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입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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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입학도 | |
한자표기 | 王世子入學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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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입학례 |
제작연대 | 1817년 |
구성 | 1첩(총 16면) 4면 : 출궁의도(出宮儀圖) 5면 : 작헌의도(酌獻儀圖) 6면 : 왕복의도(往復儀圖) 7면 : 수폐의도(脩幣儀圖) 8면 : 입학의도(入學儀圖) 9면 : 수하의도(受賀儀圖) |
크기 | 그림 크기 33.6 × 45.0㎝ |
소장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정의
- 1817년(순조 17) 3월 11일 성균관에서 치러진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 뒤에 익종(翼宗)으로 추존]의 입학례를 기념한 화첩.[1]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07호.[2]
기본 정보
구성
- 총 6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음.
- <왕세자출궁도(王世子出宮圖)>, <작헌도(酌獻圖)>, <왕복도(往復圖)>, <수폐도(脩幣圖)>, <입학도(入學圖)>, <왕세자수하도(王世子受賀圖)>[3][4]
문헌 기록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효명세자 입학례[5]
세자의 보령은 9세가 되었으며 비로소 입학하였는데, 자질이 온순 단아하고 예의 범절이 숙성하였다. 선성(先聖)을 지알(祗謁)하는데 주선(周旋)이 법도에 맞았고, 강독할 때에 글 읽는 소리가 가락에 맞았으며, 천인(天人)·성명(性命)의 토론과 문답에 있어서 의젓하기가 성덕(成德)한 이처럼 의표(儀表)가 있었으니 시종하던 신하들과 선비로서 다리[橋]를 에워싸고 구경한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목을 길게 늘이고 손을 모아 송축하였다. |
소장처
- 조선 전 시기를 거쳐 유일하게 남아있는 왕세자 입학도첩으로, 총 6곳에 이본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동영상
- 국립고궁박물관: 왕세자의 성균관 입학례
- 화성에서 온 TV: 2015 정조 효 문화제 - 왕세손 입학례