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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발명한 폭탄으로 하늘을 진동시키는 소리를 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진천뢰, 진천뢰로 불리기도 하며 폭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조선 중기에 사용되었다. [1]

지름 21㎝, 둘레 68㎝로 도화선을 감는 목곡(木谷),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 얇은 철 조각, 뚜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얇은 철 조각들로 장전하게 되어 있으며, 화포의 일종인 완구(碗口)를 이용하여 발사된다.

모양은 박과 같이 둥글고 죽통을 넣는 네모난 구멍(부리)과 화약을 넣는 허리 구멍이 있으며,무게는 20근, 뚜껑의 무게는 4냥, 사정거리는 300보(420m)이나 포열이 없는 완구로만 쏠 수 있었기 때문에 정확도가 낮았다. 주요 부품으로 약선(도화선)을 감는 목곡(木谷),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 그리고 부리를 막는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다.목곡은 폭파 시간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나사 모양으로 골을 파는데 감겨져 있는 도화선인 약선의 숫자에 따라 폭발 시간이 좌우며, 그 재료는 박달나무를 사용한다. 사용 순서는 포탄 안에 철 조각을 넣고 목곡을 넣은 죽통을 넣은 후에 뚜껑을 덮고 주위를 종이로 밀봉한다. 화약은 허리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하여 채워 넣고 격목으로 구멍을 막은 후 완구로 발사한다. 발사된 비격진천뢰는 죽통에 연결된 약선이 타 들어가 구멍을 통하여 화염과 마름쇠가 방사된다.

1592년 9월 경주성 탈환 때 경주 부윤 박의장이 사용하여그 위력을 발휘했으며 수군에서는 1593년 2월 웅천수륙합공작전 때 “언덕 위의 진지에 진천뢰를 쏘았는데,터지고 부서지고 죽고 상하여 시체를 끌고 쩔쩔매며 달아나는 적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이순신의 장계 기록이 있다.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강대운이 그린 민족기록화의 배경이 된 '진주성싸움'에서 사용된 조선중기에 개발된 화약무기이다.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관계 노드
비격진천뢰 ~에서 사용되었다 진주성싸움


참고

  1.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비격진천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